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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보장하라" 논 갈아엎기 투쟁

청주시 농민 총 궐기대회
9월 5일기준 산지 쌀값 17만5천 원대
최근 5년간 쌀 평균 자급률 94% 불과
공급과잉 원인 '수입쌀'… 국내 평균 생산량 11% 수준

  • 웹출고시간2024.09.19 17:39:34
  • 최종수정2024.09.19 17:39:34

폭락한 쌀값 보전 대책을 요구하는 청주시 농민들이 19일 오송읍의 한 논에서 농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고 있다.

ⓒ 김용수기자
[충북일보] 쌀값 폭락이 연일 이어지면서 추수를 앞둔 청주시내 농가의 논이 갈아 엎어졌다.

19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서 쌀값 폭락에 궐기한 농민들이 정부의 실효성 있는 쌀값 보전 대책을 요구하며 '논 갈아엎기 투쟁'을 열었다.

투쟁에 참여한 100여 명의 농민들은 "대한민국 통계 이래 최대로 쌀값이 폭락했던 해가 2022년이다. 2년만에 다시 역대급 쌀값 폭락이 진행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용수기자
통계청의 산지 쌀값 동향을 살펴보면 이달 5일 기준 정곡 80㎏(한 가마)은 17만5천368원이다. 전회보다 0.7% 하락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9만9천404원)과 비교하면 12.1% 떨어졌다.

농민들은 지난 10일 정부가 발표한 '쌀 수급 안정대책'에 대해 "10개월째 폭락하는 쌀값에 대한 반성과 책임은 찾아볼 수 없다"며 2024년산 쌀 초과생산량 처리 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정부는 산지 쌀값 방어 대책으로 올해 농지 2만㏊에서 생산되는 밥쌀 10만t을 사료용으로 처분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이에 더해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햅쌀을 미리 사들여 시장에 공급되는 양을 줄이기로 했다.

농민들은 이에 대해 "시장 격리가 효과를 보려면 한 번에 충분한 물량을 격리해야 한다"며 '찔끔 격리' 대책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폭락한 쌀값 보전 대책을 요구하는 청주시 농민들이 19일 오송읍의 한 논에서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는 농민 총궐기대회를 연 가운데 한 농민단체 대표가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김용수기자
ⓒ 김용수기자
더불어 "올해 공공 비축미 수매계획서에서는 2023년산 쌀을 수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묵은쌀을 수매하고 갓나온 햅쌀을 가축에게 먹이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비판했다.

이에 더해 "최근 5년간 쌀 평균 자급률은 94%에 불과하다"며 "국내 연간 평균 생산량의 11%에 달하는 40만8천700t의 수입쌀이 매년 들어오고 있다. 정부는 '구조적 공급과잉'이 문제라며 농민들에게 재배면적을 줄이라고만 한다. 농민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입쌀을 중단하고 식량주권을 확립하라"며 "양곡관리법을 전면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발언대회 후 농민들은 추수를 앞둔 논 약 4천㎡를 트랙터로 갈아 엎었다.

/ 성지연기자
ⓒ 김용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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