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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청주 안덕벌

담배 수출하던 공장…이젠 문화콘텐츠를 수출한다

  • 웹출고시간2011.01.27 16:49:5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내에 설치된 공공미술작품.

충청도 사람들은 벼농사와 담배농사, 그리고 양잠업을 많이 했다. 벼농사야 경작의 규모가 다를 뿐, 시골에 사는 농부라면 어김없이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해야 하는 것이고 밭이 많은 사람들은 담배농사나 양잠업을 통해 목돈을 마련했다. 담배농사는 봄부터 시작해 늦가을까지 계속된다. 비닐하우스에 씨앗을 뿌린 뒤 애지중지 싹을 키우고, 쟁기질로 밭을 간 뒤 비닐을 씌워 구멍을 내고 어린 묘를 심었다. 이것이 사람 크기만 하게 자라고 팔뚝만한 푸른 잎들이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여름에는 매주 한 번씩 담뱃대 맨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잎을 따야 했다. 담뱃잎은 다시 새끼줄에 매달아 건조실로 들어가고 뜨거운 불꽃과 함께 며칠 밤낮을 견디면 바싹바싹 잘 마른 노란 잎으로 탄생한다. 담뱃잎의 입장에서 보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담배 원료가 될 수 있는 불행하고 처절한 삶의 연속이지만 노란 잎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면 아낙네들의 정겨운 수다와 따뜻한 손길을 통해 다듬어진다.

ⓒ 강호생 화가
담배농사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건조과정에 있다. 흙벽돌로 10여 미터 높이의 가마를 짓고 아침저녁마다 참나무나 석탄으로 불을 지펴 가마 안을 가열시켜야 하는데 온도와 습도의 조절에 따라 담뱃잎의 등급이 달라진다. 마치 어느 도공이 장작가마에 도자기를 넣고 자신의 모든 혼과 열정을 다해 불을 때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그 원리와 이치는 같다. 이 때문에 가마에 불을 댕기는 날은 꼼짝달싹 할 수 없다. 한 눈 팔다가 불꽃이라도 꺼지는 날이면 일 년 농사 말짱 헛것 된다. 불의 심판을 받는 순간이다.

담배를 말릴 때 이용하는 가마는 도자기를 굽는 장작가마의 원리와 비슷하다. 소설과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장작가마를 익히는 불길은 열熱이 아니라 흐름이라고 했다. 겉불꽃은 공기와 더불어 발랄하게 놀아나기 때문에 분청사기와 막사발처럼 자유롭고 여유로운 질감을 자랑하며 속불꽃은 바람과 뒤엉키는 그 놀아남의 흔적을 들키지 않으려는 속성 때문에 맹렬하고도 적요하다는 표현을 썼다. 그렇구나. 담배를 건조하는 저 가마의 불길은 오직 황금색만을 갈구하기 때문에, 최고의 상품만을 얻으려는 인간의 염원을 담았기 때문에 속불꽃처럼 맹렬하고도 적요한 것이구나.

청주 안덕벌의 본래 지명은 밤고개였다. 달고 맛있는 밤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 영조 때 조원의라는 유생이 보은 회인으로 귀양보내졌는데, 임금은 금부도사에게 도착즉시 유생의 목을 베라고 명했다. 청주 북쪽의 율봉원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발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역졸 하나가 밤을 한 바구니 삶아 왔다. 사각사각 입안에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올 수 있느냐며 밤의 유래를 물었더니 역졸은 해 저무는 줄 모르고 마을 이야기와 밤에 얽힌 사연을 풀어놓았다. 그 사이에 파발마가 도착했다. 유생의 귀양을 풀고 한양으로 돌아오게 하라는 어명이었다. 역졸의 밤 한 바구니에 유생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내에 설치된 공공 미술 작품

안덕벌에는 6·25직후에 만들어진 연초제조창이 있다. 충북의 각지에서 수확한 잎담배를 수매하고 가공하던 국내 최대 규모의 담배공장이다. 서리 내리고 선선한 바람 살갗을 스치는 늦가을 새벽, 안덕벌에는 소달구지와 경운기가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 시간 잎담배를 키워 말리고 다듬은 것을 가득 싣고 수매를 기다리던 풍경이다. 순대국밥집과 주막에서는 비릿한 냄새와 김 모락모락 올라오고 검게 그을린 농부들이 걸쭉한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수매에서 최고의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황금빛의 잎담배에게만 주어졌다. 예상외로 높은 등급을 받았는지 농부들은 묵직한 돈다발을 품에 안고 환한 이빨을 드러내며 귀로를 재촉하곤 했다. 왜 황금빛이던가. 오방색 중 황색을 으뜸이라고 하는 것도 대자연의 시련과 고통을 견뎌낸 산고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저녁나절엔 안덕벌 골목길마다 연탄불에 삼겹살 구워 먹고 순대국을 안주삼아 소주 마시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모두들 연초제조창의 노동자들이었는데 한 때는 이곳의 노동자가 3천여 명에 달했으니 안덕벌 일대 식당가는 연일 문전성시였으며, 인근에 선술집이 100여개나 될 정도로 흥겨운 동네였다. 어디 이 뿐인가. 우암산 밑에 자리 잡은 안덕벌에는 집채만한 먹바위가 무리를 이루고 있어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집집마다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다. 공장 굴뚝에서는 연일 담배연기 내뿜었고 비가 오거나 날이 궂으면 담배 냄새가 주변 마을에 낮게 깔리면서 코끝을 간지럽히곤 했다. 그래도 주민들은 불평불만 한번 하지 않았다. 고단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지금은 밤나무의 흔적도, 먹바위골의 추억도, 마르지 않는 샘물의 이야기도, 코끝을 징하게 했던 담배연기의 아련한 냄새도 찾을 수 없다. 고즈넉한 뒷동산의 처연한 풍경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슬프고 덧없고 시린 바람과 빛바랜 햇살만이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비정한 사람, 구린내 나는 세월, 무정한 삶이 야속하다.

옛 연초제조창 원료창고를 리모델링한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는 문화콘텐츠 개발 전문가들이 입주, 24시간 쉬지 않고 창의의 자양분을 만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화산업의 시대정신과 함께 이곳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낡고 허름한 공장 건물이 문화예술의 새로운 곳간으로 탄생하면서 지역 경제를 살리고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며 문화도시, 문화복지를 실천한 사례가 얼마나 많던가. 중국 베이징의 798지구. 옛 군수공장이었던 이곳은 버려지고 철거되기 직전의 건물을 문화예술로 탈바꿈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핀란드 핼싱키의 카펠리와 피스카스빌리지도 주목받고 있다. 옛 전선공장이었던 카펠리는 미술인 연극인 음악인 등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하고 크고 작은 전시회와 이벤트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으며 가위공장이 이전하면서 폐허위기에 처했던 피스카스빌리지는 예술인들의 창작촌으로 꾸미면서 북유럽을 대표하는 전원형 예술촌 조성에 성공했다. 1980년대 극심한 경기침체로 철강업계가 속속 문을 받으면서 어둠의 도시, 절망의 도시로 몰락한 영국 셰필드는 문화산업지구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폐허가 된 공장 건물을 콘텐츠업체, 디자인업체, 영화사 등 다양한 문화산업 기업체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토록 하였다. 이 결과 셰필드는 도심공동화라는 숙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도시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8%가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등 도시개발, 경제활성화, 관광산업, 복지증진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혁신과 성장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체험관'에서는 제빵체험을 할 수 있다.

안덕벌 옛 연초제조창 건물이 첨단문화산업단지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체험장 등으로 변신하고 있다. 다채로운 학습콘텐츠들로 구성돼 놀면서 공부하는 <에듀피아>와 세계의 문화를 최첨단 장비들로 엿볼 수 있는 도 새롭게 선보였다. 인간의 온기가 돌고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세상의 다양한 문화와 정보가 공유하는 신르네상스도 멀지 않았다. 이곳의 담배가 25개국으로 수출되었었는데 이제는 문화콘텐츠를 세계 시장에 내 놓고 있으니 창조적 진화와 생각의 탄생은 무죄다.

놀면서 학습하는 신개념 교육체험공간 에듀피아는 어린이들의 문화곳간이다.

낡고 허름할지라도 역사와 스토리를 중시하며 문화가치로 재편하고, 시민과 학생들을 위한 창작의 곳간을 만들며, 예술과 산업, 하이터치와 하이테크, 지역과 글로벌, 생태와 문명이 융합하는 생명의 숲을 만들어야 한다.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문화의 시대, 참여와 연대를 중시하는 소통의 시대, 인간의 온기와 디자인이 함께하는 감성의 시대이니 말이다.

/ 글 변광섭(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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