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시고쿠 고치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메이지유신! 동아시아 근대화의 시작은 메이지유신이었다. 메이지정부는 서구문화를 수용해서 일본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체제 전반을 변혁했다. 부국강병국가가 목표였다. 이 목표 달성은 성공했다. 메이지유신은 세계사의 기적이었다. 일본이 승리한 러일전쟁은 비유럽국가가 유럽국가에게 패배하지 않은 유일한 사례였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선각자들이 일본에 직접 가서 국가혁신을 배웠다. 지금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근대화 길잡이를 잘 알지만 그것에 감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를 떠올리면 증오감에 치를 떤다. 서구열강의 침략과 수탈을 그대로 모방하면서 잔학한 행위와 대량 학살은 서구 열강을 능가하였다. 메이지유신은 시작 단계부터 침략을 노래했다. 처음 어디에서 이 노래가 나왔는지는 모르나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가 널리 전파하였고,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등 이른바 정한론자가 목청을 높였다. 일본에서 지난 1천년 간 활동한 정치인 중 가장 존경을 받는다는 인물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5~1867)이다. 그는 사쵸동맹을 주선해서 막부타도에 공을 세운 인물로 비교적 깨끗한 인상을 준다. 메이지정부가 탄생하기…
중국판 목민심서인 '울리자'(鬱離子)를 아십니까. 청주지역에도 간혹 출강하는 강정만(서남대 중국어학과) 교수가 '울리자'를 2백여쪽 분량으로 출판사 주류성을 통해 국내 처음으로 번역·출간했다. 특히 이 책은 원말명초의 한 올곧은 중국 선비가 국가와 백성을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가를 싣고 있어, 신정부 참여 인사와 내년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울리자'의 '울(鬱)'은 문채가 있는 모양이고 '리(離)'는 8괘의 하나로 불(火)을 대표한다. 즉 '울리(鬱離)'는 정치교화(政治敎化)가 밝게 빛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울리자'는 책의 제목일 뿐만 아니라 7백년 전에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삶은 산 작자 자신인 유기(劉基·1311 ~ 1375)를 칭하고 있기도 하다. 풍자와 교훈의 내용을 담은 울리자는 치국의 도, 삶의 지혜, 올곧은 선비의 인생관, 변화무상한 세상, 어리석은 자의 종말 등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명쾌한 비유와 함께 쉽게 와닿는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인재를 얻는 법', '못생긴 사람이 잘생긴 사랍보다 살기 편한 이유', '성공의 조건', '사람의 힘과 호랑이 힘의 차이' 등이 있다. 먼저 '인재를…
1919년 3·1운동 당시 충북지역에서 한 달 동안 최소 50회에 걸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나타났다.충북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19일 괴산을 시작으로 4월19일 제천 송학까지 도내 전역에서 펼쳐졌다.조선총독부 경무국의 '고등경찰관계연표'와 조선헌병대사령부의 '조선소요사건상황' 등 일제 측 자료를 보면 충북에서는 3월19일 괴산에서 가장 먼저 만세시위를 전개했다.'고등경찰관계연표'는 이날 괴산에서 장날을 이용한 군중 600명이 경찰서를 습격해 유치인을 빼내려고 문 등을 부숴 주모자 7명을 붙잡았다고 기록했다.충북대 사학과 박걸순 교수는 당시 가장 신속히 보고한 일제 측 자료와 우리 측 자료를 정리한 결과 당시 10개 군 전체에서 50회 이상 만세시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일제 측 자료는 9개 군(단양 제외)에서 38회에 걸쳐 2만4750명(괴산과 진천 석현 제외)이 만세시위에 나섰다고 파악했다.일제는 회고담이나 관련 자료에 4, 5차에 걸쳐 소규모 만세시위가 있었던 단양은 포함하지 않았다.청원군 내수읍 세교리 옛 장터의 의병장 출신 한봉수가 주도한 만세시위와 괴산군 소수면 유해륜 주도 만세시위 등은 판결문까지 있으나 일제는 통계에 잡지 않았다.일제는 각지
충북중앙도서관(관장 김석재)이 운영하는 순회문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순회문고는 군부대, 순찰대, 선교회 등과 같이 도서관 이용이 어려운 기관(단체)에 1회 200권까지 60일 기한으로 도서를 대출해 주는 제도다. 중앙도서관에 따르면 현재 공군제17전투비행단, 흥덕방범순찰대, 황석두루카선교회 등 15개 기관이 순회문고를 이용해 도서를 대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학생종합수련원, 2030부대, 일렉트로닉스, 선교회 등 12개 기관이 41회에 걸쳐 총 4천547권을 대출했다. 순회문고 이용을 희망하는 기관은 중앙도서관 2층 종합자료실을 방문해 신청하고 도서를 대출 받으면 된다. 중앙도서관 관계자는 "희망도서를 직장인과 군부대원 등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순회문고의 장점"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도서관(전화 267-4590)으로 문의하면 된다. /김병학기자
충북의 기미년(1919) 3.1만세운동은 전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최소한 1주일 정도 늦게 시작됐다. 독립기념관이 발간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는 '충청지방 3.1운동의 전파'(제 20권)에서 '충북지방에서는 3월 7일 한봉수가 서문장터의 우시장에서 처음으로 독립선언서를 일반인에게 배포하였다'라고 기술했다. 이와 관련해 '충북도민의 느린 기질탓'도 하나의 이유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충북의 3.1만세운동이 1주일 정도 늦어진 데는 나름의 긴박했던 사정이 있었다. 그 중심에 인종익(印宗益·1870~?)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에게는 기미년 3.1독립선언서를 한양에서 청주로 전달하라는 특무가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3.1독립선언서를 충북지역에 배포하기 직전 미행한 일본경찰에게 청주에서 체포됐다. 이에 따라 청주 등 충북에서의 3.1만세운동은 늦게 시작될 수 밖에 없었고, 그 자신 또한 일제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1개월의 옥살이를 해야 했다. 충북대 사학과 박걸순 교수의 도움을 받아 당시 긴박했던 진행됐던 흐름을 정리했다. 그리고 일본경찰서에 의해 2차례 작성된 '신문조서' 원문도 지상에 최초로 공개한다. 기미년 3.1독립선언서의 인쇄와 배포는 천도교 지
20. 일제의 고승호 격침 미화 고승호(高陞號, The British steamship Kowshing)는 영국 국적의 1,355톤 상선이었다. 일본 군함 나니와호가 이 상선을 격침한 사건은 외교문제로 비화하였다. 당시 고승호는 청국에 고용되어 병력을 수송하는 중이었다. 이 병력은 일본군을 적대하기 위해 파병된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벌어진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진압하러 가는 길이었다. 고승호 격침 사건에는 확인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청의 대고항에서 고승호가 출발할 때는 물론 침몰될 때까지 청일 양국의 어느 나라도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 전쟁 상태가 아닌 시기에 군함이 상선을 침몰시킨 사건이었다. 고승호에 대한 배상금은 매우 큰 금액인 75만 달러가 거론되었다. 국제 해사위원회는 영국의 인도차이니즈 기선회사가 제기하는 배상금 문제를 다뤄야 했다. 이런 요인 때문에 큰 화제가 되었고, 지금도 관련법을 다룰 때 주요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고승호 사건은 동승했던 독일인 교관 한네켄 콘스탄틴 폰(漢納根, 1855~1925)의 진술로 전모가 드러났다. 독일 귀족 출신인 한네켄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독일군에서 육군대위로 전역한 뒤 베를린 주재 중국공사인 리
송종준(58·사진)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증권법학회'정기총회에서 학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증권법학회'는 증권법분야에서 국내 유일의 대표적인 전국규모등재학회로서, 법조인, 학자, 증권실무가 등 600명의 회원과 세종, 율촌 등 법무법인,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 증권금융관련 단체 및 대형 증권회사들이 법인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연간 12회의 국내외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3회의 전문학술지를 발간하는 등 다양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송종준 학회장은 "기업과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법과 정책의 융합시너지를 확대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학계와 실무계와의 폭넓은 교류와 토론을 통해 증권금융, M&A, 회사 관련 법적 인프라 개선을 위해 발전적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임기는 3월 1일부터 2년간이다. /김병학기자
국내에 팔각형 비석이 존해할까 안할까. 극히 드물게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음동마을에 존재하고 있다.충북도가 도유형문화재 제 63호인 이상급(李尙伋·1572~1637) 신도비의 국가보물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신도비는 조선시대 종2품(지금의 장관급)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인물이 세울 수 있는 비석의 일종으로, 주로 무덤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신도(神道)는 신령, 즉 죽은자의 묘로 향하는 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충북도가 이상급 신도비 승격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비가 지닌 형태적 희귀성 △당시 석공의 솜씨 △빼어난 조형성 등의 요소를 두루 고려했기 때문이다.흔하지는 않지만 무덤 둘레석이나 태실 그리고 불교 석조물 등에서는 팔각형 모습을 한 문화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교 석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신도비의 비신(몸체)이 팔각형을 하고 있는 것은 주덕읍 이상급 경우가 거의 유일한 사례가 되고 있다. 또 비신과 이수로 불리는 비의 머리 부분이 이른바 통돌로 된 경우도 흔치 않은 사례로 보여지고 있다. 신도비는 보통 받침돌(대석)-몸체-이수(머릿부분)로 구성돼 있다. 보통의 비는 3개의 석부재로 구성되나 이상급 신도비는 통돌을 깎아 몸체와…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는 키가 컸나, 보통이었나.유 열사의 키는 그 동안 169.68㎝의 '장신'이라고 알려져 왔다. 서대문형무소 수형 기록표에 적힌 열사의 키 '5척(尺) 6촌(寸)'을 현대식 미터법으로 환산해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1척(10촌)은 30.3cm에 해당된다.하지만 지난해 11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열린 '천안지역 항일독립운동의 재조명' 학술대회에서 조용진 전 서울교대 교수(미술해부학 박사)등은 공동 연구 논문을 통해 151.5㎝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수형 기록표의 흘림체 숫자 '0'을 '6'으로 잘못 판독한 데다,사진으로 봐도 장신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천안지역 향토사학자인 임명순(65)씨는 26일 독립기념관에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여는 월례 연구 발표회에서 조 교수 등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종전에 알려진 대로 169.68㎝가 맞다는 것이다. 임씨는 논문에서 "당시 키를 나타내는 단위가 '척(尺) 촌(寸) 분(分)' 으로 돼 있는 유 열사 수형기록표의 '6촌(寸)' 을 '0촌(寸)'으로 봐야 하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다른 수형 기록표의 어떤 '0'자 필체에서도 유 열사 기록표의 '
충북인의 숨결이 어린 기륭 이곳 기륭이 충북 출신 독립운동가의 애환이 깃든 장소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대표적 인물은 청원 출신의 신채호와 충주 출신의 류자명(柳子明)이다. 신채호는 1928년 독립운동 자금 마련의 부푼 기대를 안고 이곳에 도착하여 우편국에서 돈을 찾기 직전 피체되어 그의 조국 독립의 꿈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래서 신채호에게 기륭은 환희와 통한의 땅이다. 한편 광복 직후 곧 귀국하지 못하고 대만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 류자명이 그토록 소원하던 귀국을 위해 1950년 6월 처자를 데리고 부산을 향해 떠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홍콩에 도착하던 날 6·25가 발발하는 바람에 귀환의 꿈을 접어야만 하였다. 따라서 살아서는 조국 땅을 밟지 못한 류자명에게도 기륭은 환희와 통한의 땅이다. 단재가 대만에 온 것은 위조 위체를 찾기 위해서였다. 즉 북경우편국에서 이곳 우편국에 가명으로 보내온 외국환을 현금으로 찾기 위해 온 것이다. 이른바 돈세탁을 하고자 한 것이다. 단재가 외국환을 위조하고자 한 것은 아나키스트 단체의 투쟁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1928년 4월 천진에서 한인 아나키스트 회의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는
독립기념관은 20일 "94주년 3·1절을 앞두고 오늘 기념관 내 밝은누리관에서 3·1운동 관련 국내·외 희귀 자료 3점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미국 국적의 화이팅(Harry C. Whiting·1865~1945) 선교사가 1903년 11월 24일부터 17년간 우리나라에서 선교 활동을 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 3·1운동의 실상을 선전한 호소문은 처음으로 공개됐다고 기념관측은 밝혔다. 미국인이 한국에서 일어난 3·1운동의 탄압 사례 등을 정리,1919년 5월 31일자 'The Literary Digest(당시 미국에서 발행되던 시사주간잡지'에 게재한 기사 'More Light from Korea(한국에서 온 더욱 큰 빛'도 공개됐다. 1919년 7월 미국 뉴욕에 있는 미국 기독교연합평의회 동양관계위원회에서 편찬한 일제의 3·1운동 탄압 보고서인 'The Korean Situation(한국 현황)'은 그 동안 사본을 통해 내용이 학계에 알려졌으나,원본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고 기념관측은 설명했다.천안/최준호 기자
19. 청일전쟁 고승호 격침 일본 순양한 나니와호가 1894년 7월 25일 아산 근해의 풍도 앞바다에서 영국 상선 고승호(高陞號)를 격침시켰다. 선전포고 없이 조선 영해에서 청군을 공격한 이 사건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니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여기서 드러난 일본군의 잔인성이다. 메이지혁명 이후 길러낸 일본군은 육군이건 해군이건 잔인했다. 1894년부터 1945년 패전까지 자행한 수많은 학살의 원인이 사무라이건 왜구이건 그 습성을 계승한 것인지 모르나 몽골군 이후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최악의 사건이었다. 동시에 지구촌으로 표현되는 오늘날 동아시아가 감내하고 해결해야할 최대의 숙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의 극단적인 잔학행위가 난징대도살(南京大屠殺)이다. '난징대도살기념관'은 학살이란 말로 담지 못하는 이 참상을 도살로 표현하면서 희생자 수를 30만 명으로 명시하고 있다. 한 도시 점령 후 벌어진 살육으론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그런 학살의 시작이 고승호 격침이었고, 그 책임은 도고 헤이하치로에 있다. 그는 지금도 일본에서 군신(軍神)처럼 추앙받으면서 야스쿠니신사의 전쟁박물관인 유슈칸(游就館)에 가장 큰 초상화로 걸려있는 인물이다. 야스쿠니신사는 일
'도토리는 6천년 전의 비밀을 품고 있다.'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호수)가 지난 14일 원광대 안승모(고고미술사학과) 교수를 초청, '곡물과 고고학'을 주제로 한 강연회를 가졌다. 안교수로 선사 중 신석기시대 전문가로, 벼와 밭작물 등 한반도 농경의 기원과 관련된 논문을 많이 발표한 바 있다. 안 교수는 이 자리에서 도토리는 한반도 신석기 사람들의 주요 식량자원의 하나였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열매인 밤(栗)은 도토리를 대체해 원삼국시대 이후 마한·백제권(호남과 충청)에서 주요 식량자원의 하나로 소비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에 대해 "신석기시대는 낙엽성 참나무 중심의 숲이 형성된 시기로 수종 분석에서도 참나무속이 다수를 차지한다"며 "많은 유적에서도 도토리 열매가 출토되고 있고, 저장혈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발견된 도토리 열매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울산 황성동에서 출토된 유체(遺體)로, 기원전 6천년전 후반의 연대값을 갖고 있다. 충북에서는 옥천 대천리 주거지에서 이보다 2천년 정도 늦은 도토리 유체가 발굴된 바 있다. 신석기시대 참나무류는 건축재로도 훌륭하게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당시 주거지에서 출토된 목탄을 분석한…
18. 청일전쟁 발발 시바료타로가 소설 「언덕 위의 구름」 에서 아키야마 사네유키에게 왜구의 전법을 전해주었다고 한 오가사와라 나가나리(小笠原長生)는 필생의 사업이 따로 있었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1848~1934)를 미화하는 일이었다. 도고는 군신(軍神) 반열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군신이라면 천황보다 계급이 높은 것인지 모른다. 아니라면 천황이 여러 신(神)을 천상에서 지배하는 절대자로 보는지 또 모르겠다. 여하튼 복잡하지만 오가사와라가 도고를 선전하는 책은 여러 권이다. 1904년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부터 1927년 『도고원수상전(東鄕元帥詳傳)』, 1934년 『만년의 도고원수』 『도고원수』, 1935년 『고 도고원수를 말한다』, 1935년 『도고원수의 위업』, 1936년 『격멸:일본해해전비사』, 1940년 『성장동향전전(聖將東鄕全傳)』, 1941년 『약전도고원수(略傳東鄕元帥)』 등 줄기차게 썼다. 1930년에는 도고의 글을 모아 『도고 헤이하치로전집』 3권, 1932년에는 『애국독본』이란 책도 냈다. 도고 헤이하치로의 생애, 일화, 전투, 평가 등 거의 모든 것이 이런 글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도고종교의 신자라는 말
조선시대 청주지역의 토성(土姓) 중에서 이른바 '혼맥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성씨는 청주곽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금까지 '한명회를 배출한 청주한씨가 혼맥의 구심점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청주 백제유물전시관 강민식 학예사(45·박사)가 최근 '청주의 뿌리를 찾아서'에 16개의 청주 토성 혼맥도를 게재했다. 강 학예사의 글을 이해하려면 토성의 개념을 예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토성은 고려시대 이후 전국 각군현에 토착해 있던 지방 호족들의 성씨를 일컫고 있다. 나머지 백성들은 임진왜란 전까지도 40% 정도가 성이 없는 무성층(無姓層)이었고, 1909년 이른바 민적법이 시행되고 나서야 모두 성(姓)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세종실록지리지가 제작된 조선 전기까지 청주에는 韓, 李, 金, 郭, 孫, 慶, 宋, 高, 俊, 楊, 東方, 鄭, 朴, 申, 葛씨 등 모두 16개의 토성이 존재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토성 청주곽씨의 흔적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은 8세 곽예(郭預·1232~1286)이다. 도기념물 제 20호인 그의 묘는 원래 북이면 내추리에 있던 것을 청주 명암동으로 옮겨왔다.(사진) 그러나 청주곽씨의 청주입향 주
국립 청주박물관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박물관 전통 문화교실'을 운영하기로 하고 19일부터 접수를 받는다.20일부터 6월28일까지 운영되는 이 문화교실은 '맥간아트'와 '규방공예' 2가지 주제로 선착순 25명을 모집한다.'맥간아트'는 보리의 줄기를 이용해 우리나라 전통의 목칠공예와 서양의 모자이크 기법을 접목한 신개념 디자인 공예로, 보릿대의 한쪽을 쪼개 순서대로 붙인 뒤 그 표면에 투명한 칠을 입히는 방법으로 작품을 만든다.조선시대 양반집 규수들이 생활하던 규방(閨房)은 조선 여인의 생활과 문화·예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규방공예'는 이 공간에서 만든 방석, 보자기, 귀주머니 등 생활용품을 말한다.국립 청주박물관은 '맥간아트'와 '규방공예'를 통해 옛 선조의 삶의 지혜와 생활용품 속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규방공예'는 오는 20일부터 6월 26일까지 매주 수요일에 '맥간아트'는 오는 22일부터 6월28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각각 15차 과정으로 운영한다.참가비는 없으며 재료비는 본인 부담이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청주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http://cheongju.museum.go.kr/)나 전
공주 석장리박물관에서 일본 최고(最古) 구석기 유적과 유물을 관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공주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와주꾸(岩宿) 유적과 유물 100여점을 오는 6월께 석장리박물관에 전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11일 밝혔다. 시는 유적의 공주 전시 유치를 위해 지난해부터 일본 군마현 미도리시(群馬현 みどり市)와 꾸준히 접촉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한일구석기문화교류 협약식을 개최했고,올해 1월에는 한일전시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와주꾸 유적 관계자인 군마현 미도리시 문화재과장과 이와주꾸 박물관장은 오는 14~15일 공주를 방문,공주시 관계자와 유적 전시와 관한 세부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시 계획이 확정되면 지난해부터 석장리박물관에서 전시돼 온 중국 최고 구석기(주구점) 유적들은 오는 3월 31일까지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 자리를 이와주꾸 유적이 대신하게 된다. ☞이와주꾸 유적:1949년 일본 최초로 발굴된 구석기 유적으로,군마현 미도리시에 있다. 일본열도에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한 최초의 유적이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돼 1992년 유적 발굴지에 박물관이 세워졌다.☏ 041-840-8925공주/ 최준호기자 c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른바 '묵은 새배'라는 것이 성행했다. 조선 순조 때 홍석모(洪錫謨·1781~1857)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묵은세배를 하느라고 이날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초롱불을 든 세배꾼들이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바로 묵은 세배는 설날 하루 전인 섣달그뭄에 올리는 세배로, 달리 구세배(舊歲拜) 또는 그믐세배라고 불렀다. 묵은 세배는 '한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의미로 집안 어른이나 친지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는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아무래도 여염집과는 다른 설날을 보냈다. 일양세시기(冽陽歲時記)라는 고서는 이렇게 썼다. "대신 이하 모두 무릎을 꿇고 대신이 '정조(正朝)에 문안드립니다'라고 구두로 전하면(…) 중사(中使)가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나와 '지도(知道)'라고 구두로 전하면 대신 이하 모두 물러간다." 인용문 중 '정조'는 설날아침, '중사'는 왕의 명령을 전하는 내시, '지도'는 '알았다'는 뜻이다. 바로 신하들(종2품 이상 참석)이 워낙 많다보니 임금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 내시가 중간에서 오고가며 설날 아침의 인사말을 전했다. 지금의 설날 법정 공휴일은 3일이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선생의 아언 목판본이 문화재로 지정됐다.화서선생 아언은 조선말 주리철학 3대가의 한명으로 칭해지는 화서 이항로(1792 ~1868)가 말년에 병으로 강학을 할 수 없게 되자 문인인 김평묵(金平·), 유중교(柳重敎) 등이 이항로의 수고(手稿)와 경서를 읽고 뽑아서 기록한 가정습록(家庭拾錄)과 제자들의 어록 등에서 발췌, 1867년인 고종 4년에 36편 891조로 편집이 완료된 책이다.화서아언 목판은 화서아언의 내용을 인출하기 위해 판각된 목판이며 하나도 빠짐없이 133매가 온전하게 봉양읍 공전리 소재 자양영당에 보존돼 있다.이번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된 화서선생 아언 목판은 문집 완성후인 1874년 여름에 완성됐고 조선 말기의 척사사상의 근간은 물론 목판 인쇄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제천 / 이형수기자
17. 일본제국 해군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옛 왜구의 전법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시바료타로가 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서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 의미를 부풀렸다.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에게 승리한 큰 요인이 왜구의 전법이라는 것이다. 그가 읽은 왜구책이 필사본 「노시마류해적고법(野島流海賊古法)」 「해적류(海賊流)」 「미시마류(三島流)」이라고 한다. 노시마(野島)는 왜구 거점으로 잘 나오지 않는 섬이다. 그것은 무라카미 해적의 거점인 노시마(能島)의 다른 표기이다. 이런 책을 전해준 동료 해군장교 오가사와라 나가나리(小笠原長生, 1867~1958)란 인물이 묘하다. 그의 아버지는 규슈 가라쓰(唐津) 번주로서 막부의 최고 정무직인 로쥬(老中)를 지냈다. 가라쓰는, 임란 때 도요토미가 세운 전진기지인 나고야(名護屋)성 인근에 있으며, 유명한 마쓰우라 왜구 거점이었다. 왜구 문화에 젖어 살아온 장교가 왜구를 소개한 셈이다.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배운 전법의 핵심은 다음 몇 가지이다. "전력으로써 싸운다." "흩어진 배를 하나로 모은다." "배를 공격해서 사람의 마음을 공격한다." "적의 기를 빼앗는다." 해적은 먼저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서 분산된 적을 격파하
속보=세계 최고(最古)로 학술 및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된 영동군 일원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천연기념물 등 국가문화재 지정이 늦어져 훼손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영동군에 따르면 지난 2011년 5월부터 10월까지 영동읍 계산리와 용산면 율리 등에 분포된 영동 공룡발자국화석지 문화재 지정을 위한 학술용역조사를 실시했다.이 결과 한반도에서 남부지방을 제외한 가장 풍부한 100여점의 공룡발자국화석산지로 충청이북지방에서는 최초며 한반도에서도 가장 오래된 백악기 전기인 1억4천만년에서 1억3천만년 전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로 확인됐다.특히 꼬리가 끌린 자국이 함께 나타난 수각류(두발로 걷는 육식공룡) 공룡 발자국 보행렬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며 세계적으로 중생대 백악기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기록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여기에 물갈퀴 자국이 나타나는 새 발자국 화석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학술적 특이성과 접근성이 매우 양호해 전반적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존해야하는 것으로 당시 조사결과가 나왔지만 1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추진을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위치일부는 비탈진데다 전리층으로 되어 있어 눈이나 비 등 풍화와 침식에 노출돼 훼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청주·청원 1인1책 펴내기 사업을 전개한다.올해로 7회째 열리는 1인1책 펴내기 사업은 일상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나 생활체험 등 삶의 흔적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는 프로그램이다.상당구 9개소, 흥덕구 11개소, 청원지역 5개소 등 모두 25개소에서 2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간 운영된다.신청은 청주·청원 주민 누구나 할 수 있고 장소별 지도강사 파견으로 시민들이 책을 쉽게 낼 수 있도록 글쓰기 지도를 한다. 프로그램 참여가 어려운 직장인들을 위한 인터넷 강의도 전개된다.청주고인쇄박물관은 지난 6년 동안 1인1책 펴내기 사업을 전개해 3천699점(단행본 783, 북아트 2천916점)을 출간했고 해를 거듭 할수록 호응도가 높아지고 있다. 고인쇄박물관 여주회 관장은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유도하고 프로그램 교실 다변화를 통해 우수한 작품이 많이 출간 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수미기자
고려말~조선 초기의 청주 토성(土姓)은 전국 다름 대읍(大邑)에 비해 그 수가 훨씬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당시 청주지역에 다양하면서 강력한 토성집단이 존재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 분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충북대 신호철(역사교육과) 교수가 최근 청주문화원이 발간한 '청주의 뿌리를 찾아서' 책머리에 논문 '청주의 성씨와 인물'을 기고했다. 논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성씨와 본관이 언제 생겨났고, 또 토성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 교수에 따르면 △성씨가 일반화된 것은 고려 중기 이후이고 △본관은 고려의 중앙정부 통제력이 전국적으로 미치기 시작한 성종 때부터 생겨났다. 이밖에 토성은 고려시대 전국 각군현에 토착해 있던 지방 호족들이 지니고 있던 성씨를 일컫고 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망성(亡姓), 내성(來姓), 속성(續姓) 등 여말선초의 여러 성씨 형식과 토성을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까지도 전인구의 40% 정도가 성이 없는 무성층(無姓層)이었고 △1909년 이른바 민적법이 시행되서야 모든 국민이 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신교수는 "세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학술총서 '조선전기 기록문화 연구'를 발행했다.이 '조선전기 기록문화 연구'는 2002년 '고려시대 기록문화 연구'에 이어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종합적인 연구를 위해 고인쇄박물관이 시리즈로 발간하고 있는 학술총서다.전국 주요 박물관과 도서관 등 400여 곳에 배포된다. 수록내용의 범위와 주제는 임란이전(1392~1592) 목판인쇄기록물로 한정했으며, 이후 시기와 다른 종류의 기록물에 대해서는 연차적으로 간행할 계획이다.집필에는 청주대학교 김성수 교수를 비롯해 5명이 참여했다. 내용은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사부(四部)로 구분하고 각 부는 다시 주제별로 나눠 서술했다. 부록에는 조선전기의 주요 목판인본 목록과 소장처를 함께 수록해 본문이해를 위한 참고자료로 제시했다. 고인쇄박물관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기록문화 연구' 시리즈는 시대와 지역, 간행주체, 기록물의 형태 등 산발적으로 연구돼오던 기존의 연구를 종합해 한국 기록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김수미기자
16. 왜구 고려와 조선을 습격했던 이른바 전기왜구의 소굴은 쓰시마, 이키(壹岐), 마쓰우라(松浦)와 고토열도(五島列島)였다. 아기발도(阿只拔都)라는 소년두목도 이키 출신이라고 하지만 500척의 배로 침범한 것을 보면 섬 하나만의 세력은 아니었다. 중국 연안을 습격한 후기왜구의 출신지가 『주해도편(籌海圖編)』에 나온다. 사쓰마(薩摩), 히고(肥後), 나가토(長門), 오스미(大隅), 치쿠젠(筑前), 휴가(日向), 세츠(攝津), 하리마(播磨), 기이(紀伊), 다네가시마(種子島), 부젠(豊前), 분고(豊後), 이즈미(和泉) 등지이다. 이 옛 지명을 지도에서 보면 규슈와 혼슈 남부 일대인 가고시마, 구마모토, 나가사키, 후쿠오카, 미야자키, 오이타, 야마구치, 오사카, 효고, 와카야마, 미에, 오이타현에 해당된다. 이 책에 연안을 침범한 왜구의 행태를 기술했다. "매일 닭이 울 때 일어나 밥을 먹은 후 두목이 높은 자리에서 장부를 펴 약탈 나갈 대장과 대원을 정한다. 대원은 30명으로 각대가 서로 1 ~ 2리 거리를 두고 소라나팔로 신호한다. 저녁에 돌아오면 각기 약탈한 재물을 바치고 감히 숨기지 않는다. 매번 부녀를 잡아와서 밤에는 반드시 주색에 빠져 지낸다.…
[충북일보] 주말 동안 충북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도내 하상도로가 통제되고 나무가 쓰러지는 등 각종 피해가 속출했다. 청주기상지청은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시간당 20~3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시간당 30㎜의 비부터는 보통 '폭우'라고 부르는 수준으로 밭이나 하수구가 넘치기 시작하고, 홍수나 침수 같은 비 피해 위험이 매우 높아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단계다. 충북도 등에 따르면 7일 오후 2시 30분 기준 도내에는 평균 62.1㎜의 비가 쏟아졌다. 지역별로는 △증평 121.5㎜ △괴산 116.5㎜ △청주 87㎜ △진천 52㎜ △단양 49㎜ △보은 45.3㎜ △충주 45㎜ △제천 41.7㎜ △영동 7㎜ △음성 4㎜다. 폭우로 인해 도내 하상도로와 둔치주차장은 일부 통제된 상태다. 현재 도는 청주시 무심천 하상도로, 미암교 하상도로, 충주시 달천 하상도로를 통제 중이다. 하상도로에 설치된 둔치주차장은 전체 27곳 중 15곳이 통제된 상황이다. 폭우 여파로 도내 각종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이날 도에 접수된 풍수해 신고 건수는 총 20건이다. 피해 유형은 △수목전도 12건 △배수불량 4건 △낙석 1건 △기타 3건으로 집계됐다.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충북도가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산업 육성을 위해 특화단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수소특화단지 지정을 통해 산·학·연·관 생태계를 공고히 구축하고, 기업 지원과 기술 개발로 이 분야를 선도한다는 구상이다. 7일 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년 상반기 공모를 통해 지정할 예정인 수소특화단지를 충주시에 유치할 계획이다. 도는 일찌감치 충주를 신청지로 낙점했다. 이 지역의 수소 인프라를 고려할 때 수소특화단지를 유치하면 관련 산업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충주는 수소 분야 기업 26곳이 둥지를 트고 있다. 국내 유일의 차량용 연료전지 생산 거점인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주요 부품업체들이 협력체계를 갖추고 있다. 청정수소 생산과 저장, 유통, 충전, 활용 등 전주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데다 그린수소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 받았다. 바이오가스에 기반한 그린수소는 전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 오는 2027년까지 하루 2.5t의 청정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도와 충주시는 유치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 현재 수소특화단지 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결과는 올해 말 나올 예정이며 용역 과정에서 도출된 경
[충북일보] "단양을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이는 김문근 군수가 지난 6월경 인구 관련 포럼 발표에서 군민들과 약속한 일성이다. 김 군수가 민선8기 38대 단양군수로 임기를 시작한 지 취임 2년을 맞았다. 김 군수는 "지난 2년 동안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을 만들기 위해 주마가편의 자세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단양의 관광 패러다임을 혁신하고 내륙관광 1번지 단양을 향해 한 단게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시루섬 권역 종합관광지 개발과 리조트 조성 등 민간 투자 사업으로 체험형 관광지로서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활성화 투자펀드 공모 사업에 전국 1호 사업으로 단양역 복합 관광단지 개발사업이 선정된 만큼 사업을 꼼꼼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군수는 "민선 8기 단양호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내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 주요 군정 성과는 "적은 인구를 지녔지만 단양군은 지난 2년 동안 대도시에 견줄만한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