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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3.25 17:27:3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정치인의 공약이란 신의 도움이 필요한 경지

애초부터 선거 공약의 내용이 너무 어마어마했다. 하느님이 나서지 않으면 안될 만큼. 앵커 에반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미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멋진 새 집과 새 자동차, 잘 생기고 착한 세 아들, 지혜로운 아내, 에반의 가족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이사하던 첫 날, 아내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정치인이야. 세상을 바꾸고 싶다며? 그렇게 큰 활동에는 무엇보다 기도가 필요해."

에반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침대 머리맡에서 신에게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세상을 바꾸게 해달라'고. 하지만 뭘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자기 나름의 진정어린 계획과 성찰이 있었던 것일까. 그저 당선되기 위해 일시적으로 입에 발린 말이었던 선심 공약은 아니었을까.

다음 날 아침 에반은 6시 14분의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7시에 맞추어 놓은 시계가 이상하게도 6시 14분에 울린 것이다. 다음 날도 이런 현상은 계속된다. 이는 사실 '너는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로 시작되는 창세기 6장 14절의 내용에 에반의 삶이 엮이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메시지다. 즉 에반이 별 생각없이 드린 기도에 신이 적극 응답하여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느님, 스토커 되다

"난 성공했고, 잘났고, 행복하다."

자기최면처럼 이 말을 외우며 출근하던 에반은 현관에 놓인 커다란 나무상자와 맞닥뜨린다. 안에는 공구세트가 가득 들어 있다. 잘못 배달된 물건이려니 무시했지만 다음 날은 커다란 목재까지 집 앞에 쌓여 있다. 영문을 몰라 하는 에반 앞에 흰 옷에 까만 피부를 가진 신(모건 프리먼)이 여유있게 웃으며 앉아 있다. 신은 9월 22일 큰 홍수가 날 것이라며 배달된 물건들로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신참 의원으로서 다수의 보좌관을 거느리고 한참 세속의 권력에 취해 있는 에반에게는 너무도 황당하고 뜬금없는 요구다. 더구나 자신이 잘 보여야할 하원위원장 롱의원이 발의한 공공토지법 개정안으로 인해 에반은 아이들과의 약속도 어길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몸이다. 아무리 신이라 해도 에반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주문이었다.

거절하는 에반을 따라다니는 신의 집요한 스토킹이 그때부터 시작된다. 에반이 가는 모든 곳마다 신은 산재하여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도 불현듯 오토바이 탄 교통경찰의 모습으로 지나가거나 거리를 청소하며 윙크를 던지기도 한다. 신의 피부는 흴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신이 늙수그레한 흑인이라는 설정과 청소부나 운전수, 웨이터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의 모습은 친근하고 정겹다.

에반의 스토커는 신뿐이 아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도시 한복판에서 온갖 야생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에 탔던 것처럼 꼭 암수 두 마리씩 짝을 지어 에반을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그래도 에반이 움직이질 않자 신은 에반의 외양도 바꾸어놓기 시작한다. 아무리 밀어도 계속 자라나는 턱수염, 아무리 벗어버려도 자꾸 걸쳐지는 선지자와 같은 옷차림, 할 수 없이 에반은 세 아들을 데리고 방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신의 선물-누구나 실현 가능한 인생 제작 가이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방주 제작 가이드', 신은 친절하게도 이런 책자까지 선물했다. 방주가 완성되어 가는 것에 비례하여 세상의 조소는 늘어만 간다. 언제나 든든한 지지자였던 아내마저도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났다. 하지만 가는 도중 들른 식당에서 아내는 웨이터로 분한 신을 만난다.

"노아의 방주는 신이 분노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명체들의 러브스토리입니다."

"누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줄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만일 사람들이 서로 가까워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하느님이 뿅하고 묘한 감정이 느껴지도록 할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실까요·"

신은 아내에게 알 듯 모를 듯 이런 이야기를 던지고 사라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음미할 만한 대사이다. 결국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이 메시지에서 묘한 여운을 감지한 아내는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에반 곁으로 와 방주 만드는 것을 돕는다. 세상 모든 동물들도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여 방주 제작을 거든다. 컴퓨터 그래픽의 힘이겠지만 동물들의 작업 모습은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드디어 방주가 완성된 9월 22일, 비는커녕 아주 맑고 쾌청한 날씨다. 언론매체와 마을 사람들은 방주 앞에 몰려들어 마음껏 야유와 조롱을 퍼부어댄다. 잠시 하늘이 어두워지며 빗방울이 떨어져 에반의 가족은 화색이 돌지만 비는 금세 그치고 만다. 그때 저 멀리 거대한 호수의 댐이 무너져 쓰나미처럼 갑자기 물벼락이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서로 밀쳐대며 방주에 오른다. 태풍과도 같은 물살에 휩쓸려 방주는 의사당까지 밀려가서야 비로소 멈춘다. 롱의원이 불법으로 사유화하고 건축법 위반으로 건설한 댐의 부실공사가 불러온 재앙을 에반의 방주로 막은 셈이었다.


이 영화에 등장한 대형 방주는 성서를 바탕으로 길이 138m, 폭 25m, 높이 18m로 축구장보다 더 큰 사이즈다. 제작진은 미국 버지니아주 시골 마을에 실제 노아 방주 61% 크기로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진정한 공약은 사랑과 친절의 마음에서

'노아의 방주'라는 성경 속 이야기가 모티브이고 신이 등장하지만 영화는 종교적 색채 없이 편안하고 즐거우며 동시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요즘 4월 총선과 12월의 대선을 위해 여야를 막론하고 화려한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는 신이 나서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한 공약들도 많아 보인다. 에반처럼 신에게 스토킹 당하지 않으려면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실천해나갈 수 있는, 진정성어린 공약을 발표하면 어떨까.

신은 주인공에게 '방주(ARK)'의 의미가 'Act Random Kindness'라고 말해 준다. '아무 대가없이 일상 속에서 베푸는 작은 친절의 마음'이 결국 세상을 구하는 방주라는 의미이다. 작은 실천이야말로 곧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힘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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