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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오창

자연이 준 풍요로움으로 삶의 빈자리를 채우다

  • 웹출고시간2011.05.26 18:30:2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함께 웃고, 꽃이 지면 함께 울고,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어머니는 마당 한 가운데 바지랑대에 햇솜 같은 봄 햇살이 내려앉으면 돌담 밑 화단에 앉아 이 노래를 부르며 호미질을 했다. 봄꽃들이 수다스럽게 피어나는 것을 그냥 볼 수 없다면서 이제 막 솟아오르는 어린 잡풀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네는 꽃과 생사고락을 함께한다. 꽃이 없는 세상은 황량하고 적막하며 무미건조할 것이다. 꽃이 있으니 우리의 삶이 한결 아름답고 유연해지며 매력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땅에 사는 사람 중에 벼꽃을 보고 자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벼도 나락을 맺기 위해 꽃을 피우는데 고단하고 바쁜 일상에 쫓기는 운명의 현대인들이 벼꽃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벼꽃은 거짓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오직 대자연의 흙과 노동을 벗 삼아 살고 있는 구릿빛 농부의 맑은 눈에나 보이는 순결한 꽃이다. 파릇파릇하고 통통하게 살이 찐 벼이삭 사이로 우담바라처럼 생긴 하얀 꽃이 보일듯 말듯 고운 자태를 뽐내는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말을 하지 말라. 벼꽃이 피고 지고 난 뒤에야 벼이삭 누렇게 익어가고 들녘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니 오직 농부만이 그 멋과 맛을 느끼고 즐길 자격이 있는 것이다.

오방색 중 황색을 으뜸이라고 하는 것도 대자연의 모든 시련과 고통을 견뎌낸 산고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세상의 빛을 다스리고 최고의 경지에 설 수 있는 것이니 속 좁고 약은 사람들이여, 뒷골목이나 배회하는 구린내 나는 사람들이여, 불경스러우니 황금들녘을 넘보지 마라. 천고마비의 가을이라며 들녘을 향한 눈길도 함부로 주지 마라. 흥분하지도 긴장하지도 말고 욕심도 미련도 갖지 마라. 오직 자신을 성스럽게 가꾸고 정진하며 노력하는 순정의 핏줄만이 즐길 수 있는 특혜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우담바라의 신비를, 황금들녘의 풍요를 농부만이 아니라 시인과 지조 높은 선비들도 함께 보고 즐기며 가을하늘의 여유로움을 즐겼다. 농부는 농사짓는 일을, 시인은 좋은 글을, 선비는 마음의 양식과 학문의 곳간을 채우느라 봄과 여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일과 노동의 시간 못지않게 휴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진정한 휴식은 자연을 벗 삼고 그 속에서 새로운 엔트로핀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대자연이 벗이자 휴식의 원천이고, 소통과 에너지며, 영감을 얻고 창작하며 미래비전을 만드는 보물창고였다.


예로부터 오창과 옥산은 중부권을 대표하는 곡창지대다. 비옥한 토양, 풍족한 호수, 맑은 햇살과 바람, 구름도 쉬어가는 넓은 평야…. 이를 입증이나 하듯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이곳에서 출토되었으니 풍요의 땅이요, 약속의 땅이 아니던가. 농경의 시작은 불과 함께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한다.

벼의 기원지에 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주로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1970~80년대까지는 주로 황하 유역에 있는 유적에서 발굴된 볍씨들과 양자강 유역에 있는 유적에서 발굴된 볍씨들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주장되어 왔다. 1만5백 년 전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소로리 볍씨가 출토되었다. 1994년 소로리 일원에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 계획이 수립되고,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사전 지표조사가 실시됐다. 지표조사로 구석기 유물들을 확인하여 1997∼98년에 제 1차 발굴작업이 실시되면서 구석기 유물들과 함께 소로리 볍씨가 처음 찾아져 학계에 보고됐다.

1차 발굴은 구석기 문화층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토탄층 일부에 대해 발굴작업이 이뤄졌지만, 2차 발굴작업은 볍씨를 찾는 작업이라 대나무칼로 토탄층을 얇게 쪼개고 쪼개 수거된 토탄들을 물체질 정밀작업을 실시하여 고대벼 6톨과 유사벼 30톨을 찾아냈다. 출토된 볍씨는 바로 서울대학교 AMS(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Geochron Lab.)연구실로 보내져 1만 3천 년~1만 5천 년 전의 절대 연대 값을 얻어 '소로리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임이 판명됐다.

소로리 볍씨가 1만 5천 년 전 것으로 판명되자 일부 학계에서 의문이 제기됐다. 1만5천 년 전은 구석기말 빙기의 끝무렵인데 한반도에서 아열대 식물로 알려진 벼가 추운 기후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또 그 벼가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고증을 얻기 위해 청주MBC 취재팀이 국립 작물시험장 춘천출장소에서 냉해실험을 통해 벼가 자랄 수 있는 온도를 실험한 결과, 벼가 자연상태에서 최저 발아온도가 섭씨 20도로 알려졌지만, 실험결과 13도에서도 70%이상 발아되어 생성되는 연구결과를 얻게 되었다.

2003년 10월 22일,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영국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 유적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라고 하는 타이틀로 보도하였으며, 인터넷판으로 다시 그 내용을 전 세계에 보도하여, 이제는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로 공인받은 셈이다.

소로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구석기시대 야외유적과 토탄층이 함께 확인된 곳으로 고고학과 고생물학, 제4기 지질학 등 학문연구를 통하여 벼의 기원과 진화, 전파경로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2004년 1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문화유산 관계자들은 이 유적이 세계 문화유산으로의 등재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 일대가 풍요의 땅이라는 사실은 마을마다 수백 년 이상의 느티나무가 있고 마을 어귀에는 서낭당이 있으며 집집마나 장항아리 금줄을 달고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으니 가을볕에 물든 황금들녘은 땅도 인간도 자연도 모두 기름지게 하고 행복하게 하였다.


오창들녘이 오늘을 있게 한 노동의 곳간이라면 호수공원은 새로운 내일을 설계하는 열락의 곳간이다. 이곳은 정적과 서정으로 물든 여느 호수와 달리 일 년 내내 자잘자잘 수다스럽다. 봄꽃이 피면 악동들은 까불까불 정겹고 연인들은 호젓하게 사색을 즐긴다. 여름이면 열려진 수련 속에 햇살들이 들끓고 더위를 피해 소풍 나온 가족들의 신명나는 이야기꽃은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와도 끝이 없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촘촘하며 붉은 노을과 단풍으로 물감질이 한창일 때 실잠자리 고추잠자리 할 것 없이 가벼운 교접에 부산하고 욕망을 쫓는 인간의 이기에 대자연이 상처받지 않을까 아슬아슬하다. 삭풍이 불어오고 눈보라 치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다 말할 수 없는 인간의 은밀함을 간직한 호수는 바람과 햇살과 구름과 나그네의 막막한 시선을 품고 침묵 속에 잠겨 있다.


허나, 아파트와 러브호텔과 빌딩숲들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수평의 삶을 수직의 삶으로 바꿔놓았고 이기와 욕정의 뒤안길이 비루하며 구린내 나니 호수는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구용지口容止(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성용정聲容靜(소리를 정숙히 하라)이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 준다.

본디 산하는 출렁이며 흘러가야 하는 법이다. 인간도 때로는 욕망의 끈을 풀어놓고 가볍지만 뒤태가 고운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그 모습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는 진정 세상을 사랑하고 품을 자격이 있는 순결한 영혼이다.

/ 글 변광섭(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충북미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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