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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패랭이꽃과 개미취꽃이 피어있는 괴석 주변으로 나비들이 노닐고 있다. 조선 시대 나비 그림의 명수 남계우(1811-1890)의 석죽호접(石竹蝴蝶)과 자원호접(紫苑蝴蝶)이라는 작품이다. 산수화가 주류를 이루는 조선의 작품 속에서 부분적 소재였던 꽃과 나비 그림을 오랜만에 본다. 마침 계절에 딱 어울리는 소재로 중앙박물관의 옛 그림 속 꽃과 나비 전(展)과 간송(澗松)미술관에서 비슷한 소재로 전시됐다.

그간 책에서만 보았던 작품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다. 화려한 색채, 자연의 아름다움이 채색된 작품을 본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두 장소에 작품과 이름이 동시에 오른 분은 화가 남계우와 고진승(1822-?), 신명연(1809-1886)의 꽃이 눈에 띄었고 생각지 못했던 김홍도(1745-?)의 그림도 있다. 특히 남계우와 고진승 작품은 세로로 화면을 세워 화면 아래 꽃과 괴석을 배치하고 그 위로 크고 작은 나비들을 그려 공간을 적절히 안배함으로써 두 폭을 나란히 걸었을 때 하나의 화면이 되도록 연출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크고 작은 나비들이 내 앞에서 날아다닌다. 패랭이꽃엔 호랑나비 산제비나비 부전나비 등이 모였고 개미취에는 부처나비 왕세줄나비 네발나비 등이 꽃 주위를 맴돌고 있다. 향기에 끌려 꽃을 찾아온 것이다. 나비에, 꽃에 빠져 보고 있노라니 마치 살아있는 꽃과 나비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왜 아니 그럴까. 암.수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사실적이며 세밀한 관찰력이 바탕이 되어서란다. 마치 변상벽을 '변 고양'이라 불렀던 것처럼. 얼마나 나비를 많이 즐겨 그렸으면 남계우를 '남 나비'라 불렀을까. 실제로 제자인 고진승도 '고접'으로 불릴 만큼 직접 나비를 키우며 그렸다고 전한다.

그뿐이 아니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부채 그림은 퍽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재료만 보아도 옛 냄새가 흠뻑 밴 종이부채. 오른쪽 밑에 흰 찔레꽃이 그려져 있다. 풍속화를 주로 보았던 나로서 단원의 나비 그림은 의외의 만남이다. 왼쪽 한편에는 나비 3마리가 날고 있다. 이 작품은 단원 김홍도가 부채에 그린 그림으로 얼마나 잘 그렸던지, 스승 강세황(1713-1791)은 "나비의 가루가 손에 묻을 것 같다고' 평했고 나비 3마리를 그린 옆에는 '장자의 꿈속에 나비가 어찌하여 부채 위에 떠올랐느냐는 그의 시구가 남아 있어 장자의 호접지몽을 떠올리게 한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주위를 떠도는 나비의 무리. 언뜻 여름날의 감흥과 남.녀간의 연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한편으론 허망한 인간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나비의 접(蝶)이 80세 노인을 뜻하는 질과도 발음이 같고 축수와 같은 장수의 의미도 내포한다. 그럼에도 당시 화가들이 나비를 그린 데는 또 다른 의미가 있어 보인다.

조선의 화가들은 꽃과 나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모방했다. 꽃의 구조, 나비의 동작들을 책으로 익히고 생활에서도 세밀하게 관찰했음을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꽃과 나비는 한낱 그림 소재에 머문 게 아니라 마음의 수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 문인들이 꽃을 키우는 일이 마음을 닦고 덕을 기를 수 있다고 믿어 집에 꽃밭을 만들었듯 화가들도 마찬가지로 심의(心意)를 갖고 붓을 들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마음을 잡고 싶어 들판을 뛰어다니던 친척이 있다. 그의 모습이 꿈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지금쯤 그는 어떤 삶을 맴돌고 있을까. 아직도 자신의 사랑만이 영원할 거라 믿고 있을까. 하지만 나비가 그렇듯, 우리 인생이 그렇듯 헤매고 떠돌다 그러면서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것이리라. 그런데 한편으론 또 한 생각을 해 본다. 그럼에도 꿈도 꾸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삭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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