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생태·환경 전문가들이 1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11일부터 13일까지 청원군 강내면 한국교원대학교 교원연수원에서 열리는 '8회 한·일 논생물 조사 교류회'에 일본 논생물 전문가 30여명이 참석했다.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한·일논생물조사교류회는 한국과 일본의 논습지 관련 NGO단체, 연구자를 비롯한 생산자, 소비자들이 모여 1년 동안의 활동과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소통과 축제의 장이다.이 교류회는 아시아 지역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주식으로 이용되는 쌀을 생산하는 논이 식량 생산지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자연습지로서의 가치를 널리 인식시키기 위해 마련됐다.환경 농업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생물다양성을 살리는 농업 기술의 보급에 앞장서 지난 7년 간 친환경 농산물은 고부가가치 작물로 자리매김했다.'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논농업을 지키자'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교류회의 연구발표는 12일 오후에 예정돼 있다.이 자리에서 한·일 환경·생태 전문가들은 각 나라에서 행하고 있는 다양한 친환경 농법을 소개하고 연구 방법을 교류하게 된다.김상호 청개구리쌀정보화마을위원장은 청원군 강내·옥산면, 청주시 일원에 보급돼 지역…
37. 야스쿠니신사 같이 위험한 유슈칸(游就館) ■ 야스쿠니신사 옆의 군사박물관 유슈칸(游就館)야스쿠니신사 옆에 유슈칸(游就館)이라는 이름의 군사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의 전시관 구성은 전문성에선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에겐 설립 목적과 영향력에서 보면 최악의 박물관이다. 일본제국의 팽창과 몰락을 압축해놓은 전시물은 침략을 받은 이웃나라 국민이 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 박물관은 육군경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가 발의해서 메이지정부를 위해 죽은 정부군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1882년에 이탈리아 고성 양식의 당당한 건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성격이 달라졌다. 일본제국 군대의 무기를 자랑하고 전쟁에서 확보한 노획물을 보여줄 장소가 필요하자 군사박물관 용도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관동대지진 이후 다시 건축한 유슈칸의 전시자료는 갈수록 많아졌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이후 중국 대륙에서 약탈하거나 연합군과 전투에서 탈취한 노획물이 대거 늘어났다. 패전 후 폐지되어 야스쿠니회관에 작은 규모의 '보물유품관'으로 명맥을 잇던 유슈칸은 일본경제가 커지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분위기가 일어나자 시설을 개수해서 1985
도토리묵밥과 도토리전. 도토리와 관련된 식품은 지금은 별미내지 다이어트식으로 많이 찾지만 전통시대에는 달랐다. 도토리는 우리나라 전통시대 때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다. 문헌상 도토리가 구황식품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4세기 후반의 고려 충선왕 때이다. 충선왕은 흉년이 들자 반찬수를 줄이고 손수 도토리 맛을 봤다. '이달에 왕이 흉년에 백성이 굶주림으로 반찬을 줄이고 내주(內廚)에 명령하여 도토리를 바치게 하여 맛보았다.(是月 王以歲凶民飢 減膳 命內廚進橡實 嘗之)'- 고려 후기를 산 인물로 윤여형(尹汝衡·?~?)이 있다. 그는 벼슬이 높지 않았으나 고려후기의 부조리한 사회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의 시 '橡栗歌'(상율가)에 그같은 일면이 잘 드러나 있다. '상율'은 직역하면 '상수리 밤'이라는 뜻으로, 도토리를 지칭한다. '촌집 늙은이 마른 밥 싸 가지고(村家父老裏O糧) / 새벽에 수탉 소리 듣고 도톨밤 주으러 가네(曉起O取雄鷄聲) /…/ 온종일 주워도 광주리에 차지 않는데(崇朝O拾不盈筐) / 두 다리는 동여놓은 듯 주린 창자 쪼르륵(兩股束縛飢腸鳴) / 날 차고 해 저물어 빈 골짜기에 자네(天寒日暮宿空谷)'- 칠언고시 형식인 이 한시
일본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군마현(群馬縣) 이와주쿠(岩宿)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자료 145점이 한국에서는 최초로 공주시에서 전시된다. 공주시는 일본 이와주쿠 박물관 및 메이지대학 박물관과 공동으로 '일본 구석기의 시작,이와주쿠 특별전시회'를 15일부터 2014년 2월 2일까지 석장리박물관에서 연다.전시는 △이와주쿠 발견의 의의 △문화재 지정 △발굴 이야기 △일본 구석기 이야기 등 4개 주제로 나뉘어 진행된다. 전시될 유물 중에는 1949년 1차 발굴 조사에서 최초로 발굴된 일본 구석기 국부마제석기(局部磨製石器) 2점이 포함돼 있다. 이와주쿠 구석기 유물들은 현재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국보급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 29점이 이번 전시에 포함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양국의 기원과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풀어 준 최초의 단서가 된 석장리와 이와주쿠의 최초 교류"라며 "특히 공립박물관으로는 최초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일본 구석기 유물을 진품으로 전시한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이와주쿠 유적:1949년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구석기 유적으로,일본 구석기 연구의 초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석장리유적과 많은 공통점을 가진 이와주쿠
36. 비밀병기를 연구한 '노보리토연구소' ■ 일본의 과거사 문제오늘날의 일본은 과거의 일본제국과 다르다. 하지만 지금도 과거의 일본제국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자주 드러나고 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욱일승천기이다. 일본제국의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욱일승천기가 도쿄 도심의 시위대 손에서 휘날리고, 심지어 전 세계인이 TV로 보고 있는 국제경기장 관중석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몰지각한 역사의식의 원인은 무엇인가. 일본제국을 단절하지 못한 것은 크게 보아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인적 계승이다. 일본제국의 침략과 탄압, 학살과 수탈에 책임이 있는 인물들이 패전 이후 미군정이 끝나자 국가를 인수받았다. 그리고 일본경제를 세계 2위 수준까지 성장시켜서 과거사를 묻어버렸다. 둘은 메이지유신 이후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가르친 역사교육이다. 일본제국이 러시아와 전쟁을 해서 승리하고 세계적인 강국이 된 과정을 극적으로 보이게 장식을 했다. 시바료타로의 이른바 '밝은 메이지'가 그것이다. 그러니 제국주의 팽창의 역사 속에서 침략과 수탈의 실상은 숨겨지게 되었다. 마지막이 극동군사재판의 전범처리가 깔끔하지 못했던 것이다. 점령지에서 침략군이 소리쳤던 만
진천군은 오는 5일 국립 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인이며 화가인 표암 강세황 선생 탄신 30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사)한국미술사학회와 국립 중앙박물관 주관으로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표암 강세황- 시대를 앞서간 예술혼' 특별 기획전 기간에 맞춰 추진된다.강윤기 진주 강씨 진천군 종회장은 "이번 특별전시회와 학술심포지엄을 통해 詩·書·畵 삼절이자 18세기 예원의 총수였던 강세황 선생의 역동적인 삶과 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강세황 선생의 묘소는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일원에 위치해 있으며 지난 2011년에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진천 / 조항원기자
◇ '호양지상'의 대화에도 등장'나는 더웁다. 나뭇잎들이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 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 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는 않는다.'-자칭 박제가 되어버린 이상(李箱·1910∼1937)이 사색을 위해 물가를 찾은 모습이다. 조선시대 지식인들도 사색을 위해 물가를 자주 찾았다. 이때 사색의 공간에서 만나는 어류는 생동감 그 자체였다. 이상은 '권태'의 또 다른 곳에서 '무수한 오점이 방향을 정돈해 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임에 틀림없다'라고 표현했다.바로 민물어류 '피라미'다. 다산 정약용은 한시 '잡평'(雜評)을 이렇게 읊었다. '팔곡이라 맑은 못 넓게도 열렸건만(八谷淸淵漠漠開) / 이따금 구름 그림자 홀로 오르내리네(時將雲影獨沿O) / 참 근원 지척이라 맑고 밝음 유별나니(眞源咫尺澄明別) / 오가는 피라미떼 앉아서도 보이누나(坐見O魚自往來).'-조선후기 문신 김창협(金昌協)도 비슷한 분위기의 시를 남겼다. '옛 벼랑 고운 꽃 흐드러지게 피었고(古壁幽花重疊明) / 구름 해 잠긴…
◇1983년 어느 날 충북의 최남단에 위치한 영동은 3도(三道)의 접경지대다. 충남 금산군, 경북 금릉군(1995년 김천시로 통합), 전북 무주군이 접경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경부선과 고속도로의 중간 지점이 영동에 위치하니 지역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심장부가 되는 셈이다.영동은 옥천과 마찬가지로 대전에 생활권을 두고 있다. 생필품의 대부분이 대전에서 반입되고 다시 용산, 황간, 학산, 양산 등의 면(面) 지역으로 팔려나간다.대도시의 생필품과 교역되는 물목은 영동의 특산물인 감, 호두, 밤, 사과, 표고버섯 등이다. 그 중에서도 곶감과 표고는 영동 특산물의 대명사 역할을 한다. 청산과 더불어 영동은 감곶이다. 집집마다 산골마다 감나무 없는 집이 없고, 가로수마저 감나무 일색이다. 군청에 이르는 3㎞ 간선도로에 10여m 간격으로 감나무가 촘촘히 박혀 있다.지난 1970년부터 플라타너스 나무 대신 감나무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하더니 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가을이 되면 탐스러운 열매를 어김없이 맺고 있다. 중심가에서 한발치만 벗어나면 가가호호 옥상 위에 감을 말리기 위한 감타래(시렁)가 동그마니 올라서 있다.수확기가 되면 감은 껍질은 벗는다. 아낙들의 손에 의
율곡 이이(1536~1584)의 '10만 양병론'은 임진왜란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 국내 변란을 예방하기 위한 군사 전략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8일 한국행정학회와 국무조정실이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창조적 지방행정과 국가 경쟁력'을 주제로 개최한 '2013 행정학 공동 학술대회'에서 괴산군 중원대 하종필 초빙교수는 '율곡의 10만 양병론에 관한 소고'란 논문 발표를 통해 이같이주장했다. 하 교수는 "기존 학자의 주장을 검토한 결과 율곡의 10만 양병론을 임진왜란을 대비하기 위한 것과 북쪽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데 사실은 국내 변란 예방 차원의 군사전략이었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는 1573년(선조 6) 12월 서울에서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어 요사스러운 기운이 햇빛을 압박했기에 선조가 간사한 신하들에 의해 국정이 농단 당할 것을 우려해 신하들의 의견을 구했고, 율곡이 1574년 재변의 원인을 없애기 위해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저술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율곡은 1583년(선조 16) 4월 경연 석상에서도 '10년이 못 가서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10만 양병론을 주장했다고 하 교수는 밝혔다. 하 교수는…
35. F기관과 말레이의 하리마오 ■ 하리마오란 말이 유행한 까닭 일본제국의 침략 수법은 비슷했다. 청일전쟁으로 조선을 청에서 떼어낸 다음 보호국으로 만들고 국권을 탈취해서 '무단통치'로 억눌렀다. 타이완은 청일전쟁 노획품으로 청에서 할양받아 '엿과 채찍(飴와 鞭)'으로 1905년부터 1945년까지 40년 간 다스렸다. 중국 동북지역은 관동군이 침략해서 중국에서 독립시킨다며 만주국을 세운 뒤 '모략과 폭력'으로 1932년부터 1945년까지 13년 간 지배를 했다. 동남아에서도 똑같은 수법을 썼다. 일본군의 말레이반도 공격은 진주만을 기습한 6시간 후인 1941년 12월 8일 새벽 1시 30분(한국시간)에 전격 개시하였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이었다. 이것을 일본에서 자존자위(自存自衛)를 위한 전쟁이면서 식민지해방을 위한 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동남아 여러 나라를 침공하고 펼쳤던 모략전쟁을 구미열강의 식민지를 분쇄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이런 거짓말을 반복하게 되면 듣는 사람이 세뇌될 수도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스스로 자기 말에 최면이 되기가 쉽다. 그런데 그것이 일본에서 이루어지는 일본사교육이라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괴산지역의 올갱이국은 특유의 쌉싸레한 맛 뿐만 아니라 건강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올갱이국을 가열할 때 우러나는 파란색의 액즙은 간(肝) 건강에 좋은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영양학계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 "아미노산을 많이 함유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영양학계는 올갱이국에는 부추 또는 아욱이 궁합이 맞는 식재료라고 말하고 있다.올갱이는 음양상 찬 성질을 지니고 있는 반면 부추와 아욱은 따스한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둘을 함께 조리할 경우 궁합을 이룬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괴산 올갱이국과 관련해 또 하나 눈여겨 볼만한 것은 '올갱이'를 표현하는 언어가 무척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올갱이'류의 표현은 충청도나 강원도 일부 지역의 사투리로, 표준말은 '다슬기'다. 그러나 변종언어인 '올갱이'는 괴산지역에서 그 생김새와 모양에 따라 또 한번 세분돼 불려지고 있다.괴산지역에서 올갱이를 잡는 사람들은 껍데기에 오돌토돌한 작은 융기가 있는 것은 '까끌이', 껍데기가 다소 맨질맨질한 것은 '뺀질이'. 그 중간의 것은 '반까끌이', 약간 둥그스럼한 것은 '사발이'라고 표현한다. 이중 '뺀질이'는 물 흐름이 빠른 계곡에서,
독일 구텐베르크박물관장을 역임한 에바 하네부트 벤츠 박사가 평생 수집한 18∼19세기 유럽의 인쇄출판문화 관련 일러스트(삽화)자료 100여 점을 청주고인쇄박물관에 기증했다.벤츠 박사는 "구텐베르크박물관장을 하는 동안 고인쇄박물관뿐만 아니라, 청주시에서 많은 지원과 협력이 있어 상호 정보교류와 교환 전시회가 가능했었다"며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개인 소장품이었던 도서를 기증해 고인쇄박물관의 전시물 확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기증 동기를 밝혔다.벤츠 박사는 현재 진행하는 북 히스토리 집필을 마무리하면 추가로 소장 자료를 고인쇄박물관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귀중한 유럽의 고판본 자료를 기증한 벤츠 박사는 1987년부터 2010년까지 24년 동안 구텐베르크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재임 기간 동서 인쇄문화 교류 증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인쇄박물관과는 2000년 자매결연한 이후 구텐베르크박물관의 세계적 위상과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한 특별전, 학술회의 등 매년 활발한 교류협력을 통해 고인쇄박물관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줬다.특히 2001년 '직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2004년 고인쇄박물관이 유럽인쇄박물관협의회에 동양 최초로 가입할 수 있도록 가교
속보= 6.25 미군 노획 편지 중 받는이(수취인)의 주소가 '충북'으로 돼 있으면서 현재도 생존해 있는 인물이 확인됐다. 본보는 이번 보도건을 마무리 짓는 차원에서 이미 기사화한(6월 10일, 14일, 19일자) 발신인 뿐만 아니라, 수취인 12통의 편지 주인공도 탐문·추적했다. 방법은 전과 같이 주민센터를 통해 지인을 연결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미군이 평양에서 노획한 편지 중 '충북'이 수취인 주소인 인물은 최수철(청원 강서), 이순섭(〃), 이순옥(〃), 전종옥(〃), 리덕기(음성 맹동), 김성래(진천 당부), 김성해(〃), 원영히(단양 보안대), 황호연(청원 강서), 최석영(청원 오창), 문관분(음성 대소), 이원상(충주) 등이다.그 결과, 12명의 한 명인 '이순옥' 할머니가 당시 수취인 주소지(충북 청원군 강서면 현암리)에서 가까운 세종특별시 조치원읍 침산리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년 76세. 이순옥 할머지의 본래 이름은 '이순교'이나, 이는 발신자 전종대(전남 여주 거주) 옹이 1950년 9월 평양에서 편지를 쓸 때 나이 차이(10살)가 많이 나 이름 기억에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나머지 수취인 가운데 △최수철, 전종옥
◇1983년 어느 날 경부(京釜) 국도상의 중간 지점에 자리 잡은 옥천(沃川). 이 곳에 과객의 왕래가 빈번했던 것은 오늘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영남 지방에서 추풍령을 넘어 한양 길을 재촉하는 과객이나 보부상, 소몰이꾼들은 이원면 개금벌과 옥천 삼거리를 지나기 마련이었다.삼거리의 찹쌀 인절미는 오랜 여행길에 쌓인 노독(路毒)을 풀어주는 별미로 개금벌의 청포묵과 함께 고소한 그 맛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고 한다.나그네의 정취가 서렸던 삼거리(현재 옥천읍 삼양리)에는 금산, 대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길목을 지키고 있을 뿐 떡장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치닫는 차량의 행렬과 철마의 경적이 요란을 떨고 있는 게 변모된 삼거리의 모습이다.현재 옥천시장은 삼양리에 개설되고 있는데, 그 이전에는 구읍(舊邑)에 섰었다. 이 일대를 구읍이라 부르는 것은 경부선이 개통되기 전 옥천읍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벌판뿐이던 삼양리 일대는 철도가 개설되면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37년에는 시장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됐다. 3만명의 옥천읍민 가운데 2만5천명이 신(新) 시장인 삼양리 일대에 거주하고 있으니 명실공이 옥천의 노른자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시내버스
속보= 충주 중앙탑(공식명칭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 6호)이 일제가 엉터리로 해체·조립한지 98년만에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앞서 본보는 해체 직전인 1916년에 작성된 중앙탑 원형 실측도가 국가기록원에 존재하는 것을 확인, 지난 < 2012년 8월 13일자> 기사에서 이를 바탕으로 할 경우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9일 지역 문화재계에 따르면 충주시는 총 3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오는 2015년까지 중앙탑을 본래 모습대로 복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첫 단계 사업으로 중앙탑을 정밀측량, 이를 3D(입체) 스캔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업체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시 관계자는 "3D스캔사업의 입찰금액은 6천9백만원으로, 도·시비외에 문화재청 보조금도 포함돼 있다"며 "도내 기업 중에는 응찰자가 없어 조만간 입찰 범위를 전국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충청대학 장준식 박물관장과 대전대 이달훈 교수 등 국내 석조미술 전문가들은 일제가 지난 1917년 엉터리로 해체·조립한 중앙탑에 대해 △4개 면의 탱주 숫자와 면석의 간격이 일정치 않고 △기단 갑석의 경우 부분적으로 다른 석질의 부재라고 밝혔다. 두 전문가는 또 △
충북을 비롯한 전국의 상업계 교사들의 학술대회가 열린다. 19일 한국상업교육학회(회장 김효겸 대원대 총장) 2013 하계학술대회가 22일 공주대 천안캠퍼스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한국상업교육학회는 전국 대학의 상업계 관련 교수와 상업고교장, 교사 등 1천여명으로 조직된 것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학술발표회를 개최하면서 학회지 발간 등을 수행해 오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상업교육과 농어촌직업교육의 현황진단과 미래 발전방향'을 주제로 5개분야로 실시된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박재순(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최고경영자 대상을 수상한다.박 사장은 한국농어촌 발전에 기했을 뿐만 아니라 상업과 농업을 융합해서 공동 발전하는데 기여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병학기자
본보가 단독 입수한 미군 노획 편지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본보 조혁연 대기자는 18일 오후3시20분 'TV조선'에 출연해 편지를 입수하게 된 배경부터 주인공 추적 과정 등을 소개했다.조 대기자는 이날 TV조선 프로그램인 '신율의 시사열차'에서 지난 한국전쟁 당시 청원군에서 강제 징집된 인민군 병사들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10여 통의 편지들을 소개했다. 그는 편지의 주인공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한편, '이산가족찾기', '충주지역 토지개혁' 등 사료적 가치도 재조명했다.특히 4통의 편지를 발송한 전종대(83)옹이 전남 여수에 거주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한국전쟁 당시 그의 군 생활과 애잔한 가족 이야기를 집중 조명했다.조 대기자는 편지 원본을 보고 싶어 하는 주인공 가족의 뒷이야기도 전했다.그는 "편지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원본을 꼭 한번 보고 싶어 했다"며 "편지 소유권이 미국정부에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조 대기자는 편지를 반환받기 위해 하루 빨리 주인이 나타나야 한다고 피력했다.그는 "10여 통에 대한 편지 주인이 아직까지 생존해 있거나, 그 후손들이 한국에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편지의)주인이 나타나면 미국 정부에 반환…
34. 일본군 특무기관의 공작과 비밀전쟁(하) ■ 과분중국(瓜分中國)과 일본군강희제 이후 전성기를 맞은 청국의 판도는 오늘날의 중국 영토와 거의 비슷하다. 흑룡강부터 신강성까지 넓혔고 남으론 티베트와 접경하였다. 이 넓은 땅이 19세기 말에 들어와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갈가리 찢겨졌다. 결정적 계기는 청일전쟁이었다. 청이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자 열강이 아귀같이 달려들었다. 만주와 몽골은 러시아가 선점했고, 산동성은 독일이 차지했다. 영국은 양자강 유역을 빼앗았고, 프랑스는 광동성과 광서성을 세력권에 넣었다. 조차지도 늘어나서 뤼순과 따렌은 러시아, 칭따오는 독일, 영국은 홍콩에 이어 구룡반도를 차지했다. 1896년부터 1898년까지 중국을 분할했던 이른바 과분중국(瓜分中國)이다. 1899년 의화단의 봉기는 이런 침략에 대한 처절한 항거였다. 하지만 8개국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한 이후 중국의 분할은 더 빨라졌다. 청은 대제국의 위신을 상실했고, 더 이상 열강의 침략을 막아낼 군사력이 없었다. 8개국연합군은 영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태리 일본에서 보낸 군대로 구성되었지만 주력은 일본군 제5사단 11연대와 42연대의…
조선 세종대의 한양도성 수축공사에 충청도 사람이 총 5만6천여명이 동원된 가운데 이들이 새긴 각자(刻字) 성돌이 10개가량 현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덕식 전국사편찬위원화 교육연구관이 충북사학 제 27집(발행인 충북대 신영우 교수)에 '충청인들의 서울성곽 축성관계 금석문'(부제: 세종4년 축성을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논문에 따르면 조선의 수도인 한양도성은 태조 4년(1395) 처음 축조된 후 27년만인 세종4년(1422)에 나머지 구간을 수축하게 된다. 이때 8도가 전구간을 배분해 맡은 가운데 충청도 각 고을에서 동원된 수축군은 지금의 혜화문-낙산-흥인문 구간을 맡았다.이 구간은 풍수상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곳으로, 인왕산이 있는 우백호에 비해 지맥이 다소 낮고 거리가 짧은 입지환경을 지니고 있다.논문에 따르면 이 구간 성벽수축 공사에 동원된 충청도 수축군은 총 5만6천1백여명으로, 이는 당시 전체 동원인력 32만2천400여명의 17%에 해당하는 수치다.충청도 수축군은 39일간 진행된 성벽공사에서 태조 때 쌓은 744척(약 227m)을 제외한 5천256척(1,627m)을 새로 쌓았다.이때 동원된 충청도 각고을의 수축군들은 'OO 구간은 우리가 쌓았
청주고인쇄박물관은 고객이 OK하는 열린박물관 운영을 위해 운영사업과, 학예연구실 직원 등과 함께 휴관일인 17일 직원워크숍을 실시했다.청주고인쇄박물관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가 간행된 우리나라 유일의 고인쇄 전문박물관으로 연간 관람객이 20만명을 넘고 있다.이날 안승길 운영사업과장은 "오는 8월 금속활자 주조 전수관 개관, 연말 근현대인쇄전시관을 준공 시 직지특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며 "직원 워크숍을 통해 통합시를 대비하고 고인쇄박물관의 미래비전에 대한 의견제시, 박물관 로고·홍보물 제작에 대한 부서 의견을 상호 교환하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고인쇄박물관은 관람객들을 위해 매월 넷째주 토요일 다례체험과 문화행사를 열고,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박물관 광장에서 에어로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수미기자
옥천지역서 문화재 훼손이 잇따르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된다.옥천군은 문화재 현상유지구역 안에서 나무를 무단 벌채한 A(61)씨를 적발해 조사 중이다.A씨는 지난달 20일께 안내면 도이리 지방문화재인 휴율당(後栗堂·충북도기념물 13호) 현상유지구역 안에 있는 소나무 등 10여그루를 무단 벌채한 혐의를 받고 있다.A씨는 "농로를 내기 위해 나무를 베면서 문화재 현상유지구역인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시대 사당인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헌(趙憲)이 봉기한 곳이다.문화재 현상유지구역에서는 허가 없이 벌채 등의 개발 행위를 할 수 없다.앞서 옥천군은 지난해 청성면 산계리 신라시대 산성인 '굴산성(屈山城)'을 훼손한 B(60)씨를 적발, 원상복구 명령했다.그러나 전씨는 "건축 허가를 잘못 내준 옥천군의 책임"이라며 최근 청주지법에 원상복구명령 무효 확인소송을 내 승소했다.B씨는 2011년 9월 이곳에 주택과 창고를 짓기 위해 옥천군으로부터 개발행위와 산지 전용허가를 받아 흙을 파내는 공사를 했다.이 과정에서 석축 등이 외부로 드러나면서 훼손됐다.옥천군청의 문화재 관리 담당자는 "굴산성 같은 매장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개발행위 허가 때 부서간 협력체제를
속보= 미군이 6.25때 평양에서 노획한 조선인민군의 편지 주인공 중 충북을 연고로 한 1명의 생사 여부와 소재지가 본보 추적을 통해 확인됐다. 특히 이 사람은 1950년 7월 청주에서 북한군에 강제징집을 당해 남북을 오가며 모두 3번(총 6년)의 군복무를 한 것으로 나타나, 전쟁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본보는 6월 10일자 3면과 11일자 1면으로 보도했던 충북 연고자 12명 중 편지를 4통으로 가장 많이 썼으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강서면 현암리 100호'를 받는이 주소지로 하고 있는 '전종대'라는 인물을 지목, 인물 추적에 나섰다. 추적 방법은 현주소지인 강서1동 주민센터→현암동 통장→현암동 노인회장→현암동 경로당회장 수순을 밝았다. 그 결과, 강제징집 당시 마을인 현 강서1동에 동생 전종성(75) 옹이 생존해 있고 그를 통해 현재 전남 여수에 살고 있는 형 전종대(83) 옹과 통화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으로, 편의상 존칭은 생략했다. -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북으로 가게 됐나. "청주에 들어온 인민군들은 1950년 7월 청주, 청원지역 2천여명의 장정들을 시내 모 국민학교에 집결시킨 후 강제
옥천지역서 문화재 훼손이 잇따르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된다.옥천군은 문화재 현상유지구역 안에서 나무를 무단 벌채한 A(61)씨를 적발해 조사 중이다.A씨는 지난달 20일께 안내면 도이리 지방문화재인 휴율당(後栗堂·충북도기념물 13호) 현상유지구역 안에 있는 소나무 등 10여그루를 무단 벌채한 혐의를 받고 있다.A씨는 "농로를 내기 위해 나무를 베면서 문화재 현상유지구역인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시대 사당인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헌(趙憲)이 봉기한 곳이다.문화재 현상유지구역에서는 허가 없이 벌채 등의 개발 행위를 할 수 없다.앞서 옥천군은 지난해 청성면 산계리 신라시대 산성인 '굴산성(屈山城)'을 훼손한 B(60)씨를 적발, 원상복구 명령했다.그러나 전씨는 "건축 허가를 잘못 내준 옥천군의 책임"이라며 최근 청주지법에 원상복구명령 무효 확인소송을 내 승소했다.B씨는 2011년 9월 이곳에 주택과 창고를 짓기 위해 옥천군으로부터 개발행위와 산지 전용허가를 받아 흙을 파내는 공사를 했다.이 과정에서 석축 등이 외부로 드러나면서 훼손됐다.옥천군청의 문화재 관리 담당자는 "굴산성 같은 매장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개발행위 허가 때 부서간 협력체제를
33. 일본군 특무기관의 공작과 비밀전쟁(중) ■ 사이고와 야마가타가 보낸 스파이들 메이지유신 직후 사쓰마와 토사, 그리고 조슈번의 군대가 도쿄에 들어와서 고신페이(御親兵)라는 정부의 직속 군대로 편성되었다. 그 핵심은 4개대대 5천명을 가세시킨 사쓰마번의 병력이었다. 이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정부와 군의 중심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 주장자였다. 조선에서 천황이라고 기재한 국서 받기를 거부하자 침략을 주장한 것이다. 1872년 그는 외교사절 하나부사 요시토모(花房義質, 1842~1917)의 일행 속에 스파이들을 포함시켰다. 그중 육군소좌 벳부 신스케(別府晋介)가 2개월 간 정탐을 한 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을 유린하는 데는 일본군 2~3개 중대면 충분하다.” 이때 만주로 간 육군소좌 이케노우에 시로(池上四郞, 1842~1877) 등이 돌아와서 「만주시찰복명서」를 제출했다. 이 복명서는 흑룡회에서 펴낸 『서남기전(西南記傳)』에 수록되었는데, 한국과 만주의 지형 정세 군대 재정 풍속 등을 정탐해온 것이었다.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가 세이난(西南)전쟁에서 패배한 후 자결하자 메이지 군대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속보= 재미 언론학자 이흥환 씨가 공개한 7백여통의 미군노획 편지 중에는 '받는이'(수취인)의 주소가 충청북도로 돼 있는 것이 모두 12통 존재하고 있다.(5월 10일자 3면) 당시 발신인(보내는이)들이 편지를 작성한 시점은 6.25 동란 와중인 63년 전으로, 미군이 평양으로 진격한 1950년 가을 무렵이었다. 따라서 당시 편지를 쓴 주인공들 중 일부는 아직 생존해 있거나, 6.25 휴전후 고향으로 돌아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받는이'의 대부분은 참전하지 않은 후방의 민간인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더욱 높다. 남북 이산가족찾기 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편지를 쓴 주인공 △받는 이의 주소 △'누가 → 누구에게'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①, ②, ③, ④는 어떤 이유로 북한 인민군에 입대한 '전종대'가 고향 '충청북도 청원군 강서면 현암리'의 후배 최수철, 누이 이순섭·순옥 등 2명 그리고 남동생 종옥 등 4명에게 보내려고 한 편지다, ⑤는 리충기가 복무지 황해도에서 충북 음성군 맹동명 쌍정리의 리덕기에게 부치려고 한 편지로, 둘은 부자간이다. ⑥과 ⑦은 평남 성천군의 김동빈이 충북 진천군 당부 김성래 등에게…
[충북일보] 주말 동안 충북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도내 하상도로가 통제되고 나무가 쓰러지는 등 각종 피해가 속출했다. 청주기상지청은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시간당 20~3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시간당 30㎜의 비부터는 보통 '폭우'라고 부르는 수준으로 밭이나 하수구가 넘치기 시작하고, 홍수나 침수 같은 비 피해 위험이 매우 높아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단계다. 충북도 등에 따르면 7일 오후 2시 30분 기준 도내에는 평균 62.1㎜의 비가 쏟아졌다. 지역별로는 △증평 121.5㎜ △괴산 116.5㎜ △청주 87㎜ △진천 52㎜ △단양 49㎜ △보은 45.3㎜ △충주 45㎜ △제천 41.7㎜ △영동 7㎜ △음성 4㎜다. 폭우로 인해 도내 하상도로와 둔치주차장은 일부 통제된 상태다. 현재 도는 청주시 무심천 하상도로, 미암교 하상도로, 충주시 달천 하상도로를 통제 중이다. 하상도로에 설치된 둔치주차장은 전체 27곳 중 15곳이 통제된 상황이다. 폭우 여파로 도내 각종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이날 도에 접수된 풍수해 신고 건수는 총 20건이다. 피해 유형은 △수목전도 12건 △배수불량 4건 △낙석 1건 △기타 3건으로 집계됐다.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충북도가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산업 육성을 위해 특화단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수소특화단지 지정을 통해 산·학·연·관 생태계를 공고히 구축하고, 기업 지원과 기술 개발로 이 분야를 선도한다는 구상이다. 7일 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년 상반기 공모를 통해 지정할 예정인 수소특화단지를 충주시에 유치할 계획이다. 도는 일찌감치 충주를 신청지로 낙점했다. 이 지역의 수소 인프라를 고려할 때 수소특화단지를 유치하면 관련 산업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충주는 수소 분야 기업 26곳이 둥지를 트고 있다. 국내 유일의 차량용 연료전지 생산 거점인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주요 부품업체들이 협력체계를 갖추고 있다. 청정수소 생산과 저장, 유통, 충전, 활용 등 전주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데다 그린수소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 받았다. 바이오가스에 기반한 그린수소는 전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 오는 2027년까지 하루 2.5t의 청정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도와 충주시는 유치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 현재 수소특화단지 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결과는 올해 말 나올 예정이며 용역 과정에서 도출된 경
[충북일보] "단양을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이는 김문근 군수가 지난 6월경 인구 관련 포럼 발표에서 군민들과 약속한 일성이다. 김 군수가 민선8기 38대 단양군수로 임기를 시작한 지 취임 2년을 맞았다. 김 군수는 "지난 2년 동안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을 만들기 위해 주마가편의 자세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단양의 관광 패러다임을 혁신하고 내륙관광 1번지 단양을 향해 한 단게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시루섬 권역 종합관광지 개발과 리조트 조성 등 민간 투자 사업으로 체험형 관광지로서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활성화 투자펀드 공모 사업에 전국 1호 사업으로 단양역 복합 관광단지 개발사업이 선정된 만큼 사업을 꼼꼼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군수는 "민선 8기 단양호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내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 주요 군정 성과는 "적은 인구를 지녔지만 단양군은 지난 2년 동안 대도시에 견줄만한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