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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청원 귀래리

단재의 고결한 삶과 자연을 가슴에 품다

  • 웹출고시간2011.02.17 18:21:1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강호생 화가
뽀드득, 뽀드득. 연말부터 시작된 북풍한설이 끝도 없고 기약도 없다. 오늘 아침에는 눈발 가득한 시골길을 걷는다. 푸른 솔숲이 하얗게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설국이 따로 없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푸드득, 하얀 솔잎위에 내려앉아 날개깃을 적시고 칼바람의 리듬에 맞춰 눈꽃이 휘날린다. 저 산 너머 햇살까지 쏟아지니 맑고 향기로운 서정이 내 몸속으로 밀려온다.

고드미 마을의 한옥풍경. 고즈넉하게 앉아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듯하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 한 번, 들녘 한 번 들러보며 하얀 솔잎의 내밀함에 빠져 본다. 번잡하고 막막하기만 한 도시의 풍경을 뒤로 하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삶이어야 하는지 잠시 번뇌의 시간을 갖는다. 늘 처음처럼 맑고 향기롭게 살아왔는지, 행여 나만의 욕망 때문에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자기성찰의 시간이다.

사람의 마음이 신묘한 것은 똑같은 산을 오르내리고, 똑같은 길을 걷는데도 아침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내 마음가짐도 단아하다. 뭐라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용서하며 배려하는 인간미가 내 몸 안에 가득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침형 인간을 강조했던 것인가. 지금, 하얀 솔숲처럼 반듯한 모습 그대로 살리라.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청정한 대자연의 향기로움과 직립의 위대함을 잊지 않고 오달지며 마뜩하게 살리라.

오래전 일이지만 영화 '테러리스트'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제에 대항해 싸우던 의열단을 모델로 한 영화인데 개봉과 함께 영화계를 흥분시키기도 했다. 펄럭이는 코트자락, 꼬나 문 담배, 허공을 날며 쏘아대는 권총, 슬로우 모션으로 쓰러지는 남자들…. 의열단은 1919년 11월 9일 만주에서 만들어졌다. 3·1운동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독립을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 일제의 무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독립운동 단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은 요인암살과 주요 시설 파괴라는 행동을 감행해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부산경찰서 폭파사건, 밀양경찰서와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의거, 동양척식주식회사·식산은행·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등 그들의 활약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때문에 의열단은 일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한국인 단체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하루하루는 긴장과 불안함과 아슬아슬함의 연속이었다. 영화 '테러리스트'처럼 멋있게만 보일 수 없었다.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독립을 이룰 수 없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 의열단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의열단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정신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들에게 단재는 나라의 큰 스승이었다. 단재는 "나는 네 사랑, 너는 내 사랑/두 사랑 사이 칼로 썩 베면/ 고우나 고운 핏덩이가, 줄줄줄 흘러내려 오리니/한 주먹 덥석 그 피를 쥐어/한 나라 땅에 고루 뿌리리/떨어지는 곳마다 꽃이 피어서 봄맞이 하리"라는 시로 시대정신을 이야기 했고, 단결과 투쟁과 승리를 강조했다.

신채호 사당은 선생의 꺾이지 않는 고결함을 엿볼 수 있다.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 가면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당과 묘, 그리고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청주에서 보은 쪽으로 둘레둘레 산을 돌고 돌아 20여분 달리면 미원면 소재지가 당돌하기 직전 좌측에 귀래리와 단재기념관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는 번잡하고 비루한 마음을 비워야 한다. 애써 승용차로 목적지까지 달리려 하지 말고 호젓한 시골길을 걸으면 흙냄새 마뜩하고 구순한 농촌풍경에 졸음겨울 것이다.

귀래리 고드미 마을사람들은 무농약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일만이 중요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일 만큼 휴식도 중요하다. 쉬지 않고 일만 하겠다는 사람처럼 답답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 농부들의 한낮 휴식정경이 한 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게으름은 추하지만 휴식은 아름답다는 것을 농부들의 금쪽보다 귀한 휴식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귀래리 고드미 마을에는 무농약 유기농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친화형 한옥을 짓고 오리를 이용한 자연농업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철학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다.

신채호 선생 사당은 민족사관을 확립한 그의 고결한 삶과 가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구한말 충남 대덕군 산내면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단재선생은 이곳 귀래리에서 성장했다. 성균관 박사를 거쳐 26세인 1905년 황성신문 논설진으로, 1906년에는 대한매일신보 논설진으로 참가했다. 일제의 침략행위와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통렬히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온 국민이 진력할 것을 계몽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은 이어 1907년 안창호 선생 등이 주도한 비밀결사 '신민회'에 창립위원으로 참가했으며 민족경제수호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 논설을 통해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후 선생은 한일합방이 강제 체결된 이듬해인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독립운동단체인 광복회를 조직, 부회장으로 활동했으며 1919년엔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상해임시정부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자 임시정부와 결별을 선언하고 이후 반임정노선을 취했으며 북경으로 이주, 무장투쟁노선을 강조하면서 국사연구에 몰두하였다. 1924년에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를 집필하는 등 근대민족사학을 확립하는데 박차를 가했으며, <조선혁명선언>은 선생이 1923년 의열단의 독립운동 이념과 전략을 이론화하여 천명한 선언서로 유명하다. 선생은 1928년 4월 북경에서 열린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참가한 뒤 이 회의의 결의에 따라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다 일경에 체포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36년 만주 여순감옥에서 순국했다.

이곳에서는 국권상실이라는 암울한 상황에서 언론인이자 역사가이며 문학인으로서 한 평생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나라와 민족만의 위해 천재적인 재능을 쏟아낸 선생의 위대한 삶과 그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시인 도종환은 "살아서 언제나 불꽃처럼 뜨거웠고, 죽어서 더욱 꼿꼿했던 당신"이라며 단재의 삶과 넋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귀래리의 가을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선생의 묘소와 주변 풍경은 사당의 숙연함과는 대조적이다. 예쁘게 단장된 주변을 호젓하게 거닐며 산새 들새의 지저귐에, 바람소리 물소리의 청아함에, 맑은 햇살 고운 바람의 춤사위에 마음 빼앗기면 어떠한가. 이왕에 먼 걸음 했으니 귀래리 골목길의 속살을 훔쳐보면 좋겠다. 뽀드득 뽀드득 눈길을 걸으며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이라도 해보자. 지난 가을에는 깨 터는 구릿빛 촌로, 고구마 캐는 아낙네의 자글자글한 얼굴, 바지랑대로 붉은 홍시를 따는 악동, 지붕위에 앉아 햇살 가득 담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호박이 정겨웠는데 그 자리에 하얀 눈꽃, 맑고 투명한 고드름이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하여, 아름다움은 참으로 어렵다. 시간과 공간과 어둠, 그리고 고단하고 질기며 기나긴 터널을 뚫지 않고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아슬아슬함의 지존이다. 지붕위에 앉아있던 햇살이 음표를 떨치듯 빠른 날개짓을 하며 서편으로 날아갔다. 순간 하얗던 산하가 파르르 빛났다. 이제 나도 나의 본질을 찾아, 나만의 숲으로 가야겠다.

글 변광섭(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사진설명

02492 고드미 마을의 한옥풍경. 고즈넉하게 앉아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듯하다.

0166 귀래리 인근의 백석정에 눈발이 날리고 있다.

0109 신채호 사당은 선생의 꺾이지 않는 고결함을 엿볼 수 있다.

3219 귀래리의 가을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67 귀래리 고드미 마을사람들은 무농약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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