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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최종병기 활'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웹출고시간2012.01.29 18:53:0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활, 단독자의 무기

활은, 외롭고 쓸쓸한 무기이다. 활을 당기는 자는 자신의 손을 떠나 과녘을 향해 홀로 날아가는 화살의 찰나적인 허공의 생애를 끝까지 혼자 감당해야 한다. 칼이나 창은 쓰는 자의 몸에 붙어 마지막까지 함께 움직인다. 따라서 적과 백병전을 치를 때는 아군의 간섭이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활은 당기는 자의 마음을 담아 멀리 떠나보내야 했기에 단독자의 외로운 무기였다.

과학기술의 시대에 이제 활은 더 이상 무기가 되지 못한다. 동시대의 병기로 사용되었던 칼과 창도 마찬가지다. 다만 각기 국궁이나 양궁, 검도라는 스포츠로 남아 전쟁의 기억을 지운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사일을 비롯한 최첨단 무기는 활의 맥락과 그 사용법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격파할 목표물을 향해 정조준하여 날아간다는 점에서 그 연원은 다르지 않다. 나폴레옹이 세기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포탄의 거리와 각도 계산에 치밀하고 출중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포병장교로서 승승장구하며 야망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기가 스포츠로 환원된 분야 중에서도 활쏘기가 신체 건강 뿐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스포츠로 각광받는 것은 흐트러짐없는 집중력으로 사물에 대한 고요함과 진중함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수라장의 전란 속에서 또 목숨이 걸린 긴박한 상황 속에서 활을 쏘아야했던 궁사의 마인드 컨트롤이 얼마나 중요했을 지는 새삼스런 거론이 필요없을 것이다.

◇주몽으로부터 발현되는 신궁의 역사

중국이 창, 일본이 칼의 역사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는 활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주변국들에 의해 동이족이라 불렸다. 동이(東夷)는 단순히 오랑캐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이(夷)는 대(大)와 궁(弓)을 합친 한자로서 활을 잘 쏘는 민족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은 그 이름의 의미가 '활을 잘 쏘는 자'이다. 따라서 이런 피내림은 영화 '최종병기 활'의 주인공 남이(박해일)가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수많은 외침(外侵)의 역사적 격랑 속 어딘가 숨어 있었을 개연성 높은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의 첫 부분은 한밤중 횃불이 어지럽게 일렁이는 반가의 골목에서 어린 남매가 긴박하게 쫓기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인조반정에 휩쓸려 역적의 누명을 쓰고 무장인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남매는 아버지의 당부대로 북쪽지방의 지인을 찾아가 몸을 의탁하게 된다. 활이 단독자의 무기이므로 주인공 남이는 사고무친이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인가. 역적의 자식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남이는 활쏘기를 연마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욕을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인 활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천추태산(前推泰山) 후악호미(後握虎尾)"

'태산처럼 떠받치고 호랑이꼬리처럼 말아 쏜다'는 뜻이다. 즉 남이의 활쏘기는 야구로 치자면 변화구에 해당하는 곡사의 방식이다. 이는 바람의 저항을 이용하여 화살을 휘어져 들어가게 하는 기법이다.

남이가 주로 쓰는 화살은 편전이라고 하는 특수화살인데 화살이 작아서인지 우리말로는 애기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위력도 강하고 사정거리도 매우 길다. 비행 속도가 빨라 '화살을 쏘았구나' 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에 박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임진왜란 시 신식무기인 조총을 가졌던 왜구들도 이 화살을 무서워했다는 말이 있다. 쏘는 방식이 어려워 잘못 쏘면 자신의 손가락이나 팔이 뚫리는 경우가 많아 고도로 숙련된 무관만이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사용된 화살들은 대한궁술원의 지원을 받고,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신 분이 손수 제작하여 리얼리티를 살렸다.

◇치욕의 역사, 화살로 꿰뚫다

남매가 성장하여 13년 후 여동생 자인(문채원)은 거두어 길러준 아버지의 벗 김무선(이경영)의 아들 서군(김무열)과 혼인하게 된다. 향리 사람들의 다복한 정과 웃음 속에서 혼례식이 거행되던 가장 행복한 날, 청나라의 정예부대 니루들이 온 동네를 휩쓸어 버린다. 이른바 병자호란의 시작이었다.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이 벌어지며 생포된 백성들은 전리품이 되어 북쪽으로 끌려간다. 최명길이 쓴 '지천집'에 따르면 청군이 왕의 항복을 받고 포로로 잡아간 인구가 50만으로 되어 있다. 사실 청국 이전 원나라의 고려 때부터 연약한 백성들은 정기적인 공물이 되어 끌려갔다.

"서로 옷자락을 붙잡고 발을 구르며 넘어져서 길을 막고 울부짖다가 슬프고 원통하여 우물에 몸을 던져 죽는 자도 있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자도 있으며 근심걱정에 기절하는 자도 있고, 피눈물을 쏟아 눈이 먼 자도 있습니다."

고려 말의 유명한 학자 이곡은 원나라 황제에게 이러한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힘없고 무능한 나라와 관리들은 어떠한 힘도 의지처도 되어 주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동생 자인을 구하기 위해 오빠 남이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단신으로 청의 용병들에게 돌진한다. 하지만 청국의 용병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청의 맹장 쥬신타(류승룡)의 역할은 이 영화의 극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역할에 녹아든 류승룡의 연기는 일품이다. 만주어로 말하며 그에 감정을 몰입한 연기력은 당시의 실존 인물이 영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 놀랍다. 그의 카리스마가 생생히 살아있음으로 해서 반대급부적으로 남이가 빛난다. 박해일도 남이역을 잘 소화했지만, 개인적 생각으로는 박해일의 자리에 눈빛 강한 다른 배우를 자꾸 얹어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맡아오던 역할 때문이었는지 도시적 모던 보이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아쉬운 것이라면 우리 조선의 전통적 궁사들이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최고의 기량을 영화에서 별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의 추격신이 주로 험준한 산세와 절벽을 배경으로 하는 때문이기도 했지만, 청국의 기병들이 마상의 무예를 많이 보여준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쉽다. 말과 활의 힘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영화의 청나라 병사들은 거칠고 호쾌한 전투신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용맹무쌍한 병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로 인해 대부분 몰살하게 된다는 것은 이 영화의 '옥의 티'라 아니할 수 없다.


자신이 모셨던 왕자 도르곤에 대한 복수심으로 끈질기게 남이를 뒤쫓는 쥬신타,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여동생을 구하기 위한 남이,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한 서군, 세 축으로 움직이는 이들의 쫓고 쫓기는 긴박한 호흡은 잠시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에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깊고 아름다운 산세와 장쾌한 들판에서의 활극이 시원하다. 촬영이 불가능했으나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 영화의 배경이 된 문경새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등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 속에서 활을 소재로 한 액션 활극은 새롭고 멋지다. 조선시대 삼전도의 굴욕을 회복하기 위해 '박씨전'이라는 소설이 있었다면 2011년에는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가 있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고 극복하는 것이다."

남이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오천년 역사의 와중에 휘몰아쳤던 외침(外侵)의 풍랑을 극복하며 문화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다. 점차 세계를 격동시키고 있는 한류로.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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