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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으로 엿보는 충북의 아름다운 속살 - 즐거운 소풍길

생각의 탄생, 충북의 내일을 변주하다

  • 웹출고시간2011.01.06 19:00:4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독일에 가면 로렐라이 언덕이 있습니다. 매년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이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면 특별한 멋과 향기로움을 찾을 수 없어 실망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것은 로렐라이 언덕의 전설과 이야기 때문입니다. 역사와 문화와 생태가 조화로운 스토리텔링의 시대가 주는 교훈인 것입니다.

충북에도 로렐라이 언덕보다 더 훌륭한 문화가치가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충북의 이야기와 그 속에 숨어있는 속살을 글과 사진과 그림으로 엿보는 스토리텔링을 시작합니다. 충북의 역사 문화 생태, 그리고 충북사람만의 애틋함을 새로운 시각으로 엿보고 문화원형을 찾아내며 미래지향적인 문화콘텐츠 및 관광자원 개발의 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문화기획자이며 에세이스트인 변광섭씨의 글과 한국인의 심성과 서정을 수묵화로 표현하는 화가 강호생씨의 그림, 그리고 사진작가 홍대기씨의 생명의 사진이 함께합니다.

대청호에서 바라본 2011년 일출.

누군 그 모든 것들을 속절없이 버리고 싶었겠는가.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추억, 잊혀지거나 사라질까 조마조마하며 글로 적어보고 사진으로 남기고 가슴을 비벼가며 고이 간직하려 애썼지만 유수와 같은 시간 속으로 흘려보낸 게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컴퓨터가 없으면 그 무엇 하나 할 수 없고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 소통이 이루어지며 이것도 모자라 스마트폰으로 세상의 모든 최신정보만을 수집하는 최첨단 정보화와 시테크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이란 원래 비겁하고 헐겁기 짝이 없어 욕망만을 쫓을 뿐이지 아날로그의 추억은 쉽게 잊거나 망각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망이란 끝도 없고 날개도 없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게 우리네의 본모습이니 그 길을 뒤돌아보면 처량하고 구차하며 막막할 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땅의 생명체 중에서 가장 치열하고 참혹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끈질기기 때문에 기계처럼 고식화된 자잘한 일들에 쉽게 상처받고 가슴 시리며 흥분하고 때론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끼지 않는가.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부질없고 사사로운 것들인데 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일까.

인간에게 절실한 것, 간절한 것들은 당장의 이기가 아니라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아날로그 정신이다. 그것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스스로 강하지 못하고 나약해 쉽게 방치되거나 버려지기 싶다. 그래서 당장은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에 다락방 속 깊은 곳에서 어둠과 함께 쾌쾌한 냄새를 맡으며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새날을 기다리면서.

매서운 칼바람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강직한 소나무.

며칠 전 나는 배창호 감독의 오래 전 영화 '길'을 비디오로 보았다. 논두렁길 밭두렁길, 인간의 온기로 가득한 시골 장터와 초가집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 풍경, 비바람 불고 눈보라 날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봄꽃 여름향기 가을들녘의 겨울억새 사계절 모두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영화속에서 대장장이의 풀무질과 유랑극단과 선술집과 어린 여공과 놀음꾼의 죽음 속에서 만남과 이별, 사랑과 우정, 배신과 증오, 희망과 좌절과 그리움과 애틋함을 보았다. 이것이 한국인만의 기나긴 고단한 여정임을 알 수 있었다. 서울 평화시장의 다락방에서 미싱질을 하는 앳된 여공은 밥 씹을 시간도 없이 일을 하고 분첩 하나에 마음을 달래야 했다. 쪽물만 보면 어릴 적 집 나간 어머니 치맛자락이 생각나고 원수같은 친구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았던가. 한국의 사계를 애증의 인연으로 표현하고 길을 통한 관용과 용서, 그리고 기억과 그리움에 관한 서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물겨운 영화가 아니었던가. 가난도 팔자라며, 떠돌이 생활도 운명이라며 삶의 고단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은 이십여 년 만에 고향을 다시 찾아 옛날에 자주 다니던 단골 이발소를 찾는다. 벽에 기대어 졸던 이발소 주인이 부스스 깨어 창밖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 가슴을 후빈다. "아따, 인자 포도시 봄이 올랑갑네." 그렇다. 가벼운 사람들은 때가 되면 찾아오는 게 계절이라 하겠지만 어찌 지난 겨울의 모진 세파를 이겨내지 않고서 동토에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겠는가. 쉬운 사랑도 없고 쉬운 생명도 없으며 쉽사리 오가는 운명도 없다. 모든 것이 '포도시' 오고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산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어디 산 뿐이던가. 요즘은 올레길, 둘레길, 산막이옛길 등 산길 들길 골목길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때로는 오지게 넓고 넓은 산하가 온통 사람 물결이고 주변의 주차장과 도로는 차량으로 빼곡하니 인간의 욕망에 대자연이 상처입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서울 북한산의 탐방객이 매년 2천만 명이나 다녀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산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인이 얼마나 산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알 수 있다. 청주의 우암산과 상당산성, 그리고 청원의 작두산을 찾는 사람도 매년 50만 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이처럼 산길 들길을 찾아 등산을 즐기고 걷기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일까. 서양 사람들은 가까운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휘트니스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또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좋은 작품을 보며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공연을 즐기기도 한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고단하고 눅눅하며 막막하기까지 한 삶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자신들의 삶과 문화를 디자인하는 역량보다도 지나치게 감정에 몰입되거나 이 때문에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 문화살롱이나 문화아지트를 만들고 이곳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거나 인간의 서정을 호흡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 게다가 미래가 불확실하고 정치적인 혼란과 과도한 경쟁사회가 주는 정신적인 상처가 깊으니 대자연 속에서 심신을 수련하려는 것이다. 웰빙과 웰니스, 슬로우라이프 등 시대정신도 한 몫 하고 있는 것 같다.

산을 오르고 길을 걷다보면 항상 즐거움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트레킹은 고되고 힘겨운 여정이 뒤따르게 마련이고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오르려 하느냐"며 등을 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있는 폼, 없는 폼 다 제다 보면 멋 부리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고 자칫 산악사고로 이어지곤 한다. 어디 이 뿐인가. 하도 많은 사람들이 똑 같은 길을 걷다보니 멀쩡하던 길도 깎여 나가고 산림까지 훼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하니 대자연은 인간의 욕망과 이기利器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인간과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없는 길을 파고 뚫고 헤집어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동산 뒷동산 골목길 호숫가 등 지척에 있는 자연의 속살을 엿보고 호흡하며 그 곳에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혼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마음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이름하여 '즐거운 소풍길'이다. 온 가족이 도시락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소풍길에 오를 수 있는 길이면 좋겠다. 사랑하는 연인과 손잡고 자연이 주는 영롱함과 골목길의 서정과 사람들의 스토리를 한 바구니 담아오면 또 어떤가. 학생들에게는 보물찾기와 장기자랑의 흥미로운 놀이터가 되고, 여행객에게는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을 호흡할 수 있는 멋진 추억의 공간이며, 방랑자에게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휴식처가 될 것이다. 인간의 길이든, 자연의 길이든 길이라는 것은 질기고 질긴 생명의 여정이 아니던가.

우선 즐거운 소풍길을 발굴하고 그곳의 역사 문화 생태를 하나로 묶는 스토리텔링 작업을 해야 한다. 눈만 즐겁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독창적인 맛집 멋집을 개발해 흥미와 추억거리를 만들면 좋겠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의 논리대로 기능과 주장과 집중과 논리와 진지함과 물질의 축적만으로는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하고 스토리를 겸비하며 조화와 공감과 놀이가 공유할 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삶과 우리들의 터전이 경이롭고 신명나게 변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즐거운 소풍길을 만들기 위한 생각의 탄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충북 구석구석의 속살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나갈 것이다. 가슴 시리고 아팠던 추억과 아름답고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절절이 담을 것이다. 여기에 맑고 향기로운 이 땅의 사계와 골목길 풍경과 멋과 맛을 소달구지에 가득 실어 나를 것이다. 사진과 그림과 시와 에세이가 조화를 이룰 것이니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도전이며 문화원형과 문화콘텐츠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이웃들과 꿈꾸는 청춘들이 희망을 노래하고 미래를 변주하면 좋겠다.

/글=변광섭·그림=강호생·사진=홍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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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