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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16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어워즈, 67회 런던 국제영화제, 71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LURRA-GREENPEACE 상), 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17회 아시아필름어워즈에서 수상했다.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상영관을 검색했다. 이럴 수가. 충북에는 상영관이 없다. 청주, 충주, 제천은 물론 인근의 세종시까지 전무하다. 직지의 도시, 기록문화 도시 청주에 개봉관이 하나도 없다니. 문화도시가 아니라 문화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전국의 상영관을 뒤졌다. 가까운 충남과 전북, 대전에는 상영관이 있었다. 결국 대전으로 향했다.

영화는 평범한 시골 마을 하라사화에 부는 개발의 이슈라는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한 연예기획사에서 글램핑장 건설 계획을 세우고, 설명회를 하면서 갈등이 야기된다. 주민들은 물의 오염과 사슴의 서식지 문제로 개발을 반대한다. 주인공인 타쿠미는 마을의 관리인 역할을 하며 딸 하나와 둘이 살고 있다. 연예기획사 직원인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타쿠미를 설득하라는 회사의 지시를 받아 시골로 다시 내려온다. 그날 타쿠미의 딸 하나가 실종되고 모두가 하나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하나는 총에 맞은 사슴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다. 이를 본 타카하시가 하나를 구하려 하자 아버지 타쿠미는 그를 목 졸라 죽인다. 잠시 후 하나는 사슴의 공격으로 쓰러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이 교교히 흐르고 하나를 안고 가는 타쿠미의 거친 숨소리가 흐르고 음악이 흐르며 106분의 영화는 앤딩크래딧을 올린다.

하마구치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일주일 후, 다시 영화관을 찾았다. 하루 세 상영하는 영화를 다 예매했다. 영화관 근처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종일 영화를 봤다. 아무것도 없는 잔잔한 영화인 듯싶다가도 뭔가 가득 담고 있는 영화인 것 같다. 그러나 잡히지 않는다. 처음 영화를 보던 날은, 낯선 화장실에서 급한 볼일을 본 후 휴지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의 기분이었다. 네 번을 보고 난 지금은 뒤처리를 하지 못하고 바지를 올린 채 화장실을 나온 느낌이다. 지루한 트래킹숏과 롱숏을 떠올리며 의미를 찾는다. 욕망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문제해결 내러티브다. 처음 시작할 때 카메라는 로우앵글로 숲을 아래에서 위로 비춘다. 한참을 나뭇잎 사이사이를 비추다가 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에 가서야 아이의 시점임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시점은 변한다. 초반에 아이의 시점이었다가 땅와사비나 죽은 사슴 뼈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자연의 시점으로 인간을 올려다보고 있다. 연예기획사 직원들이 차를 타고 마을로 가는 장면에서는 뒤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시점으로 이들을 잡는다. 아마도 감독의 시점일 것이다. "발란스가 중요"하다는 주인공의 대사는 자연과 삶을 대하는 자세를 생각하게 된다. 또 "물은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가므로 상류에서 한 일은 반드시 하류에 영향을 준다"는 마을회장의 발언은 사회의 지도층 내지 상류층에게 메시지를 남기려 한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즉 정도가 지나치면 균형이 깨지므로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마지막에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죽이는 것도 도시인인 그가 타쿠미의 영역으로 발을 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슴이 하나를 공격한 것도 자연의 선(線)을 넘어 균형을 깨려 한 인간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선과 악은 상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입장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나는 과연 선(線)을 지키며 살고 있는가. 곰곰 생각에 잠기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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