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국내 토종벌 명인 1호 김대립 청토청꿀 대표

충북의 명인(名人)·명장(名匠)을 찾아서 ①

  • 웹출고시간2024.09.11 17:09:04
  • 최종수정2024.09.11 17:09:04

편집자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을 명인(名人)이라 부른다. 명장(名匠)은 숙련된 기술자를 일컫는 장인(匠人) 중에서도 실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명인이나 명장을 선발한다. 이들이 자긍심을 갖고 해당분야 기술과 산업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충북도내에서 한 우물만 파고 있는 명인·명장과 이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국내 1호 토종벌 명인(名人)인 김대립 청토청꿀 대표가 토종벌 인공분봉(分蜂)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용수기자
[충북일보]국내 토종벌 명인 1호 김대립 청토청꿀 대표

◇벌치기소년으로 맺은 토종벌과 인연

김대립(金大立·50) 청토청꿀 대표는 국내 1호 토종벌 명인(名人)이다. 농촌진흥청은 2021년 김 대표를 축산분야 유일의 토종벌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 명인'으로 선정했다. 토종벌사육 기술을 양봉농가에 보급한 그의 업적을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2010년과 2016년 두 차례 창궐(猖獗)한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을 퇴치하는데 기여한 공로도 명인선정 평가에 반영됐다. 그는 토종벌 인공분봉(分蜂)법, 무지개꿀 채취방법, 외래 침입벌 퇴치법, 여왕벌 만드는 법, 다기능 토종벌 출입문 등 9건의 특허와 실용신안을 보유하고 있다.

김대립 명인은 새싹부터 남달랐다. 어릴 적부터 '토종벌 박사'로 통했다. 미원중학교 재학시절 양봉농가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토종벌 인공분봉법을 국내 처음 개발했다. 이 업적으로 2003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분야 최연소 '신지식인'에 뽑혔다. 지난 8월에는 교보생명 공익재단 대산농촌재단의 33회 '대산농촌상'도 탔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에서 토종벌을 기르고 있다. 맑은 계곡물과 바람, 꿀을 잔뜩 머금은 꽃들이 어우러진 깊은 산속에서 화전민(火田民)의 아들로 태어났다. 토종벌을 유난히 좋아했다. 가덕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아홉 살 생일선물로 토종벌 3통을 받기도 했다. 미원공고 재학시절 학교의 허락을 받아 학교건물 옥상에 벌통을 옮겨놓고 키울 정도였다. '벌치기소년' 시절 토종벌은 그의 놀이친구였다.

◇중학생 시절 토종벌 인공분봉법 개발

김대립 명인은 중학생 때 토종벌 인공분봉에 성공한다. 누구나 토종벌은 자연분봉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던 시절이다. 그런데 그의 토종벌 인공분봉법 개발동기가 흥미롭다. 토종벌 자연분봉 시기가 임박하면 가족 중 누군가 한명은 벌통을 지켜봐야 했다. 벌통에서 나온 벌이 멀리 날아가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서다. 소년 김대립은 학교에 갔다 오면 벌통 앞에서 보초서는 일을 도맡았다. 졸음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벌을 놓칠까봐 조바심도 났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인공분봉법이다. '벌치기소년'의 따분하고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方便)이자 묘안(妙案)이었다.

그는 토종벌 인공분봉법을 개발하는데 벌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을 응용(應用)했다. 초등생 때 산에서 야생 벌집을 따오다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다. 벌집이 부서졌지만 벌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점에 착안해 충격요법을 사용했다. 벌통을 두드려 충격을 주고 여왕벌을 날려 보낸 뒤 새로운 벌통으로 옮기는 게 핵심기술이다. 자연분봉 때는 온 가족이 달라붙어야 했다. 이제는 한 사람으로도 가능하다. 토종벌 1통을 분봉하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벌통 앞에서 보초를 서지 않아서 좋다.

국내 1호 토종벌 명인(名人)인 김대립 청토청꿀 대표는 토종벌 인공분봉(分蜂)법, 무지개꿀 채취방법, 외래 침입벌 퇴치법, 여왕벌 만드는 법, 다기능 토종벌 출입문 등 9건의 특허와 실용신안을 보유하고 있다.

ⓒ 김용수기자
◇전자공학도 토종벌 분봉시기 앞당기다

김대립 명인은 충청대학 2학년이던 2000년 토종벌 분봉시기를 앞당기는 기술을 개발했다. 전공인 전자공학을 활용했다. 벌이 자연분봉하는 5~6월은 꽃에 꿀이 가득 차있을 시기다. 분봉한 토종벌은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응하느라 제대로 활동하지 않는다. 당연히 꿀 채취량이 줄어든다. 그는 대학전공을 살려 벌통 안쪽 온도를 자동조절하는 전기장치를 설치했다. 벌통공간을 좁히고 내부온도를 높이자 놀랍게도 벌의 분봉시기가 한 달 이상 앞당겨졌다. 꿀 생산량도 2~3배 늘었다.

◇인공 여왕벌집으로 여왕벌 대량 증식

김대립 명인의 인공분봉법은 토종벌 대량증식으로 발전했다. 토종벌은 분봉할 때 원래 벌통에 있던 여왕벌이 기존 일벌 일부를 데리고 나온다. 새 여왕벌 후보는 친정 벌통에 번데기 상태로 남아있다. 그는 중학교시절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인공 여왕벌집 개발에 착수했다. 여왕벌집은 일벌집보다 약간 크다. 여왕벌이 낳은 알은 모두 똑같지만 벌집 크기에 따라 여왕벌과 일벌의 운명이 갈렸다. 여왕벌집을 많이 만들면 여왕벌도 그만큼 증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험에 들어갔다. 벌집에서 추출한 밀랍으로 여왕벌집을 만들었다. 이것을 10여개 이어 붙여 벌통 속 벌집에 이식하고 여왕벌이 낳은 알을 넣어뒀다. 대성공이었다. 그는 '인공분봉법'과 인공여왕벌집 개발로 토종벌 대량증식의 길을 텄다. 이 기술을 활용해 아버지가 보유했던 토종벌을 200통에서 1천통 가까이 늘렸다.

◇기발한 무지개꿀 채취방법 고안

김대립 명인은 2005년 '무지개꿀' 채취방법을 고안(考案)해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무지개꿀 생산비법은 꿀을 세로로 뜨는데 숨어 있다. 세로로 꿀을 뜨기에 적합한 벌통도 제작했다. '무지개꿀'채취법은 전통 시루떡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토종벌 사육농가는 대개 꿀을 위에서부터 가로로 뜬다. 그러면 아카시아 꿀이나 밤나무 꿀만 맛보게 된다. 이것을 세로로 자르면 봄 여름 가을 꽃 꿀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기발한 발상의 전환이다.

◇낭충봉아부패병 예방법을 찾아내다

꿀맛 같던 그의 삶도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위기를 맞는다. 이 질병으로 전국의 토종벌 98% 이상이 폐사했다. 그야말로 초토화다. 김대립 명인도 당시 토종벌 1천여통 중에서 80%를 잃었다.

그는 '낭충봉아부패병' 퇴치법을 찾는데 몰두했다. 그러던 중 이 괴질이 번데기로 넘어가기 직전의 토종벌 애벌레에게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알을 낳는 여왕벌에 주목했다. 여왕벌을 교체하면 토종벌 집단폐사를 막을 수 있겠다 싶었다. 여왕벌을 바꾸려면 새 여왕벌이 필요했다. 자신이 개발한 인공 여왕벌집으로 우수한 여왕벌을 대량 생산했다.

김대립 명인은 '내 벌을 살리려면 이웃 벌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국 토종벌 사육농가들과 '토종벌 지킴이'를 결성했다. '토종벌 지킴이'와 실증시험을 마치고 2015년 낭충봉아부패병 예방법을 세상에 알렸다. 첫 번째는 해충방지벌통으로 괴질 바이러스를 옮기는 명나방 애벌레와 토종벌 애벌레를 분리해 퇴치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질병전염 위험시기인 4월과 7월 건강한 여왕벌로 바꾸는 것이다. 교체된 여왕벌을 벌통 속 조그마한 '방'에 가두고, 몸집이 작은 일벌만 여왕벌 관리장치 '다기능토종벌 출입문'을 통해 드나들도록 했다. 격리된 여왕벌은 알을 낳지 않았다. 일벌들은 감염된 애벌레를 입으로 물어 내다버렸다. 청소를 마친 빈 벌집 방에는 꿀을 계속 채웠다. 그는 이 방법으로 육아스트레스를 줄여 여왕벌의 면역력을 높였다. 바이러스 숙주인 애벌레의 양도 조절할 수 있었다. 김대립 명인은 이를 '꿀벌육아휴직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국내 1호 토종벌 명인(名人)인 김대립 청토청꿀 대표가 봄엔 유채꽃밭, 가을엔 메밀꽃밭을 조성해 마을주민들과 축제가 열고 있는 청주시 상당구 추정리에서 축제의 취지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용수기자
◇토종벌 신품종 '한라벌' 대량증식에 기여

국립농업과학원은 낭충봉아부패병에 저항성이 뛰어난 토종벌 개량종 '한라벌'을 육성했다. 2018년 충북·강원·전남 지역에서 한라벌 실증시험을 진행했다. 이듬해 신품종 한라벌을 전국 농가에 보급하기 위한 대량증식에 들어갔다. 김대립 명인은 전남 보길도·노화도, 제주도 등에서 한라벌 '순종보존'을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현재 전국 토종벌은 2010년의 70~80%수준으로 복원됐다. 김대립 명인이 보유 중인 토종벌은 400여통이다. 모두 한라벌이다. 그는 한라벌이 재래종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나눔의 인생철학 녹아있는 메밀꽃밭

김대립 명인은 '토종꿀업계 전체 규모가 커져야 자신의 사업도 더 잘 된다'는 신념이 강하다. 그래서 바이러스성 질병퇴치법과 인공분봉법 등 토종벌사육기술 특허를 아무런 대가없이 공유한다. 전국을 돌며 강의에 나서 자신의 토종벌사육기법을 전수한다. 그의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인생철학은 고향마을에 조성한 '메밀꽃밭'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토종벌을 위한 밀원(蜜源)으로 메밀꽃밭을 만들었다. 1만2천여평에 이른다. 9월 24~25일쯤이면 마을뒷산 국사봉 허리는 온통 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인다. 메밀꽃은 10월 3~5일 절정을 이룬 뒤 20일까지 유지된다.

◇곱셈농법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다

김대립 명인은 이웃들이 참여하는 '곱셈농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토종벌농장 옆에 메밀과 해바라기, 유채를 심는다. 여기서 막국수의 원료인 메밀, 기름을 짜는 해바라기·유채 씨를 수확한다. 꿀도 딴다. 소비자가 참여해 꽃을 구경하며 꿀떡도 만들 수 있다. 바로 관광농업이다. 이 모든 것이 완성되면 곱셈을 한 것처럼 폭발적인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그는 곱셈농법을 실현하기 위해 마을주민들과 고향마을 뒷산 기슭에 봄엔 유채꽃밭, 가을엔 메밀꽃밭을 조성한다. 마을주민들은 지난 3월 마을협동조합 '천년추정'을 설립했다. 김대립 명인과 마을협동조합은 오는 24일부터 메밀꽃축제를 연다. / 이종억 논설위원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 메밀꽃밭

김대립 명인 취재후기

토종벌이 분봉하면 원래의 벌통 주변 나뭇가지나 처마 끝에 큰 덩어리로 모여 매달린다. 벌을 받을 때는 부드러운 쑥을 사용해 뭉쳐있는 벌을 쓸어 담듯이 꿀을 발라둔 벌통 덮개로 옮긴다. 전형적인 재래식 벌 받는 모습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들면 얼차려 받는 것을 '벌 받는다'고 했는지 짐작이 간다.

김대립 명인은 자신이 개발한 토종벌 인공분봉법을 가장 자랑스럽고 소중한 자산으로 여긴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벌 받을 일'이 사라진다. 여왕벌을 원하는 만큼 만들 수도 있다. 토종벌 개체수를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서양 벌을 치듯이 꽃피는 계절마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꿀을 대량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김대립 명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인데다 토종벌꿀의 가치를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토종벌꿀은 봄 여름 가을 여러 가지 꽃에서 채취되고 오랜 기간 숙성돼야 그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의 이름 한자 大立(대립)은 '크게 선다'는 뜻이다. 성(姓)씨 金(성김·쇠금)자까지 합치면 '금자탑(金字塔)을 높이 쌓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금자탑은 이집트 피라미드를 한자로 번역한 말이다. 후세에 길이 남을 훌륭한 업적을 일컫는다. 김대립 명인은 그의 이름처럼 국내 토종벌업계에서 금자탑을 높이 쌓아 올린 인물이다.

그의 50년 인생을 들여다보면 프랑스 곤충학자 '파브르'(1823~1915)가 떠오른다. 파브르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골 할아버지 집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곤충에 대한 관찰력을 키웠다. 레옹 '뒤프레'의 벌에 관한 책을 읽고 곤충연구를 시작했다. 곤충에 대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연구결과를 정리해 1879년 펴낸 책이 파브르 '곤충기'다. 이 책에는 곤충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파브르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김대립 명인의 '토종벌'에 대한 이야기가 조만간 책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으로 부인과 어린 두 딸을 두고 있다. / 이종억 논설위원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김명규 충북도 경제부지사 "고향 발전에 밀알이 되겠다"

[충북일보] "'고향 발전에 밀알이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앞만 보며 열심히 뛰었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김명규 충북도 경제부지사는 취임 2년을 앞두고 충북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만큼 매일 충북 발전에 대해 고민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부지사는 취임 후 중앙부처와 국회, 기업 등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거침없는 행보에 나섰다. 오직 지역 발전을 위해 뛴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투자유치, 도정 현안 해결, 예산 확보 등에서 충북이 굵직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견인했다. 김 부지사는 대전~세종~청주 광역급행철도(CTX) 청주도심 통과, 오송 제3생명과학 국가산업단지 조성 추진, 청주국제공항 활성화 사업 등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지난 2년 가까이를 숨 가쁘게 달려온 김 부지사로부터 그간 소회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2022년 9월 1일 취임한 후 2년이 다가오는데 소회는. "민선 8기 시작을 함께한 경제부지사라는 직책은 제게 매우 영광스러운 자리이면서도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와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