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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괴산 산막이 옛길

물줄기 따라 15리, 생명의 숲을 거닐다

  • 웹출고시간2011.04.07 18:34:5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산막이 옛길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푸른 하늘과 숲과 호수가 절경이다.

진달래와 산벚꽃이 지고 배꽃마저 바람결에 힘없이 흩날리는 햇살 가득한 4월 어느 날,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나른하게 봄을 탄다. 겨우내 우울하고 권태로웠던 마음이 설렘으로 바뀌고 대자연도 앞을 다투어 새싹을 틔우며 푸른 물감질이 한창이다. 여인들은 봄날의 나른함을 달래고 새로운 기운을 얻기 위해 봄나물 캐기가 한창이다.

달래 냉이 씀바귀 쑥 돌나무 취나무 두릅 유채 보리순 등 얼었던 대지를 박차고 솟아나는 새순을 따느라 해지는 것도 잊는다. 마을 앞 개천에도, 동구밖 언덕길에도, 밭둑과 논두렁에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고개 숙인 여인들의 수다와 손놀림은 아지랑이처럼 예쁘기만 할 뿐이다. 봄나물은 특유의 향취가 있기에 미각은 물론 후각까지 자극하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까지 가볍게 해 준다. 봄철의 나물에는 다른 계절에 나오는 그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한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봄쑥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먹거리가 너무 많다. 보드라운 봄쑥에 된장을 풀어 넣고 끓인 쑥국과 된장찌개는 쑥 고유의 향과 맛이 일품이다. 봄쑥은 처녀 속살을 키운다는 말처럼 얼었던 몸을 녹여주는데 그만이다. 이따금씩 쑥떡을 만들어 먹곤 했는데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힘겨운 시골 사람들에게는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봄나물 중에 단백질이 가장 많다는 냉이 역시 오래 묵은 된장을 풀어 찌개나 국을 해 먹었으며 추운 겨울을 노지에서 견뎌내며 자란 봄동은 겉절이로도 먹고 쌈이나 국으로도 해 먹었다. 날로 무쳐 먹기로는 달래나 두릅이 으뜸이다. 달래는 파와 비슷해 냄새가 나지만 맛과 향이 좋고 무기질이 풍부하며 두릅은 향도 좋고 맛도 좋아 어린 두릅순을 따자마자 먹기도 했다. 어머니는 두릅에 떫고 쓴 맛을 내는 사포닌 성분이 있어 혈액순환을 돕고 머리를 맑게 해 준다며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는 장남에게 몰래 먹이기도 했다.

진달래꽃은 붉다. 수줍다. 온 산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여인들이 봄나물 캐던 따사로운 봄날, 산막이 옛길 주변에는 철쭉과 찔레꽃이 화사하고 아늑하게 피기 시작한다. 꽁꽁 얼어붙었던 계곡물이 갓 녹아 차갑지만 영혼을 명료하게 하고 물소리조차 힘이 넘친다. 처처에 숨어있던 산새들의 힘찬 날개짓은 이내 햇살을 한 잎 두 잎 머금으며 재잘거린다. 솔잎향 머금은 바람은 동네 한 바퀴 휘익 돌고 오더니 양지바른 계곡의 바위 위에 살포시 앉는다. 오랜 세월 바위틈에 기대어 빛과 어둠, 물과 공기, 바람과 들새들이 함께 해온 누런 이끼도 새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잿빛 숲속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투명하고 정겨운 봄기운으로 완연하다.

나그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봄햇살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도시 사람들은 산막이 옛길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분홍빛 철쭉은 산 중턱에서부터 정상까지 무진장 피었고, 하얀 찔레꽃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만발했다. 사람들은 푸른 미소가 드넓게 펼쳐진 괴산댐 호수를 가슴에 품고 계곡물 흐르는 중간쯤에, 그것도 햇살 가득 품고 있는 큰바위에 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다. 계곡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돌무덤을 파헤치면 크고 작은 가재들을 잡을 수 있었는데 미리 준비해 둔 마늘잎과 고추장을 풀어 가재찌게를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솔잎으로 불쏘시개를 만든 뒤 불씨가 어느 정도 살아났다 싶으면 나무 가지를 꺾어 큰 불을 만들었다. 다 찌그러진 냄비에는 어느덧 붉은 가재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가재는 큰 집게다리와 네 쌍의 작은 집게다리가 있는데 집게다리에 손가락이 물려 붉은 피를 뚝뚝 흘리던 녀석도 있었다. 암컷과 수컷의 생김새가 비슷해 쉽게 구별이 안 되지만 눈썰미 좋은 초정리 녀석들은 금새 알아챈다. 가재끼리 싸움을 걸어보았을 때 화를 내지 않으면 암컷이고, 집게다리를 쳐들고 달려들면 수컷인 것이다.

하얀꽃 찔레꽃 향기와 붉은 노을 같은 철쭉의 싱그러움에 취해 벌러덩 자빠져 자는 풍경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꽃그늘 아래서 즐기는 달콤한 낮잠이란, 꽃대궐의 향기로움에 취해버린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란 정겨움으로 표현되는 일상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든파티가 따로 있나. 대문 밖으로 나가 자연을 벗 삼는 그 자체가 가든파티가 아니었던가.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마시는 한 잔의 물은 모든 번민과 고뇌까지 씻겨준다.

산막이 옛길에는 벌써 산뜻한 나무 냄새, 맑은 물소리가 새롭다. 그곳에도 약수가 있었다. 밀림 같은 숲이 있고 계곡이 있으며 그 밑에 노루샘이라고 부르는 우물이 있었는데 나무꾼들의 쉼터였으며 산짐승 날짐승이 쉬고 가는 놀이터였다. 일 년 사계절 쉬지 않고 맑은 물이 샘솟고 아래 냇가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까지 곱고 예뻤다. 이곳의 약수는 맑고 차며 깨끗한 맛이 목젖에 와 닿는다. 이른 새벽에는 토끼가 세수하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나무꾼으로 평생을 살아온, 비학봉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마음씨 고왔던 외환이 아저씨는 "토끼가 우물 속으로 다다닷 뛰어 들어가 온 몸에 물을 적시고는 다시 산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며 전설 같은 얘기를 하곤 했다.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믄 곳이었다. 괴산읍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뱃길을 이용해 읍내에서 장을 보는 게 고작이었다. 산막이 옛길은 나무꾼이나 사냥꾼들이 이따금 들리는 곳이었으니 숲속의 향기와 숲속에 쏟아지는 햇살, 그곳을 떠도는 바람결이 한결 부드럽고 그윽했다. 시골 아이들은 이따금 그곳으로 달려가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이 되곤 했을 뿐 그 누구도 사람들로 물결을 이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이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발걸음이 분주해 지기 시작한 것도 불과 1~2년에 불과했다. 걷기 열풍과 함께 올레길·둘레길·나들길·마실길 등 입안을 감도는 달콤한 이름의 길이 상품화되면서 대청호 둘레길과 함께 중부권의 대표적인 걷기 명소가 된 것이다.

칠성명 외사리 사오랑 마을과 산막이 마을을 오가는 이곳의 매력은 옛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아기자기하게 엮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이다. 좌측에는 괴산댐의 시원한 풍광을 감싸고 우측으로는 기암절벽과 깊은 산속 계곡과 밀림을 품으면서 뱀허리처럼 돌고 도는 멋스러움도 일품이지만 고인돌, 소나무숲, 노루샘, 연화담, 망세루, 앉은뱅이약수, 얼음바람골, 괴음정, 마흔고개, 다래숲, 진달래동산, 가재연못, 산딸기길, 연리지 등 전설같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고 있으니 걷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스토리텔링을 음미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걷다보면 어느 새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대자연의 소리에 내 몸과 마음이 고립된다. 꽃들은 피고 짐으로 들끓고 온 숲에 넘쳐나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물살에 부서지는 햇살과 바람소리까지 합창하니 내 몸에는 봄의 소리가 전신으로 풍겨내고 있었다. 이쯤에서 산막이 옛길을 위한 헌시獻詩를 읊어야겠다.

ⓒ 강호생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맑고 청아하며

푸른하늘 초록호수 연둣빛 대지 기운차고

오솔길 따라, 산길 들길 따라

사람의 길, 자연의 길, 하늘의 길 따라

여기저기 피어나는 봄꽃, 봄 향기 그윽하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이렇듯

오달지고 마뜩할 뿐인데

오직 하나,

사람들의 마음만 정처 없고 심란하니

산막이 옛 길에 이 한 몸 맡겨보면 어떠한가.

/ 글 변광섭(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충북미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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