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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9.25 17:24:22
  • 최종수정2024.09.25 17:24:22

노상학

지적박물관 학예연구사

「무슨 저주가/ 이 같은 절해에 너를 있게 하였던가/ 종시 청맹(靑盲) 같은 세월과/

풍랑의 허망에 깎이고 찢기어/ 한 포기 푸새도 생명 하기 힘겨운/ 독올(禿兀) 불모

(不毛)한 암석만의 편토(片土)/ <중략> /제 모국에서 분노가 오늘처럼 치밀 제는/

차라리 너 되어 이 절해(絶海)에 이름 견디고저」

유랑과 고독의 시인 청마 유치환이 1956년에 발표한 '독도여'의 시 일부다.

이 무렵 그곳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우리의 철옹성 같은 존재였지만 그는 현실의 아픔과 자신의 고통을 절해의 외딴섬 독도에 빗대어 가감 없이 드러냈다.

또 다른 고은 시인은 독도를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으로 비유했다.

「내 조상의 담낭/ 독도/ 네 오랜 담즙으로/ 나는 온갖 파도의 삶을 살았다/

<중략>/ 가서/ 반드시 돌아온다/ 내가 내 자식이 되어/ 너에게 돌아온다/

내 자식의 담낭/ 독도」

담낭은 쓸개를 뜻한다. 우리 조상은 이것을 올바름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여겼다.

따라서 이것이 없거나 빠졌다는 것은 지조나 줏대가 없음을 의미하는 바, 독도가 울진현 정동 쪽 바다 한가운데 쓸개처럼 떠억 버티고 있으니 얼마나 장중한가!

우리 문학사 발굴 및 복원에 앞장선 이동순 시인은 장엄하고 엄숙하게 "獨島의 뜻"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내 이름 독도는/ 그동안 이루지 못한 독립/ 어서 성취하라는 뜻/ 우리 배달겨레/

하나 되어 단단히 다부지게/ 잘 살아가라는 뜻/ <중략> /나는 동섬 끝에/

독립문 바위까지 세우고/ 오늘도 동해 깊숙이 무릎 담근 채/ 제대로 된 독립

이루라며/ 두 손 모은다」

그는 "독도의 독은 독립이라는 뜻의 독(獨)이다"라며 지금이라도 올바른 독립을 이루라는 그 뜻이라고 설파하였다.

또 다른 시각으로 독도의 어느 바위틈에 얼굴을 내민 분홍빛 '섬초롱꽃'이나 '섬기린초'에게도, 지금은 사라진 바다사자 강치에게도 그는 따스한 눈길을 보내며 한 줌의 시로 담아냈다.

십 수년 전 시인협회에서 어느 시낭송 행사를 준비하면서 뜨겁게 딱 한 마디로 선언했다.

"독도의 바위를 깨면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얼마나 시적인 촌철살인의 명구인가! 우리 영토를 도발한 그들은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문인들은 동해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솟아있는 독도에 대하여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절제된 시어를 통해 그 나름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러나 어찌 그것뿐이랴!

독도는 어느 노래꾼의 노랫말처럼 수 만년 시린 세월 속에서 외로움을 안고 있는 섬이며 역사를 거슬러 올라도 우리의 숨결과 한이 서린 곳이다.

그러면서도 동도가 서도에게 햇살을 나누어 주고, 서도가 동도에게 저녁 달빛을 나눠주는 곳!

그렇게 형제처럼 어깨를 걸고 서로를 지켜주는 섬이다.

또 하나의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 있다. 가슴이 벅차도록 장하고 통쾌한 독도에 대한 성명서!

70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명문으로 회자되고 있어 본 지면을 빌어 전문을 소개한다.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물이다.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의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이 섬에 손대는 자는 모든 한민족의 완강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 영해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가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 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1954년 일본이 독도 문제를 ICJ(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하자 당시 변영태 외무장관이 "독도는 타협의 여지도 분쟁의 여지도 없다. 대한민국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갖고 있고 한국이 ICJ에 권리를 증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라고 외교문서에 우리의 입장을 작성하고 발표한 성명서다.

이 성명서는 비장함과 장엄함이 엿보이며 단호하게 선언적으로 서술한 문장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독도에 대한 한 편의 서사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일찍이 송나라 소동파가 왕유의 시와 그림을 보며 "詩中有畵 畵中有詩" 즉,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했던가!

변영태 장관이 입장을 밝힌 성명서에서도 선언 속에 시감(詩感)이 있고 시감 속에 선언이 있는 명문임이 틀림이 없으며 우리 가슴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 굽은 소나무가 고향의 선영을 지키듯 독도도 절해의 물결 속에 우뚝 솟아 시상(詩想)을 주고 시인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오롯이 적셔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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