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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더 리더'

10대 소년의 첫사랑…30대 연인의 마지막 사랑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운명'

  • 웹출고시간2012.07.01 19:47:5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뮤즈여, 용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오

고전 중의 고전 호머의 '오딧세이'는 이렇게 시작된다. '뮤즈여, 용사들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영화에서 수차례 반복되는 이 글귀를 읽어주는 뮤즈는 16세 소년이다. 20년 연상의 사랑하는 여인에게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는 도입부의 이 영화는 단순히 자극적 로맨스물이 아니다. 관습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소년과 어머니뻘 여인의 사랑 이야기 속에 사회적 부조리와 도덕적 책무 의식, 문맹으로 인한 자아정체성 등 감춰진 함의가 녹록치 않다. 따라서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의 성애(性愛)가 소년이 평생 놓여날 수 없었던 트라우마였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50년대의 어느 날 소년 마이클은 하교하다가 열병으로 인해 거리에서 고통스럽게 주저앉는다. 마침 주변을 지나던 한나는 소년을 도와주게 되고 몇 달 후 성홍열에서 회복된 마이클은 한나의 집을 다시 찾아 고마움을 전한다. 그러던 중 한창 성에 눈뜬 사춘기 소년과 원숙한 30대 여인은 서로의 몸을 탐하게 된다. 어느 날 학교 공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관심을 표하던 한나는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오딧세이', '전쟁과 평화', '닥터 지바고',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등 한나는 고전 듣기에 탐닉한다.


아름다운 시골 들판을 달리는 자전거 여행, 고성 근처 야외 테라스에서의 식사 등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그들의 관계는 어느 날 한나가 갑자기 사라져버림으로써 종식된다. 그리고 영화가 진짜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지의 오욕을 벗기 위해 감옥으로 들어가다


수 년의 시간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교수와 동료 학생들과 함께 나치 전범 재판 과정을 지켜보다가 피의자로 법정에 선 한나를 보게 된다. 유태인 수용소의 감시원으로서 가스실로 보내진 유태인들의 죽음과 불타는 교회에 갇혀 죽어간 유태인들의 살인죄로 기소된 것. 당시 6명의 감시원 중 한나만 자신의 일을 인정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혐의를 부인하는 상태였다.

"저는 감시원입니다. 죄수들을 감시하는 것이 제 일이었어요. 문을 열면 그들이 도망칠 테고 아수라장이 될 테니까요."

왜 유태인들이 갇혀 있던 교회의 문을 열어 주지 않았느냐는 판사의 힐문에 대한 한나의 답변이다. 백치와도 같은 이 대답은 그녀가 단순히 문맹일 뿐 아니라 이 사회 구조와 체제에 대하여도 무지하며 정치적 분별력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자신의 일을 변호하지 않는 한나의 고지식함을 악용하여 나머지 피의자들은 한나가 유태인들의 죽음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고, 모든 혐의를 떠밀어 버린다. 판사는 필적 감정을 위해 만인이 지켜보는 재판정에서 한나에게 백지를 내미는데……. 당황한 한나는 자신이 보고서를 썼다고 허위 진술을 하고야 만다. 그리하여 다른 피의자들은 비교적 가벼운 4년8개월의 형을 받은데 비해 한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한나가 문맹이었음을 알고 있는 마이클은 교수에게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다. '그녀를 위한 증언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마이클의 말에 교수는 '도덕적 책무의식에서 벗어날 것'을 조언한다. 따라서 한나의 진정한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면회를 신청한 마이클은 구치소까지 갔다가 망설임 끝에 결국 되돌아온다.


사랑했던 여자와 그 여자의 도덕적 무지 사이에서 애증으로 점철된 마이클은 대인 관계에서도 혼란을 느껴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 면회 한 번 없이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마이클은 시골집에 갔다가 우연히 예전에 한나에게 읽어 주었던 '오딧세이'를 발견하고,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녹음 테잎에 책 내용을 담아 보내기 시작한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한나에게 있어 마이클의 존재는 문맹과 문명의 매개자였다. 무의미한 감옥생활에 마이클의 육성이 담긴 고전 테잎은 삶의 생명수나 마찬가지였다. 한나는 점차 활기를 띠어가며 교도소 내 도서관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빌린다. 그리고 생애 처음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글씨 연습을 한다. 왜 다른 작품이 아니고 하필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었을까.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해변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작품은 안톤 체홉의 대표작으로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소설이다. 한나가 꿈꾸던 자유와 진실한 사랑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한나는 이 소설로써 세상을 향한 통로를 열고 싶었던 것일까.

한나의 사회적 자활을 돕기 위해 출소 일주일 전 처음으로 감옥을 찾은 마이클은 한나를 따뜻하게 품어주기 보다 그녀에게서 '나치 전력'에 대한 도덕적 의식만을 검증하려 한다. 어쩌면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기를 갈망해왔기에, 이 또한 한나를 향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나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마이클은 실망하여 냉소적 태도를 보이고, 한나는 출소 일주일을 앞두고 20년을 견뎌온 삶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자신이 읽어왔던 책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쌓아두고 그 위에 올라 목을 매단 그녀는 사랑했던 책들을 죽음의 디딤돌로 삼았다. 책은 그녀에게 있어 삶이요, 동시에 죽음의 동반자였다.

그녀의 유언은 자신이 그동안 모아 둔 전 재산 7천 마르크를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 딸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이클은 한나의 유언을 위해 돈이 담긴 깡통을 들고 뉴욕으로 날아가 지금은 '일리나 부인'이 된 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한나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도 어린 시절 그런 깡통을 가진 적이 있었다면서 화사한 그림 문양의 깡통만을 받겠다고 말한다. 돈은 마이클의 뜻과 일리나 부인의 묵시적 동의로 '유태인 문맹 퇴치 기관'에 기부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용서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가 깡통을 갖겠다는 것은 어린 시절 자신과 같았던 순수한 소녀로서의 한나의 모습에 동질성을 갖는 것이고, 그것은 한나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성이 곧 도덕적이라고 설파했다. 칸트는 지성과 덕성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많이 안다고해서 곧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나의 경우를 보면 인간은 지성에 의해 도덕성도 계발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영화로 케이트 윈슬렛은 2009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30대의 강인한 여인에서 60대의 초라한 죄수까지 30여년의 세월을 자연스레 담아냈다. '타이타닉'에서의 화려하고 매끈한 모습보다, 삶의 곡절에 깊이 고뇌하는 이 배우의 주름진 얼굴은 가슴에 동통(疼痛)처럼 오래 머물러 있을 것 같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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