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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등교 준비하는 손녀의 머리 손질은 언제나 내 몫이다. 아침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빗겨 줄 때면 소소한 행복이 밀려온다. 보드라운 머릿결을 몇 번이고 쓸어내리며 손녀를 위한 무언의 기도도 하고, 친구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학교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양 갈래로 땋는 머리, 아니면 반 묶음 또는 하나로 묶어 머리핀이나 헤어밴드로 단장을 한다. 어디 그뿐인가. 파마머리 앞머리를 짧게 자른 단발머리, 그리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생머리까지 어린이들도 머리 모양이 다양하다. 오늘따라 촘촘히 땋은 머리가 곱고 예쁘다. 집을 나서는 손녀의 뒷모습에서 딸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하다. 문득 쪽을 진 머리에 은비녀를 하시고 조그맣고 뿌연 거울 앞에 앉아 동백기름을 바르시던 어머니의 정갈한 모습이 스치고 지나간다.

어릴 적 나는 초등학교 내내 단발머리였다. 그 시절 우리 마을엔 이발소나 미용실이 없었다. 다행히 절기를 따라 마을로 이발사가 찾아온다. 어린 눈에 허리가 굽은 노 이발사는 기술이 없어 보였다. 설이나 추석을 앞두고 이발사가 오면 동네 아이들이 친구네 바깥마당으로 다 모인다. 이발사는 대추나무에 작은 거울을 걸어놓고 국방색 간이의자에 아이들을 앉혀 놓고 머리를 깎았다. 남자는 상고머리 여자는 단발머리, 나도 어김없이 단발머리를 했다. 머리를 깎고 집으로 가서 내 머리를 거울로 보았다. 그날따라 초가지붕 같은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울을 보며 짧은 앞머리를 끌어당기다가 다시 옆머리를 귀에 꽂아보건만 숱이 너무 많아 탐탁지가 않았다. 긴 시간 괜한 머리를 탓하며 투정을 부리다 어머니께 꾸중만 들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머리를 땋고 다녔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내 땋은 머리가 제일 굵다며 가정 선생님이 부럽다고 하셨다. 아이들은 일제히 나를 주목했고 그 순간 나는 칭찬인지 야유인지 선생님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때 친구가 다가와 선생님의 빈약한 머리를 들추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거울을 본다. 어느덧 내 머리에도 하얀 이슬이 내리고 머릿결이 예전만 못하다. 며칠 전 머리를 자르는데 기다리던 손님들이 풍성한 내 머리채를 보고 부럽다고 한다. 그러자 미용사는 말을 거들었다. 사람은 머리를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미인이 된다며 미스코리아도 머리숱을 먼저 보고 추천한다고 했다. 낭설이기도 하지만 "숱 많은 것도 복이여" 하시던 어머니 생각에 웃음이 났다.

항암 치료 중인 딸이 주사를 맞고 열흘쯤 되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긴 머리를 죄다 밀어야 한다. 머리는 몸과 같은데 삭발이라니 마음이 무거웠다. 더구나 어떤 결기를 보일 때 하는 것이 삭발 아닌가, 딸은 고민 끝에 결심이 섰는지 미용실에 간다며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엄마! 두상이 예쁘다네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너스레를 떤다. 많은 고뇌에 속으로 삭였을 딸의 눈물이 내 마음을 타고 흐른다. "어머니 걱정 말아요. 유월이 오면 머리도 새로 나고 건강한 모습으로 거듭 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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