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황학수(黃學秀, 1879~1953)는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만주의 독립군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한평생을 무장투쟁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해산 될 때까지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였다. 3·1운동 직후에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로군정서, 신민부, 한국독립군 등 여러 단체에서 무장투쟁을 주도하였다.◇ 군인의 길로 들어서다 황학수는 1879년 서울 화동에서 부친 황두연(黃斗淵)과 모친 홍씨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창원이고, 자는 필옥(弼玉), 호는 몽호(夢乎), 이명으로는 이국현(李國賢)을 사용하였다. 그는 서울 출신이었지만 자신이 어려서 성장한 제천을 고향으로 여겼다. 제천과의 연고로 임시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광복 후에도 여생을 제천에서 보냈다. 그는 갑신정변 직후 모친 홍씨와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대전리 삼화동으로 내려와 다 시 상경할 때까지 10여 년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1895년 부모를 여읜 황학수는 서울로 올라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합격하여 1900년 1월 제1기로 졸업하였다. 군인으로서의 첫걸음
[충북일보=충주] 1950년 6.25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첫 승리를 거둔 충주시 신니면 '동락리 전투'에서 결정적 공을 세운 동락초교 故 김재옥 여교사의 이름을 딴 '김재옥 길' 이 생긴다. 충주시는 신니면 송암리 585-2번지부터 577-27번지까지 150m 구간 도로를 '김재옥길'로 명명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이 도로는 김 교사가 근무했던 동락초등학교 건너편의 6·25 참전 전승비로 들어가는 길이다. 충주시는 국가보훈처로부터 호국영웅 선양 사업 차원에서 '김재옥길'을 신설해 달라는 협조 요청을 받고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정부가 명예 도로명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정식 도로명 신설에 관해 협조 요청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충주시 관계자는 "해당 지역 주민 여론을 수렴한 결과 반대 의견이 없어 '김재옥길'로 명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충주시는 시민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도로명 신설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김재옥 교사는 1950년 6.25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 공세에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첫 승리를 거두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1950년 5월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의 나이에 충주시 신니면 동락초등학교에 부임했지만 10여
[충북일보=충주] 조선시대 대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충주지역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실을 아는 충주시민이 얼마나 될까?최근 본보(9월1일자 14면, 남한강, 그물길위의 인문학-정약용과 충주 하담 편) 보도로 다산의 조부모와 부모 묘가 '모현정(충주시 금가면 하담리 하소 401~5 )' 인근에 있었고 유년시절 일부도 이곳에서 보낸것으로 밝혀져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본보 보도를 접한 한국예총 남양주지회는 제29회 단산문화제를 맞아 10일오전 이용호 지회장과 임용석 부지회장,이광용 사진작가협회 지부장,권순애 문협지부장,다산차연구모임회원 등이 '다산의 마음을 헤아리다.하담에서 천진암, 그리고 마현까지'라는 주제로 하담 모현정을 찾아 선영터를 찾아보고 차를 올리며 애틋한 마음을 헤아리는 행사를 가졌다.이날 행사에는 향토사학자 어경선 (사)예성문화연구회 전회장이 동행, 다산과 연관된 '하소나루', '하강서원', '모현정' 등을 돌아보며 다산의 발자취를 더듬고, 다산이 유배중에 하담을 들러 오열하며 쓴 글(하담에서의 이별)을 낭독하고 유적을 기리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또 이들은 조부모와 부모 묘소가 이장된 천진암(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충북일보] 한강은 지리적으로 한강본류·남한강·북한강 등으로 구분되고 조선시대 뱃사공과 뗏사공들은 경기도 양수리를 기준으로 하류를 아랫강, 상류를 윗강으로 불렀다. 지류 가운데 규모가 큰 것에는 '江'(예 소양강·섬강·주천강), 이보다 작은 것에는 '川'자(예 충주 달천·장호원 청미천)를 붙였다. 江은 육로를 단절시키나 나루[渡津]는 육로 기능을 연결해 주고 있다. 때문에 나루의 사전적인 의미도 '강이나 내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곳'으로, 그 기본적인 기능은 여객과 물자를 도하시키는데 있었다. 이 나루에 인마(人馬)와 물산의 유통 등 상업적인 기능이 더해지면 포구(浦口)로 발전하게 된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조선시대 전국의 나루는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57곳에 불과하던 것이 18세기 《여지도서》(1757)에 62곳, 19세기 《대동지지》(1865)에 이르러 100곳으로 늘어났다. 조선시대 남한강 수로에도 수십 개의 나루가 존재했고, 《세종실록》 지리지(1454),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을 통해 충주목 나루에 대한 세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 덕흥창, 경원창과 일정 기간 공존전통시대 충주지역 남한강 일대의 나루와
[충북일보] 이형우(李亨雨 1889∼1958)는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충북 출신 독립운동가다. 그는 1919년 이범윤이 조직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왕칭현(汪淸縣) 분단에 가입하여, 이듬 해 백두산 주변을 근거지로 일제의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격렬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각지를 돌며 군자금 모금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함경북도 영흥(현 금남군)에서 피체되어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북간도 왕칭현으로 망명하다 이형우의 본명은 이춘우(李春雨)로 알려져 있다. 그는 광복단 활동 당시 이형우, 이현(李玄), 이흥준(李興俊)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이나 본명을 숨기고 이명으로 활동하였다. 이 때문에 동일인인지 알 수 없어 독립운동의 행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안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이형우 역시 법원 판결문의 기록 이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그가 만주의 광복단에 가입하여 그 조직의 일원으로서 철저하게 무장독립투쟁을 실천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
[충북일보=단양] 국보 198호 '단양신라적성비'에 대한 문화자원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며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중론이다.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적성산성에 있는 이 비는 1978년 1월 6일 단국대 학술조사단이 성재산 적성에서 발견했다.545∼550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93cm 비는 신개척지 유공자의 공훈을 새기고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포상을 약속한 내용이 새겨졌다.특히 비에는 고관 10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사부', '대상등하간지' 등 공을 세운 인물이나 관직은 학계의 관심이 집중돼 왔다.단양적성비는 신라가 소백산맥을 넘어 고구려 영내라 진출해 세운 최초의 비석으로 그 의미가 크다.적성비는 중앙고속도로 단양휴게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국보와 사적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단양신라적성비와 적성산성이 유일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적성비는 전시관이 없는 데다 발견된 지 37년이 지난 올해 처음 지난 4∼5일 학술발표대회가 열릴 정도로 지역에서 홀대받아 왔다.경북 울진군의 봉평비, 충주시 중원고구려비의 전시관이나 연구작업과 비교할 때 더더욱 지역사회의 관심이 절실한 실정이다.적성비를 발견한 정영호 단
[충북일보] 3세기 중엽이후 일관되게 나라분지의 야마도에 축조된 왜국왕묘(倭國王墓)가 4세기말엽 이후 오사카평야의 이즈미(和泉)의 모즈(百舌鳥)와 가와치(河內)의 후루이치(古市)에 축조되었다는 것은 3세기 중엽부터 4세기 후반에 걸쳐서 나라에 건설된 왜국의 왕묘가 4세기 말엽 오사카평야 남부로 이동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고사기(古事記)』ㆍ『일본서기(日本書紀)』가 말하는 일본의 왕권이 '만세일계(萬世一系)'였다는 사실과 배치된다. 고분은 어디까지나 그 정치세력의 본거지에 만들어지는 것이고 오사카평야 남부에 대왕묘가 축조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사카남부의 세력이 왕권을 장악하였다는 것을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모즈고분군의 닌토구(仁德)릉이 위치한 사카이시나 나니와(難波)는 나라의 야마토정권의 해외창구, 즉 주로 한반도를 통해 유입되는 문화ㆍ정보유입의 창구였다. 왜왕은 하카타를 거쳐 사카이나 나니와를 출입하는 외교사절을 통해 국제정세의 정보를 독점하고 중국왕조의 책봉을 받는 것에 의해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 했다. 또한 주로 한반도를 통해 유입되는 선진문물을 독점하여 그것을 나눠주는 것을 통해 그 권위를 획득하였다. 3세기 중엽이후 일관되게 나라분지의 야마
[충북일보=옥천] 천연기념물 259호인 어름치가 금강에 되돌아온다.문화재청과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는 오는 5일 오후 옥천 금강 상류에서 천연기념물인 어름치 치어 5천여마리를 방류키로 했다.어름치는 잉엇과에 속하는 고유 어류로 한강과 임진강, 금강 중상류에 분포한다. 몸길이는 20∼30㎝이며, 표면에 가로로 검은 줄 7∼8개가 있는 점이 특징이다.이번에 방류되는 어름치는 인공적으로 증식한 길이 5㎝가량의 치어이며, 방류 지점은 옥천 이원면 용방리 일원이다. 금강은 어름치가 살 수 있는 남방한계선으로 1972년 5월 1일 옥천군 이원면 칠방리 금강 어름치 서식지가 천연기념물이 됐고, 1978년에는 어름치 자체가 천연기념물제259호로 지정됐다.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행사를 통해 희귀종인 어름치의 개체 수가 늘어나고 어름치 서식지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이 단체는 2009년부터 S-oil 사회공헌기금 지원을 받아 개체수가 줄어든 담수 어종 복원사업을 펴고 있으며 그동안 전북 무주 남대천, 강원도 홍천강, 평화의 댐 등에 어름치와 황쏘가리 등을 방류했다.옥천 / 손근방기자
[충북일보=충주] 중요무형문화재 76호인 한국의 전통무술 택견이 충북도 지정 예능보유자 선정과 관련, 예능보유자와 전수교육조교가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택견 전수교육조교 박만엽(55) 씨는 1일 오전 충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61) 씨를 명예훼손 및 폭행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다"고 밝혔다. 박 씨는 "정 씨가 지난 3월 충청북도 지정 예능보유자 선정과 관련해 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저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간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달 19일 충주시 호암동 택견전수관 사무실에서 정 씨 부자에게 폭행당해 전치3주의 상해를 입는 등 육체적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공금횡령과 위조영수증, 직무유기, 학위장사 등 정씨의 비위에 대해서도 폭로했다.그는 "택견 발전에 일조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는데 정 씨 때문에 명예와 자존심이 짓밟혔다"며 "택견의 전수교육조교 자리에서도 물러난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정 씨는 "박 씨는 분열을 우려한 택견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인 욕심으로 예능보유자 신청을 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명예훼손이나 폭행 주장 모두 전혀 사실이 아
[충북일보]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소내(苕川)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1801-1818년까지 18년 동안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은 충주 하담(荷潭)·목계·가흥, 강원도 원주, 경기도 여주 등이 등장하는, 남한강 물길을 소재로 한 한시를 많이 남겼다. 정약용의 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부모는 정지해(丁志諧·1712-1756)와 풍산홍씨이고 부모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1730-1792)과 윤두서의 손녀 윤소온(尹小溫·1728-1770)이다.두 사람 사이에서 약전(丁若銓·1758-1816), 약종(丁若鍾·1760~1801), 약용 등의 형제가 태어났다. 다산은 풍산홍씨를 부인으로 맞아 6남 3녀를 낳았지만 그 가운데 2남 1녀만 얻었다. 다산의 조부모와 부모 묘는 모두 남한강 수계 부근인 충주목 가차산면(현 금가면) 하담진 근처에 위치했다. 하소나루라고도 불렸던 하담진은 금가면 하담과 건너편 가금면 장천리 저우내를 연결했다. 다산은 시 (次長湖院·다산시문집 제1권)의 일부를 '내일은 하담 선영 성묘할 계획인데(來日荷潭謀O
[충북일보=괴산] 2015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 조직위가 오는 23일부터 24일까지 중원대에서「제7회 국제프론티어 농업프로테오믹스학회 및 제2회 아시아·오세아니아 농업프로테오믹스학회(AOAPO)」를 개최한다고 밝혀 세계 농업관련 과학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21세기 인류의 먹을거리인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농업프로테오믹스의 연구 및 최신기술을 교류하는 자리로 9개 국가 15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참여, 농업프로테오믹스의 최근 연구동향 및 기술적 응용 등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AOAPO 세계이사이자 충북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장인 우선희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는 2015 괴산세계유기농엑스포에 맞추어 우리 농업을 짊어질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국제적 감각을 키우고, 기초연구 및 응용분석과학을 강화하여 우리나라가 선진농업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소종한 시간이 될 것이다"라며 홍보와 참여를 당부했다.국내 주요연사로는 우선희 충북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 소장, 최종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생물재난연구팀장, 한남수 충북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박병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등이 참여한다.한편, 2015 괴산세계유기농산
[충북일보] 홍진(洪震, 1877~1946)은 대한제국의 검사와 변호사를 지낸 법조인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3.1운동 시기 한성정부의 수립을 주도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에 기여했으며, 상하이로 망명한 후에는 임시정부의 국무령과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냈다. 또 민족유일당운동과 전선통일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여 대일투쟁을 위한 민족역량의 결집에 공헌했다. ◇ 대한제국의 검사, 한성정부 수립을 주도하다 홍진의 본명은 홍면희(洪冕憙), 호는 만오(晩悟), 본관은 홍산으로 1877년 8월 27일(음력) 아버지 홍재식(洪在植)과 어머니 청주 한씨의 삼형제 중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진의 출생지를 놓고는 충북 충주나 영동이 거론되기도 하는데, 이는 홍진이 검사로서 최초 부임한 곳이 충주였다는 것, 또 그의 본적이 충북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로서 홍진의 부모와 형제들이 그곳에 살았던 것과 관련이 있다. 홍진은 27세 되던 1903년부터 법관양성소에서 약 1년 6개월간 수학한 뒤 법관양성소 박사와 한성재판소 및 평리원의 주사를 지냈다. 1906년 시험을 통해 검사가 된 그는 그해 12월 충북 충주에 소재한 충청북도재판소에 부임했지만, 1년 6개월 만인…
[충북일보] 충북대 수의학과 김윤배 교수 연구팀은 (주)네이처셀 바이오스타줄기세포기술원 라정찬 원장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인간의 지방줄기세포가 실험동물의 수명을 30% 이상 연장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이번 연구는 절대수명(lifespan)보다 더 중요한 건강수명(healthspan)이 훨씬 더 지속돼 신체활력이 크게 증진되었는바, 초고령 랫드(흰쥐)가 줄기세포 투여 후 젊은 랫드와 맞먹는 수영실력을 보여 주었다. 이는 기대수명 100세를 내다보는 고령화 사회에서 생명공학의 꽃인 "진시황의 불로초"에 비견되는 "불로장생"을 연상시키는 결과라 할 수 있다.연구진은 인간의 나이로는 40대 중반에 해당하는 10개월 령의 랫드에 사람의 복부에서 채취한 지방줄기세포를 매월 한 차례씩 수명이 다할 때까지 혈관 내로 주사했다. 그 결과 랫드의 인지기능(학습 및 기억력)이 개선되고, 신체활동성이 향상되었으며, 뇌와 근육 내 혈관이 재생되면서 근육량이 증가하여 젊은이들처럼 지구력이 크게 증가했다.연구결과 혈관으로 이식된 줄기세포가 노화로 인해 손상 받은 뇌 내로 침투하여 신경세포로 분화해 콜린성 신경과 도파민 신경계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인지기능과 신체활력을 증강시키는 것으로 확
[충북일보] 광복 70주년, 한일수교 50주년을 맞아 오늘부터 매주 충북대 사학과 임병덕 교수의 '일본속의 한국문화답사'를 연재한다. 내용은 '가까운 아스카'(1-2주), '나니와 궁적, 오사카성'(3-4주), '우지(宇治) 뵤도인(平等院)'(5-6주), '도후쿠지와 후시미이나리진자'(7-8주), '아라야시마(嵐山)'(9-10주) 등이다. 일본속의 한국문화답사라는 표현에서 보듯 이번 시리즈는 일본문화의 뿌리가 상당수 한반도에서 시작됐거나 관련이 있음을 심층적으로 전할 예정이다. 임교수는 고대 중국 법률과 죽간 연구의 권위자로, 현재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 전문위원도 겸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법류사상사』,『유골의 증언-고대중국의 형벌』, 『중국고대문명의 기원과 전개』, 『목간과 죽간으로 본 중국고대문화사』, 『동양사1』, 『구조율고』 등 다수가 있다. 오사카의 가와치(河內)에 위치한 '가까운 아스카'를 이야기하자면 이보다 앞서 성립한 야요이(彌生)시대와 야마타이국을 잠깐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일본열도는 기원전 3세기에 벼농사, 도기제작술, 관개기술 등이 한반도로부터 전래되어 농경생활이 시작되는데 이 시기가 야요이시대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일본의 청동기시
[충북일보=괴산] 프랑스 함대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사건을 빌미로 1866년(고종 3년) 조선 강화도를 점령·약탈한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문수산성 전투에서 적을 물리친 한성근(韓聖根·1833~1905)의 자세한 생애와 공적이 확인됐다.㈔괴산향토사연구회 김근수 회장은 27일 발표하는 '괴향문화' 23집에 '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 유공 한성근의 활약 고찰'이란 글에서 한성근의 공적을 소개했다.김 회장은 1928년 1월 송헌석이 펴낸 '병인양요-일명 한장군전'이란 제목의 한글 소책자와 2003년 10월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조재곤 선임연구원이 논문 '병인양요와 한성근'을 발표한 것을 보완·인용하고 '승정원일기' 등의 공식 기록을 발굴해 이번에 발표한다.괴산군 칠성면 외쌍곡 야산에는 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의 주역인 한성근의 묘비가 있으며, 1833년 8월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에서 태어나 1905년 12월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다.묘소는 칠성면 외쌍곡 야산에 '正憲大夫 正二品 兵曹判書 耆老所堂上 淸州韓公 聖根之墓(정헌대부 정이품 병조판서 기로소당상 청주한공 성근지묘)'란 묘비와 함께 있다.김 회장은 "이번 '괴향문화' 발간 책자를 통해 지역에서 전설과 민담으로만 전해
[충북일보=제천] 사단법인 병산영당(屛山影堂)에서는 '의당 박세화와 의당학'을 주제로 제2회 학술세미나를 갖는다.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1834~1910년) 선생은 월악산 용하동에서 용하영당(用夏影堂, 후칭 병산영당)을 창건하고 제천에서 20여년간 수 없이 많은 문도들을 지도했다. 선생은 1905년 춘추대의(春秋大義) 정신으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8개월간 한성사령부에 연행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어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글 읽은 선비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23일간의 절식(絶食) 끝에 순국(殉國)하신 선비정신의 표상이시고 한말의 대유학자다. 또한 단식 중지를 종용코자 찾아 온 일제헌병의 말장화를 곰방대로 내리치며 당장 물러가라고 호통 친 일화는 지금까지 구담(口談)으로 전해지고 있다. 의당선생의 순국은 봉건적인 충(忠)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글을 아는 자', 즉 '선비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학술세미나는 의당학(毅堂學)을 다양한 시각에서 재정립하고 현대적 의미를 함께 성찰해보는 행사로 세미나는 1부 발표, 2부 종합토론으로 나눠진다.사회는 최명환 외국어대 교수가, 기조발표에는 정우택 전 세명대 대학원장이 '제천…
[충북일보] 서쪽에서 올라오는 배 구면의 동무를 만나면 가끔가다 서로 노를 멈추고 말을 주거니 받거니 요즈음 산골짝 고을에 소금값이 많이 올랐던 걸 서울에선 쌀값이 근래 얼마나 하던가?- 조선시대 충주의 목계를 한시의 주제로 쓴 문인으로 조석윤(趙錫胤·1605∼1654)이 있다. 그는 1640년(인조 18) '賈客行'(고객행)이라는 칠언고시를 썼고, 이 작품은 그의 유고 문집인 '樂靜集'(낙정집) 제5권에 실려 있다.후사가 없었던 관계로 그의 제자들에 의해 편찬된 《낙정집》은 14권 7책의 비교적 방대한 분량으로 우암 송시열이 서문을 썼다. 우암은 서문에서 조석윤의 인품을 '공은 성품이 매우 조용한 데다 아무런 탐욕이 없었기 때문에 애써 수양한 것도 없이 저절로 도(道)에 가까워졌다'라고 적었다.◇지명 목계 1636년 해사록에 처음 등장한시 '고객행'은 전체 30구로 구성돼 있고, 이 가운데 1·5·9·13·17구의 운자(韻字)가 다르다. 운자는 시를 지을 때 정해진 자리에 쓰도록 규정한 글자를 말한다. 이는 '고객행'이 5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지명 목계(木溪)가 문헌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36년(인조 14) 김세렴(金世濂·1593
[충북일보=충주] 한국교통대 세계무술아카데미(원장 남중웅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22일 충주시 칠금동 세계무술공원 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전통무술의 교육적 활용'이라는 주제로 '2015 세계무술아카데미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이번 학술대회는 국내·외 저명한 석학과 39개국 55개 무술단체 대표단이 참석, 5개국 10여 명의 우수한 연구자가 논문을 발표해 올해 세계무술축제의 질적 향상을 도모했다.한국체육철학회장을 역임한 한국체육대학교 안용규 교수의 '전통무술의 교육적 활용'이란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일본·필리핀·가나·캄보디아 학자와 무술지도자의 구두발표 등 국내·외 학자들의 다양한 포스터 발표가 있었다.2008년 11월 설립한 '세계무술아카데미'는 한국연구재단 등재연구소로 2010년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세계무형유산과 전통무예의 보호·전승·발전을 위해 교육과 교류, 학술적 연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남중웅원장은 "앞으로 여러 국가의 학자를 참여시켜 학문의 질적 향상과 다양성을 겸비한 국내 최고의 국제학술대회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지속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로 충주세계무술축제의 질적 향상과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충주 / 김주철기자 kimjc5611@
[충북일보] 홍범식(洪範植, 1871~1910)은 괴산 출신으로 금산군수로 재임 중, 1910년 경술국치에 분개하여 최초로 자결 순국한 열사이다. 그의 아들은 ≪임꺽정≫으로 유명한 홍명희이고, 손자는 북한 사회과학원 원장을 역임하고 ≪조선왕조실록≫ 번역 사업을 총괄한 홍기문이며, 증손은 2004년 소설 ≪황진이≫로 만해문학상을 받은 홍석중이다. 한편 그의 부친 홍승목은 중추원 찬의 등을 지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인물이다. 그의 가족사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분단이 빚은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괴산읍 동부리 홍범식·홍명희 고택 괴산읍 동부리 450-1번지에 말끔하게 복원된 고가가 있다. 이 고가는 173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시대 중부지방 양반 가옥의 건축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4호). 이 고가는 홍범식이 나고 자란 곳이다. 뿐만 아니라 홍명희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내판에 홍명희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괴산에서 홍명희를 제대로 기리는 것은 시간을 더 요하는 것 같다. 홍명희 문학제가 파행한 것은 아직도 괴산에 어른거리는 '레드 콤플렉스'의 현
[충북일보]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은 북한 사람이고, 그의 묘소와 사당은 충청남도에 있다'천재 사학자이면서 언론인, 항일운동가인 단재 선생이 70년 전 서거한 중국 다롄(大連)시 뤼순(旅順) 감옥의 각종 안내·홍보물에 새겨진 문구다. 이같은 기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단재 선생은 지금의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났지만 그를 추모하는 사당과 그가 잠들어있는 묘소는 충북 청주시 낭성면에 있다.이렇게 뤼순감옥이 기초적인 정보를 잘못 기록한 채 방치하고 있는 점은 얼마전 중국에 연수단을 파견한 충북도교육청도 발견했다.지난 11~16일 교사·학생 20여 명과 단재 선생 관련 유적지를 둘러본 김병우 충북교육감의 눈에도, 11~15일 취재진도 동행한 고구려 역사탐방단의 눈에도 띄었다.뤼순 감옥측이 이렇게 단재 선생의 묘소·사당 소재지를 잘못 기록한 것은 오기(誤記)가 아니라 잘못 알고 있는 '오식'(誤識)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있다. 안중근(安重根) 의사 서거 100주년에 맞춰 뤼순 감옥에 한·중 양국의 대표적 항일지사의 흉상을 세웠던 2010년 3월.중국 정부는 단재 선생을 '북한 출신'으로 기록하는 실수를 범했다. 단
[충북일보] 여울[riffle]은 하천 바닥이 작은 급경사를 이루어 물의 흐름이 빠른 부분을 말한다. 여울의 하천바닥은 주로 굵은 조약돌이나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이 소리내어 흐른다. 충주를 떠나 남한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던 비숍의 배도 여울을 만났다. "밧줄이 끊어지고 배가 돌면서 빠르게 급류의 밑까지 떠내려갔으며 배와 승객 및 장비에 파손을 입혔고 때로는 제멋대로 떠내려가기도 했다."- 비숍의 배가 어느 여울을 만났는지 분명치 않으나 충주~청풍 사이에 위치했던 황공탄(惶恐灘)일 가능성이 높다. 황공탄은 이름 그대로 '두렵고 공포스런 여울'이라는 뜻이다.(그림참조) 『여지도서』(1765)는 "성난 물결이 힘차게 내뿜으며 흐르고 매우 위험한 형세가 된다. 본토박이들이 말하기를, 물밑은 모두 너럭바위인데 두서너 곳은 가마솥처럼 돌이 파여 있다"라고 기록했다.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수장됐다. 비숍의 배는 서울을 떠난지 10일만에 지금의 제천시 청풍면에 도착했다. 조선시대 청풍에서는 객사건물(한벽헌)과 한벽루(寒碧樓·보물 제528호)가 유명했다. "그곳은 그럴듯해 보이는 작은 도시로 거기에는 높고 하얀 의자가 초들이 놓여진 탁자를 향해 있고, 마루 탁자…
[충북일보] 연병호(延秉昊, 1894~1963)는 증평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 이후 1937년 중국 상하이에서 일경에 체포되기까지 20여 년을 국내와 중국 관내, 만주 등지를 무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그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발을 내딛으며, 대한민국청년외교단,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신한독립당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형 연병환 역시 독립유공자이며, 형의 딸 연미당과 사위 엄항섭, 외손녀 엄기선 또한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공적으로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곧 연병호는 3대에 걸쳐 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가문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 형 병환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에 나서다 연병호는 1894년 11월 22일 괴산군 도안면 석곡리(현재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에서 부친 연채우(延彩羽)와 전주 이씨 사이에서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곡산이고, 호는 원명(圓明)이다. 어린 시절 그의 가정 형편은 겨우 빈농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그의 선대가 도안면에 세거한 것은 15세기 후반부터이다. 연정은 부친이 죽은 후 어머니 상산 김씨의 친정인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로 내려와 살게 되었고, 이 후 안동 김씨와 결혼하면서 처가인 도안으로
[충북일보] "비록 가시나무라 해도 핀 꽃은 아름답고, 더러운 못에 핀 연꽃일지라도 향기는 더욱 좋더라." 청주 출신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이 남긴 시 구절이다. 혹독하고 암울한 시절에 꽃피운 이 땅 독립투사의 삶은 가시투성이같이 험난해도 향기 짙은 연꽃의 삶이었다. 본보는 창간특집으로 지역 최초,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올해 2월부터 일찌감치 우리 고장 독립지사들을 조명하고 있다. 충북 지역의 독립지사는 모두 433명으로 그 중에서 독립장 이상을 수여한 분들을 우선 대상으로 했다. 이미 연재된 내용 중에는 손병희 이상설 신규식 등 익히 알려진 분도 있으나 앳된 18세, 일제 항거에 몸을 던진 권용일 선생처럼 대부분 약관의 나이를 전후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청수한 이마 아래 맑은 눈빛의 소년시절부터 거친 풍파의 장년을 거쳐 흰 수염을 늘어뜨린 팔순 고령에 이르기까지 그 독립에 대한 지조와 애국의 의기는 삶을 놓는 순간까지 꺾이지 않았다. 우리 고장 독립지사들의 면모는 다양하다. 언론인, 목사, 한약방업자, 농민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의병선봉장이나 의열단 단원, 임시정부요인, 준열한 애국관의 교육자 등으로 변신하여 치열한 독립 열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충북일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는 독립운동가 박열(朴烈·1902∼1974)의 연인이자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23살의 짧은 삶을 산 그녀는 △요코하마에서 사생아로 출생 △한국 부강(구 충북 청원군 부용면·현 세종시)에서의 생활(1912∼1919) △박열과의 만남과 동거(1922) △관동대지진 때 치안법 위반으로 체포(1923) △천황 암살혐의 추가(1924) △옥중 자서전 집필 시작(1925) △박열과 옥중 결혼(1926)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메 자살(1926.7) △박열 고향인 경북 문경읍 팔령리에 유골 안장(1926, 11) 등의 생애 마디를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부강에서의 7년 생활은 그녀 특유의 반항적 기질, 조선인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아나키스트로서의 사상 무장 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사학계는 보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그녀의 옥중 수기인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원제: 何が私をかうさせたか)를 바탕으로 부강 7년 생활을 재조명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모두 버림받았던 무적자(無籍者) 후미코에게는 미리 입국해 부강에서 생활하고 있던 할머니와
[충북일보] 70년전 꼭 그해, 충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1945년 8.15 광복으로 36년간 잃었던 국권을 되찾으면서 도하 각 신문지면은 흥분과 희망으로 넘쳐났다. 당시 충북과 관련된 내용으로 새 조선 건설을 위한 식량 확보, 자치치안유지회 조직, 미 군정청 충청북도 지사대리 임명, 귀국한 김구 예방 등이 기사화됐다. 이밖에 충북출신 임정요인 귀국, 한국광복군 명부 발표, 조선국군준비대 충북사령부 구성 등의 내용도 보도됐다. ◇ 새 조선 건설을 위한 식량 확보 매일신보는 광복 이틀후인 1945년 8월 17일자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자료를 인용, 당시 식량 사정을 이례적으로 기사화했다. '16일 현재로 각도 창고에 확보되어 있는 식량은 전부 1백2만3천8백76석이나 된다. 그러므로 일반은 조금도 불안한 생각을 가지지 말고 지도자를 신뢰하여 새 조선 건설로 동포된 지성을 받쳐야 할 것인데….' 당시 보도는 사회불안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로, 그해 8월 충북에는 5만1백70석으로 비치돼 있었다. ◇ 자치치안유지회 조직 제천지역 치안 유지를 위해 관내 유지들이 회합했다. 매일신보는 이에 대해 8.15라는 특수상황 속에서도 제천의 민심이 극히 안온하고 일사불
[충북일보] 충북 도내에서 저발전 지역이자 인구가 감소하는 동남 4군을 연결하는 새로운 산업벨트 조성이 추진된다. 충북도는 건설이 가시화되고 있는 영동~진천 고속도로 주변에 이 벨트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2일 도에 따르면 보은과 영동, 옥천, 괴산 등 4개 군에 '동남권 신산업벨트'를 조성할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들 지역의 개발을 유도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다. 도는 영동~진천(오창)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신산업벨트를 구축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고속도로가 4개 지역을 모두 지나는 만큼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산업단지를 1곳씩 새로 조성해 하나의 벨트로 연결하는 것이다. 먼저 보은군은 충북개발공사가 맡은 제4산업단지 조성이 진행 중이다. 사업 타당성 검토와 함께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다. 옥천군은 민선 8기 공약 사업의 하나로 미래성장 산업단지를 조성한다. 현재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 영동군은 용산면 일원에 영동2산업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본구상 및 타당성조사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괴산군의 경우 산업단지 조성을 구상 중이며 아직 명칭은 정해지지 않았다. 도는 4개 산업단지 조성이 완료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충북 도내에서 저발전 지역이자 인구가 감소하는 동남 4군을 연결하는 새로운 산업벨트 조성이 추진된다. 충북도는 건설이 가시화되고 있는 영동~진천 고속도로 주변에 이 벨트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2일 도에 따르면 보은과 영동, 옥천, 괴산 등 4개 군에 '동남권 신산업벨트'를 조성할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들 지역의 개발을 유도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다. 도는 영동~진천(오창)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신산업벨트를 구축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고속도로가 4개 지역을 모두 지나는 만큼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산업단지를 1곳씩 새로 조성해 하나의 벨트로 연결하는 것이다. 먼저 보은군은 충북개발공사가 맡은 제4산업단지 조성이 진행 중이다. 사업 타당성 검토와 함께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다. 옥천군은 민선 8기 공약 사업의 하나로 미래성장 산업단지를 조성한다. 현재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 영동군은 용산면 일원에 영동2산업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본구상 및 타당성조사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괴산군의 경우 산업단지 조성을 구상 중이며 아직 명칭은 정해지지 않았다. 도는 4개 산업단지 조성이 완료
◇취임 2주년 소회와 주요 성과는 그동안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지속가능한 공감·동행 교육'을 펼쳐왔다. 학교는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고, 학생은 스스로의 삶과 학습을 주도할 수 있도록 탄탄한 토대를 만들고 다졌다. 취임 후 2년은 충북교육의 '새로운 도전과 성장의 시기'였다.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던, 공약은 도민과의 약속이다. 지난해 전국교육감 공약 실천 계획 평가 최우수에 이어 올해 공약 이행평가도 최고등급을 받았다. 2023년 교육부 17개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교육발전특구 공모에 도내 5개 지구가 선정돼 3년간 최소 15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학생 성장 기반을 단단히 다졌다. 학생들은 몸활동을 통한 기초체력 단련과 독서교육으로 마음 근육과 기초소양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기초·기본 학력을 기른다. 올해는 기초학력 진단검사 후 모든 학습지원대상 학생 1대1 개별 맞춤형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다채움' 플랫폼을 통한 촘촘한 지원방안도 살피고 있다. 현장에서 답을 찾아 충북형 정책을 수립했다. 교직원 단체의견 수렴과 전문가 협의회를 통해 '작은학교 활성화 종합계획', '지금은 아이성장 골든타임' 정책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