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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나쁜 놈'들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

  • 웹출고시간2012.07.29 17:47:2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영화 '대부'의 OST가 흐르면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 딱히 규정짓지 못할 어떤 감정이 한껏 고양되면서 원인모를 비장미에 심취되는 기분이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검은 자동차들이 가을날 낙엽 위로 연이어 미끄러지며 '백학'이 흐를 때, 비록 건달이라 해도 주인공 태수처럼 시대의 인물로 장렬히 사라져도 좋을 것 같았다. 주윤발의 '영웅본색'은 또 얼마나 가슴을 흔들었던가.

2000년대 이전 갱스터 무비나 홍콩 느와르의 액션물들은 수컷의 향취로 가득 차 있었고, 지나온 청춘의 나날들에서 접했던 그 영화들은 이제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2012년, '범죄와의 전쟁'이란 영화를 맞닥뜨리고 난 후, 그동안 내가 얼마나 포장된 남성성의 겉멋에 취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폭과 연루된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다루고 있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다루어내는 연출의 시각은 다른 조폭 영화들과 많이 달랐다. 앞서 말한 영화들이 마치 광고와 같은 느낌의 영화라면 '범죄와의 전쟁'은 날것 그대로의 논픽션과 같은 영화다. 부조리한 사회 속의 조직폭력배가 '멋있다는 생각'을 일거에 싹쓸이한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좋은 영화다.


분열된 아버지의 자화상

1980년대 부산, 세관 공무원 최익현(최민식 분)은 갖가지 비리에 몰려 퇴출될 위기에 몰려 있다. 물론 동료 직원들도 다 고만고만하게 '해 먹었지만' 부양가족이 제일 적다는 이유로 상사가 그를 지목한 것이다. 고민에 휩싸여 있던 차 최익현은 순찰을 돌던 중 우연히 숨겨 놓은 마약을 발견하게 되고 판로를 물색하다가 부산 제일의 주먹 최형배(하정우 분)을 만나게 된다. 형배의 부하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견디면서도 익현은 형배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세 아이와 시집 안 간 두 여동생을 둔 가장으로서 그는 그 어떤 기로에서도 망설임이 없다. 옳은가 그른가 하는 도덕적 판단은 그에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익인가 손해인가 하는 대차대조표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경주 최씨 충렬공파 후손으로서의 혈맹을 다짐했던 형배와의 담합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휴지조각보다 못하다.

호텔의 지분, 유흥업소에서의 이권, 카지노 사업 등의 이권 앞에서 최형배와 김판호 사이를 오가다 익현은 짐승과도 같은 수모를 수차례 당한다. 그중에서도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야산의 구덩이에 던져져 오물 세례를 받는 모습은 인간 존엄성의 바닥을 드러내준다. 핏물이 흐르는 얼굴 위로 떨어지는 오줌 줄기는 가축이 도축되는 것보다 더 심한 역겨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 나락으로까지 떨어져가며 그가 얻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와 가족끼리 둘러앉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익현은 아들에게 영어 단어를 테스트 한다. 단어의 뜻을 묻고 또박또박 대답하는 아들을 칭찬하는 그 모습은 평범한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똘마니 조폭들과 패싸움을 하고 술집 마담과 머리채를 잡는 드잡이를 하는 등 시궁창 같은 곳에서 돌아와서도,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 눈길만큼은 천상의 온기를 품고 있다. '공무원'이었는데 먹고 살려 하다 보니 막장 같은 인생으로 꺾여 버린 그의 행로가 한편 가엾기도 하다. 형배가 던진 술잔에 깨진 거울 위로 비치는 익현의 얼굴은 파편화되고 분열된 최익현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리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

1988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따라서 부산 지역의 조직폭력배들과 그와 연루된 최익현도 '달려 들어간다.' 최익현 담당 검사 조범석은 조폭들에게 악명 높은 검사다. 그에겐 뇌물도 어떤 향응의 조건도 먹히지 않는다. 익현은 그동안 해왔던 대로 혈연, 지연, 학연 등 모든 인맥을 동원해 그를 '구워 삶으려' 하지만 조검사는 '날것' 그대로의 전형적 검사다.


"난 네가 깡패인지 아닌지는 관심 없어. 내가 깡패라고 말하면 넌 그냥 깡패야."

자신은 깡패가 아니라고 강변(强辯)하는 익현에게 조검사는 이렇게 응수한다. 조검사가 범죄자들에게 보이는 단호한 자신감은 일견 자만심으로 여겨질 정도다. 궁지에 몰린 익현은 할 수 없이 조검사에게 협상 조건으로 최후의 카드 '형배'를 제시한다.

익현은 미끼가 되어 형배의 은신처로 찾아 들어간다. 옆구리에는 야쿠자에게 선물 받은 권총을 숨겼다. 은신처에서 익현과 함께 차를 타고 나오던 형배는 조검사 일행에게 포위되자 익현에게 칼을 휘두른다. 익현은 권총을 빼들었지만 방아쇠도 제대로 당겨보지 못하고 형배에게 여기저기 온 몸을 찔린다. 물리적 힘에서 익현은 형배의 적수가 못 되었다. 폭력에 몸 담근 것은 둘이 같았지만 그 세계에서 둘은 또 달랐다. 형배는 단순히 물리적 폭력의 세계였고, 익현의 폭력은 다양한 인맥과 사회적 계층을 얽어맨 구조적 폭력의 세계였다. 검거된 익현의 총에는 총알이 없었다. 그리고 익현은 형배에게 수차례 찔렸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이 영화 '살아 있네'

시간이 흘러 2012년, 익현의 손자 돌 잔치날이다. 그의 아들 최주한은 서울 지검 검사가 되어 있어, 돌잔치는 각계각층의 손님들로 흥성스럽다.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검사가 된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아버지가 행한 악습과 구태(舊態)속에 성장한 아들 또한 어쩔 수 없이 그 구조적 폭력의 추악한 얼굴로 살아갈 기미가 언뜻 비친다. 그러한 예측은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익현의 등 뒤로 나지막한 음성이 들림으로써 더 확실해진다.

"대부님."

아마도 긴 형량(刑量)을 마치고 출소한 듯한 형배의 음성이다.

이 영화는 조폭을 그야말로 '포스 있게' 해줄 어떤 비장한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이 즐겨 들었던 음악들이 상황과 별다른 맥락없이 곧잘 흐른다. 그것이 이 영화를 더 '날것'으로 만든다. 영화에서 어떤 정황이 좋거나 마음에 드는 일이 생기면 조폭들은 '살아 있네'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또한 '살아 있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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