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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가르며 꿈을 품고 달린다

첫차로 아침을 여는 사람들

  • 웹출고시간2008.12.31 16:58:4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구랍 30일 오전 6시 청주시 용정동 시내버스 동부종점.

여민 옷속을 파고드는 칼바람이 매섭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 곳은 새벽을 여는 서민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하기만 하다.

'부릉 부릉'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는 첫 시내버스의 시동소리가 새벽의 적막을 깨운다.

운행을 준비하는 917번 버스 운전사 우동수(45)씨의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인다.

행여 첫 차 타는 손님들이 추위에 떨까봐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놓는다.

"하루 승객이 600명 정도 됩니다.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요"

기름값이 올라 일시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한 때 뿐이라는 것이 우씨의 설명이다.

그는 "청주시내버스의 경우 70~80%가 천연가스버스"라며 "천연가스비는 계속 올라 버스회사도 죽을 맛"이라고 푸념했다.

우 씨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버스업계 사정을 털어놓고 있을 때 쯤 추위에 옷깃을 단단히 여민 박길순(61)씨가 차에 올랐다. 청주 동부종점을 출발해 금천동-일신여고-육거리-청주체육관-공단입구-서촌동에 도착하는 917번 버스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구랍 30일 청주시 용정동에 위치한 시내버스 동부종점에서 한 시민이 일터로 나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 김태훈 기자
△ 얼어붙은 경기에 몸은 더 추워

첫 승객 박길순씨는 하이닉스 건물 외부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다. 아침 6시30분 출근길에 올라 저녁 5시 30분에 퇴근버스를 탄다는 그는 한 달 수입이 80만원 남짓된다고 한다. 경기가 어려운 탓에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몰라 박 씨는 요즘은 버스타고 일터로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박 씨는 "요즘은 환경미화원도 40대가 많아져 60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게 어디냐"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박 씨에 이어 두 번째로 새벽차에 몸을 실은 이 모(57)씨.

그는 장을 보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한번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면 드는 비용은 차비까지 포함해 6천원.

하루벌어 생계를 이어가는 건설노무자 남편의 수입으로는 이마저 버겁기만하다.

이씨는 "날씨가 추워져 남편의 일거리가 떨어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물리치료도 그만 받을 생각"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 어려운 경제 풍파는 젊은이들에게도

새벽길에 젊은 20대 여성이 차에 올랐다.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재학중이라는 박미화(22)씨는 편의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간다고 했다.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는 박 씨는 시간당 3천300원을 받고 하루 12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비록 몸은 고달프지만 스스로 용돈벌이를 한다는 생각에 힘든줄 모른다. 그보다는 새해에 졸업반이 되는 박 씨로서는 취업걱정이 더 크다.

차안의 손님이 늘어났다.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이기택(28)씨.

연말을 맞아 모처럼 여행을 떠단다는 이씨는 "납품하는 대기업에서 9일까지 납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며 "대기업이 이렇게 어려워지니까 중소기업도 사정이 매우 나빠졌다"며 하루빨리 경기가 회복되길 기원했다.

△ 그래도 희망을 갖자

서촌 종점을 돌아 육거리 정류장에서 만난 정모(72) 할머니는 콩나물을 한 가득 안고 있었다.

새벽시장을 다녀오는 길이라는 정씨는 요즘 사람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따끔하게 질책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만이 많은 게 문제야. 잘 풀릴 때는 자기 덕이고 안 풀릴 때는 남 탓이라는 생각부터 잘못됐어"

기초수급을 받는다는 정씨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며 "항상 고마운 마음과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자신도, 나라도 잘 풀린다"고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씨도 "얼마 전 친구가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했다"며 "직장이 있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줄 몰랐다. 새해에는 더 열심히 일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청주대 학생 박씨는 아르바이트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래도 용돈벌이를 스스로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며 해맑게 웃었다.

917번 버스 첫차에 오른 서민들의 얼굴에는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고단함이 배어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웃음 너머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이 동트는 해처럼 영글어가고 있었다.

/ 임장규기자 inews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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