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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다슬이'

'파도야 말해 주렴, 바다 속 꿈나라를'

  • 웹출고시간2012.11.04 14:43:2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외로운 바닷가 소녀

외딴 바다 위 조그만 섬마을

소년은 언제나 바다를 보았네

바다 저 멀리 갈매기 날으면

소년은 꿈 속에 공주를 불렀네

파도야 말해주렴 바다 속 꿈나라를

파도야 말해주렴 기다리는 소년……

바닷가에서 자란 것은 아니나 이정선의 '섬소년'을 들으면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충청도 회인 시골 마을은 바다나 섬과는 정말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섬소년'에서 어떤 향수가 느껴지는 것은 어른들이 일 나가시고 혼자 고적하게 산야를 배회하던 기억이 새롭기 때문이다. 작은 산 위에 올라 저 들판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아득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자라 초등학교(당시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섬마을 소년'을 읽고, 그 후 '섬소년'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그 이야기와 음악의 결합은 마치 내가 살았던 삶의 한 부분처럼 깊게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 '다슬이'에서 바닷가에 사는 아홉 살 소녀 다슬이도 '섬마을 소년'처럼 외롭다. 자폐증을 앓는 다슬이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담벼락에 그림 그리는 것으로 매일을 소일한다. 다슬이에게 캔버스는 한 장의 도화지가 아니라 포구의 한 마을, 아니 측량할 수 없는 마음 속 전체였다.

영화 다슬이의 모티브는 단순하다. 도화지 수십 장을 계속 시커멓게 칠하기만 하는 남자아이를 고치기 위해 많은 전문가와 의사들이 나섰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는데, 결국 아이가 그리고자 한 것은 아주 거대한 고래였다는, 일본의 1분 30초짜리 짧은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한다.


가족의 무한한 사랑

다슬이가 사는 포구의 마을 사람들은 다슬이가 여기저기 그려놓은 그림을 지우느라 늘 바쁘다. 배와 사람들, 게, 강아지, 눈사람 등 넓게 펼쳐진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그림을 그리는 다슬이의 마음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다슬이가 표현해내는 아름다운 색채의 풍경마저도 그저 낙서로만 생각하고 무심히 넘긴다. 그런 다슬이를 무조건적으로 포용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할머니와 삼촌이다. 활어장에서 막노동일을 하는 할머니와 동네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삼촌이지만 다슬이에 대한 사랑과 이해심만큼은 누구보다 깊다. 마을 모두가 다슬이를 경원하고 무시해도 할머니와 삼촌은 묵묵히 속 깊은 애정으로 다슬이를 돌본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싸우거나 어쩐지 외롭고 시무룩할 때 할머니에게 달려가면 '아이구 내 새끼'하며 늘 치마폭에 감싸 주셨다. 무조건적인 애정, 그것만큼 사람에게 힘을 주는 것이 어디 있으랴. 배움도 없고 무식해 보이는 삼촌이 다슬이에게 쏟는 애정 또한 가슴 뭉클하다. 다슬이에게 크레파스를 사주기 위해 굽실거리며 돈을 얻고 언제나 페인트를 준비해 두었다가 마을 사람들이 항의해 오면 페인트칠을 해주기 바쁘다. 저녁이면 고된 일과를 마치고 모자가 다정히 고스톱을 치며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정겹다.

앞가슴에 늘 강아지와 망원경을 달고 다니는 다슬이는 항상 고개의 각도를 전천후로 바꾸어가며 마을을 살핀다. 그리하여 늘 같은 자세로 앞만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과는 보게 되는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다슬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다른 이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세계가 담겨 있다.



다슬이 망원경 안의 반짝이는 바다에는 등대 위로 고래와 게가 뛰어오르고 눈사람과 강아지가 같이 날아오른다.

눈사람을 따라간 소녀

"아빠, 그 '눈사람' 비디오 어디 있지?"

며칠 전 중학생 아들 녀석도 눈사람 비디오를 찾은 적이 있다.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눈사람'에 대한 정서가 있다. 함박눈이 내려 눈사람을 세우고 나뭇가지로 얼굴에 표정을 만들어주면서, 언젠가는 녹아내릴 눈사람에게 유한한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들 또한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다슬이가 집안에서 하는 유일한 일은 눈사람이 나오는 비디오를 보는 것이다. 어린 소녀와 눈사람이 손을 잡고 같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내용이다. 간절히 눈사람을 바라는 다슬이의 소원을 하늘이 들어준 것인지 좀처럼 눈이 오지 않던 바닷가 마을에 눈이 내리고 다슬이는 눈사람을 만든다. 눈사람이 녹아내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다슬이를 보고 삼촌은 중고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구해와 다슬이의 눈사람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준다.

어느 맑은 날 다슬이는 산비탈 꼭대기의 어느 집 지붕에 페인트칠을 하던 삼촌의 고개를 45도 비딱하게 돌려주며 자꾸만 무언가를 보라고 말한다. 영문을 몰라 고개를 비스듬히 한 채 마을 전체를 조망하던 삼촌은 다슬이가 그려 놓은 그림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른다. 눈시울에는 환희의 눈물이 어려 있다. 다슬이는 마을 전체를 캔버스삼아 대여섯 개의 집 지붕, 담벼락, 골목길을 연결해야 볼 수 있는 큰 집게발을 가진 '게'그림을 그려 놓았던 것이다. 다슬이는 일부 자폐아에게 나타나는 서번트 증후군-특정 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에 어머니에게 삼촌은 말한다.

"다슬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가 아닐 수도 있어."

"그렇지."

할머니도 맞장구친다. 그날 밤 다슬이는 잠든 식구들을 위해 연탄을 갈아놓고 마당에 나가 대나무 잎을 따서 눈사람의 날개를 정성스레 달아 준다. 그러는 사이 삼촌과 할머니는 연탄가스로 인해 숨을 거둔다.

사고가 난 그날 밤, 전기도 끊겨진 냉동고 안에는 눈사람 대신 물과 눈사람의 초록목도리-흔히 때타월이라고 불리는 것-만이 찰랑거린다. 다슬이는 망원경을 걸고 등대로 높이 올라간다. 밤바다에는 등대 불빛만 일렁인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바다에는 어른 눈사람이 아기 눈사람의 손을 잡고 다슬이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다슬이도 아슬아슬하게 손을 뻗는다.


어느 바람이 부는 날 저녁에

어여쁜 인어가 소년을 찾았네

파도야 말해주렴

바다 속 꿈나라를

파도야 말해주렴

그 소년은 어디에……

다슬이도 눈사람이 사는 나라로 떠난 것일까. 소녀가 꿈꾸던 그 세계에는 게와 강아지 고래… 들과, 장애가 있든 없든 모두 차별 없이 행복할까.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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