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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하모니'

무기수 엄마와 이들의 특별휴가 위한 노래
여자교도소에 생긴 합창단 '따뜻한 하모니'

  • 웹출고시간2011.04.24 16:55:5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70년대 이연실이 부르는 노래 찔레꽃은 구슬프다. 가만히 들어보라. 1절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다 배고픔을 못 이겨 찔레꽃을 따먹는 가슴 저린 풍경이다. 그리고 2절로 넘어가면 더욱 절창(絶唱)이다. 밤은 깊어가 까만데 엄마 혼자서 달려온다. 하얀 발목 바쁘게 아이에게 달려가는 엄마의 심정. 아이는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그만 잠이 든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이라고 노래한다.

교도소를 무대로 한 영화 '하모니'는 카메라의 눈높이와 앵글의 사이즈는 철저히 '죽음과 이별'이라는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것은 '슬픔'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최적의 재료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초반부터 등장하는 생일축하파티 장면은 현실의 환희와 곧 밀어닥칠 불행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영화의 중간 중간 노래 '찔레꽃'이 무반주로 흘러들어 관객의 마음을 조금씩 슬픔의 강으로 흐르게 만든다.

영화 '하모니'의 스토리를 이루는 근간은 행형법 8조에 있는 '신입자의 수용'이라는 조항에 근거를 둔다. '신입의 여자가 유아를 교도소 등의 안에서 교육할 것을 신청한 때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생후 18월에 이르기까지 당해 소장이 이를 허가할 수 있다.'라는 몇 줄의 조항에서 발현된 상상의 힘이 영화 '하모니'를 만들었다.

영화의 시작은 교도소에서 아들 민우를 낳아 기르는 정혜(김윤진 분)와 함께 수감생활을 하는 '5호방 식구들'과 조촐한 돌잔치로 막이 오른다. 동시에 12개월(1년)을 기념하는 돌잔치와 18개월이라고 명시된 한시적 시간 사이에 무겁게 내면에 가라앉은 슬픔이 똬리를 틀고 있다. 6개월 후에는 이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무기수 엄마 '정혜'의 환경설정으로 아들 민우를 도무지 키울 수 없다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정혜를 돕는 조연들이 교도소에 수감될 수밖에 없는 각각의 사연들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것은 영화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정혜(김윤진)는 의처증으로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사고로 죽이는 바람에 수감된 무기수다. 살인의 이면에는 뱃속의 아이를 지키려고 했다는 정당방위라고 항변해 본다. 정혜 뿐만이 아니다. 연습경기 중 기술을 걸었다가 사람을 죽여 복역 중인 레슬러 연실(박준면), 의붓아버지의 성폭력에 반항하다 밀쳐 살인자가 된 유미(강예원), 그리고 자신의 조교와 바람을 피운 남편을 잔인하게 죽인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전직 음대교수였던 문옥(나문희 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사기를 저지른 화자(정수영)등 저마다의 사연은 다양하다.


'5호 감방' 식구들에게 정혜의 아들 민우는 삶의 활력소였다. 그러면서 6개월 후면 헤어져야 하는 정혜의 처지를 모두 동정한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합창단을 성공하면 아들 민우와 특별휴가를 보내주겠다는 교도소장의 약속이 그것이다. 물론 정혜가 시작한 일이었지만, '5호 감방' 식구들조차 쉽지만은 않았다. 음악교수였던 문옥(나문희 분)의 등장으로 합창단은 비로소 구심점을 찾게 된다. 각기 개성이 다른 재소자들을 하나로 모아 하모니를 이루는 과정은 이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다.


세상을 향한 모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유미가 따뜻한 주변의 동료로 인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나, 밤무대 가수 출신 화자가 자신의 음색을 버리고 합창단의 화음에 맞춰가는 모습과 재소자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천사표 신입 교도관 나영(이다희 분)이 함께 녹아드는 이 영화는 오히려 관객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하지만 화룡정점처럼 마지막 합창단의 방점을 찍기 위해 유미가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학생이라던가 화자가 전직 나이트클럽 가수였다는 설정은 너무 흔한 설정이라 지루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화 '하모니'의 가장 큰 약점은 갈등의 요소가 너무 약하다는 것과 뜻밖의 반전이 없어 영화의 팽팽한 긴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5호 감방'식구들의 합창단 결성에 맞서는 방해 세력의 역할이 너무 한정적이었고, 선임교도관 방과장의 태도도 합리적이지 못하여 설득력이 떨어지는 약점을 안고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합창대회에서 억울하게 절도혐의를 받아 모든 여죄수가 옷을 벗는 억지춘향의 설정도 극적인 절정으로 끌고 가기에는 자극이 미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하모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련한 배우 나문희와 연기파 배우 김윤진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 또한 조연들의 연기가 극적 요소를 실감나게 살려주었고, 눈물샘이 필요한 관객의 어깨를 보듬으며 함께 가슴속에 맺힌 슬픔의 응어리를 토해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세상은 결국 선(善)에 의하여 악(惡)도 순응하고 동화되어 아름다운 세상이 되고 말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일본 바둑계의 살아있는 기성이라고 불리는 오청원 9단은 "바둑은 조화(造化)"라고 말했듯이 '인생도 조화'라는 것을 영화 '하모니'는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이 영화는 배우 김윤진이 왜 세계적인 배우로 우뚝 섰나 그 진가를 알게 해주는 영화다. 어린 자식과 생이별을 하고 방황하는 모정을 유감없이 보여줬으며, 뜻밖에 해후하는 장면과 그 가슴에 남긴 여운을 못 잊어 버스 안에서 혼자 그리워하는 표정 연기는 실로 압권이다. 상영시간의 막바지에 이르면 당신은 쏟아지는 눈물로 몸이 덜덜 떨리는 경험을 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은 끔찍하다. 생이별의 슬픔은 세월이 흘러도 잘 삭혀지지 않는다. 긴 시간이 지나도 날 것 그대로의 아픔으로 살아 있다.

이제 계절의 여왕 5월이 다가온다. 혹여나 산길을 걷다가 햇볕 환히 비친 곳, 노란 꽃술을 품은 흰 꽃이 기다란 덩굴에 다닥다닥 붙은 것을 보거든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보시라. 그 노란 찔레꽃에서 가만가만 들려오는 노랫말이 떠오를지 모른다. 우리의 기억 속에 슬픔으로 내재된 영화 '하모니'의 영상이 안개처럼 밀려와 마음 자락을 가득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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