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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세 얼간이'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주문 '알 이즈 웰'

  • 웹출고시간2012.01.08 16:54:0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얼간이, 인간적인


'춘돌이라는 김초시네 머슴이 있었다. 나이는 아이들보다 배나 먹었어도 늘 조무래기 아이들과만 어울려 놀았다.'

오영수의 단편 '요람기'에 나오는 춘돌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다. 어릴 적 어느 동네나 얼간이가 한두 명쯤은 있었다. 물자가 풍족하지 못한 시절이었어도 이런 얼간이들 때문에 동네에는 웃을 일도 생기고 각박하지 않은 정이 흘렀다. 하지만 요즈음 동네에는 얼간이가 없다. 잘나고 영악한 사람이 넘쳐난다. 내 생각과 다르면 고소, 고발이 횡행하는 똑똑이들의 세상이다.

얼간이의 사전적 정의는 '변변하지 못하고 덜된 사람'이지만 어쩐지 사전 밖 세상 속 정의는 '어리숙하고 제 잇속 차리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더 강한 듯하다. '바보'나 '멍청이'보다 '얼간이'는 무언가 인간적이면서도 친밀한 느낌을 준다. 인도 영화 '3 idiot'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세 얼간이'로 번역했으리라.

심리학에서 '3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최소한 3명이 모이면 하나의 움직임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고사성어에도 유독 3과 관련된 표현이 많다. 맹모삼천(孟母三遷), 삼고초려(三顧草廬), 위편삼절(韋編三絶) 삼사이행(三思而行) 등 깊고 신중하며 정성스런 행동을 말할 때 3을 사용한다. 종교에서도 3은 균형과 완전함을 의미한다. 피타고라스는 3을 두고 '통합의 숫자 1과 다양성의 숫자 2의 결합'으로 보면서 3을 완벽한 조화로 여겼다. 세 친구 중 란초는 통합, 라주와 파르한은 다양성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 또한 지적 성찰, 웃음, 감동의 그야말로 세 박자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웃고 울다 보면 세 시간 가까운 긴 러닝타임이 아쉬울 정도이다. 인도영화지만 내용은 그대로 한국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한국의 교육과 현실을 이처럼 명쾌한 꼬집은 한국영화도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知)의 성찰


세 얼간이 란초, 파르한, 라주 이들은 인도의 일류 명문공대 ICE 학생들이다. 그러므로 얼간이가 반어적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이들이 행로가 여타의 모범생들처럼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파르한과 라주를 이끄는 란초는 단연 발군의 천재적 능력을 지녔으며 단순주입식 암기를 중요시하는 획일적인 교육시스템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란초는 학교에 들어오던 첫날 후배들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하며 횡포를 부리던 선배를 뛰어난 과학적 응용 실력으로 즉석에서 골탕을 먹인다.

수업시간, 교수가 기계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하자 란초는 '사람들의 편리를 도와주는 것'이라며 기계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자기 나름대로 설명한다. 하지만 교수는 그보다는 책에 나오는 정확한 정의를 암기하여 말하는 차투르의 대답을 칭찬한다. 교수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자 하는 란초는 결국 쫓겨나고, 되돌아오는 란초에게 교수는 왜 다시 들어오는지를 묻는다. 란초는 속사포처럼 대답하는데 그 장면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기록, 분석, 요약, 정리하거나 정보를 논의하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림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종이로 묶여 있는데 커버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머리말, 개요, 목차, 색인이 있고 인간의 계몽, 교육, 이해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시각기관을 통해 전달되며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그게 뭔데?"

"책입니다."

"왜, 쉽게 설명 못 하나?"

"아까 제가 그렇게 했는데, 교수님께서 싫어하셨죠."

학문 숭상에 대한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도 지적 허영심으로 책에 있는 지식을 자기 것인 양 과시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란초가 말하고자 하는 지성이란 취업이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닌, 진정한 배움에 대한 열정이다.

"서커스 사자도 채찍의 두려움으로 의자에 앉는 걸 배우지만, 그런 사자는 잘 훈련됐다고 하지 잘 교육됐다고는 안합니다."

란초의 이 말은 참교육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웅변해 주고 있다.

소설에 성장소설이 있다면 이 영화는 성장영화라 할 수 있다. 사회인이나 어른이 되기 직전 아이들이나 학생들의 이야기를 성장소설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조력자가 있다. 이 영화에서의 조력자는 란초이다. 사진가의 꿈을 간직하고 있지만 공학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파르한과 병들고 가난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라주의 꿈을 실현시키는데 란초는 결정적 도움을 준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 봐, 그럼 성공은 뒤따라 올 거야"라는 란초의 말이나 "항상 갈망하라, 항상 무모하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은 결국 상통한다.

◇모두를 끌어안는 힘, 익살과 해학


참다운 학문과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진지한 물음을 이 영화는 해학적 코드로 작동시키고 있다. 다른 영화의 거의 두 배 가까운 상영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가 곳곳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익살스러움은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바이러스' 교수나 지극히 속물적인 차투르마저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즉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인간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해학의 힘이다. 그리고 이 웃음이야말로 만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최적의 장치인 셈이다. 스승의 날 기념식에 바이러스 교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뜻도 모르는 힌디어로 연설하게 된 차투르…. 란초는 연설문 곳곳의 '헌신'을 전부 '강간'으로 몰래 바꾸어 버린다.

"교수님은 우리를 위해 열심히 강간하셨습니다. 이를 본받아 우리들도 전 세계에 변태의 깃발을 꽂읍시다."

의미는 아랑곳없이 도서관 사서가 써준 연설문을 무조건 외운 차투르는 신나게 위의 내용을 연설한다. 학생들은 포복절도하는 가운데 암기식 학습의 폐해를 깨닫게 된다.

또한 위독한 라주의 아버지를 간호하다 시험에 지각한 세 사람의 답안지를 받아주지 않겠다는 교수에게 란초는 엄숙한 목소리로 '제가 누구인지 아느냐'를 묻는다. '네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대통령 아들이라도 받아줄 수 없다'라는 교수의 대답에 세 얼간이는 '우리가 누군지 모른단다' 라고 환호하며 산더미같은 답안지 속에 자신들의 답지를 섞어버리고 달아난다. 사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면서 엄격한 잣대만을 들이대는 교수진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세월을 품어내는 따스한 정(情)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찌 오늘을 살겠는가.' 란초가 친구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그리고 주문처럼 '알 이즈 웰'이라는 낙관적 긍정적 사고를 심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란초는 바이러스 교수의 '인생은 레이스다'라는 모토에 충실하며 체제에 순응하여 혼자 질주하는 차투르와는 차원이 다른 사고를 지녔다.

자살을 시도하다 식물인간이 된 라주를 살리기 위해 란초가 벌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그러한 라주를 결국 일으켜 세운 것은 란초와 파르한이 지치지 않고 주입한 희망 바이러스였다. 란초의 우정은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공부를 미루면서까지 낙제한 친구의 과제물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고, 자신을 학교에서 내쫓고자 핍박하는 교수의 딸과 아기를 전기공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살려낸다. 그 냉정한 바이러스 교수도 그동안 '최고의 학생'을 찾고자 32년 동안 간직했던 만년필을 란초에게 아낌없이 선물한다. 그리고 10년 후 란초는 차투르가 목매는 특허 400개를 가진 과학자가 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란초는 라다크의 산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인도와 라다크의 멋진 풍광과 여기에 깔리는 아름다운 음악까지, '세 얼간이'는 풀코스의 정식으로 펼쳐지는 성찬을 한껏 차려 주었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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