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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미동산수목원

구름과 바람과 햇살을 벗삼아 걷는 숲속의 길

  • 웹출고시간2011.04.14 18:08:0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봄비에 소나무 숲이 촉촉하게 젖었다. 바람이 멎은 자리 솔숲은 말이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려 안간힘 쓰는 여느 나무와 달리 소나무는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자라는 듯 마는 듯, 기쁜 듯 슬픈 듯, 알듯 말듯 늘 그랬다.

솔잎은 해마다 옷을 갈아입고 등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며 붉은 속살을 내밀면서도 말이 없었다. 오직, 자신들의 잔해만이 바닥에 누워 바스락 거리거리며 새로운 내일의 자양분이 될 뿐이었다. 추워도 말이 없고, 더워도 군말 없이 버텨냈으며, 강풍에 자신의 팔다리가 부러져 나갈 때에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늘 그랬다. 소나무는 있는 듯 없는 듯 포도시 내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내곤 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고. 발버둥치지 말고 가볍게 흔들리지 말며 바람 부는 대로, 햇살 닿는 대로 하늘의 뜻을 벗 삼아 살라고 한다. 오늘따라 비에 젖는 솔숲이 맑고 향기로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나도 번잡한 일상, 누추한 욕망의 옷을 벗고 이곳에서 한그루 나무처럼 살고 싶다.

유치원생들이 수목원으로 소풍왔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모든 것이 신묘할 뿐이다.

스무나무라고 들어보았는지. 오리五里마다 한 그루씩 심는 나무는 오리나무, 이십리二十里에 한 그루씩 심는 나무를 스무나무라고 한다. 그만큼 귀한 나무였는데 지금은 산골짜기 마을에서나 이따금씩 발견될 뿐이다. 미원면 일대에는 스무나무가 종종 발견된다. 마을이 시작되는 입구와 마을 끝자락에 각각 한 그루씩 있거나 마을 한 가운데서 늠름한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100년도 훨씬 넘은 스무나무가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래서 청주 같은 외지를 떠날 때 사람들은 반드시 마을 입구의 스무나무 앞에서 두 손 모아 무사귀환을 빌었으며, 다녀 온 후에도 잘 다녀왔다고 신고식을 했다. 간혹 서낭당과 함께 있는 스무나무라도 만나게 되면 그 신령스러움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다 돌탑을 쌓고 사람 키보다 몇 배 더 높은 솟대를 세웠으며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마을 사람들은 봄에 스무나무 잎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들고, 시원치 않으면 흉년이 들어 풍요를 비는 주민들은 스무나무의 발아에 많은 축원을 보냈다.

어느 과부는 십 수년째 자식을 낳지 못하자 서낭당에서 100일기도를 하면 자식을, 그것도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해뜨기 전과 해가 지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간 하루에 두 번씩 기도를 했다. 물론 과부는 자식을 낳지 못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남자 아이를 얻어다 키웠지만 주민들에게 그 서낭당은 희망 같은 존재였다. 미원이라는 동네가 그런 곳이다. 햇살이 가득하고, 산림이 우거지고, 맑은 하천은 말없이 흐르고 그 사이로 크고 작은 길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들이 있고, 그 마을 사람들은 오직 논농사 밭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으니 소달구지 정겹고 풍요와 빈곤이 따로 없으며 자연과 인간 역시 둘이 아니다.

미동산수목원이 진달래꽃으로 붉게 물들었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미동산수목원 만큼 즐거운 소풍길이 또 있을까. 1속 1종의 희귀식물이며 천연기념물 220호로 지정된 물푸레나무과의 미선나무 군락지부터 단풍나무원, 무궁화원, 관목원, 수생·습지원, 환경생태원, 나비생태원 등 중부권의 향토자생식물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는 560여종 32만 그루의 식물이 뿜어내는 군무群舞를 원 없이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숲속을 사이로 길게 뻗은 냇가에는 계곡의 청소부 가재와 우물가의 청소부 물방개와 고목의 청소부 딱따구리가 합창하니 맨발로 걸으면 어떻고, 오르막길 내리막길 자전거에 마음 빼앗기면 어떠하며, 구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촐랑대면 또 어떠한가. 온 가족이, 혹은 친구와 연인들끼리 도시락을 까먹고 보물찾기나 장기자랑을 하면서 옛 추억을 스케치하는 모습도 오달지고 마뜩할 뿐이다. 피톤치드의 향기가 온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온가족이 함께 생활가구를 만드는 재미도 솔솔하다.

소풍길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체험은 짜릿하다. 아니 신묘하다. 이곳에서 온 가족이 생활가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왕이면 산속에서 갓 베어 온 물오른 나무로 만드는 것 보다 오래 묵은 목재를 활용하면 더 좋다. 이름하여 업사이클upcycle이다. 단순히 재활용하는 것을 리사이클recycle이라 한다면 업사이클은 버려진 물건에 예술을 불어넣어 가치를 상승시키는 작업을 일컫는다. 아빠는 톱질하고 엄마는 조립하며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재미있는 문양을 만든다. 어느 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가족의 사랑도 무르익는다. 반나절의 노동으로 의자를 만들고 책꽂이를 만들며 찻상도 완성할 수 있으니 생활미학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눈이 호사하니 고단했던 몸과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다시 발길을 돌려 면소재지에 있는 올갱이(민물다슬기)전문식당으로 달려가 허기진 배를 채운다. 섬진강에 재첩국이 있다면 충북에는 올갱이국이 그와 대적할만하다. 재첩국은 시원한 맛이 일품이지만 올갱이국은 담백하고 뒷맛이 개운한 게 특징이다. 올갱이를 삶은 뒤 속 알을 빼내 부추나 아욱과 함께 된장, 고추장, 마늘, 고춧가루 등 인공의 때가 묻지 않은 토속 양념을 넣어 만든 국이기 때문에 바닷가의 비릿함 대신 내륙만의 개운하고 은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올갱이를 만드는 비법은 집안의 내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올갱이를 5시간 정도 물에 담가 이물질을 토하게 하고 깨끗이 씻어 물때를 제거한 다음, 끓는 물에 넣고 삶아 건져올린 뒤 바늘로 속살을 빼놓는다. 올갱이 삶은 물은 잠시 놓아두면 찌꺼기가 가라앉는다. 맑은 물만 국물로 이용하고 찌꺼기는 버려야 한다. 이어 부추나 아욱을 물에 씻어 적당하게 썰어두고 올갱이 삶은 물과 쌀뜨물을 반반 섞어 토종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넣고 끓이면 부추(아욱)를 넣고 고춧가루, 다진파, 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올갱이에 밀가루를 묻혀서 풀어 놓은 달걀에 담갔다가 끓는 국에 넣고 20~30분 더 끓여 내면 진하고 담백한 맛, 거짓 없는 진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올갱이를 넣고 부친 파전이나 신선한 야채와 함께 무쳐 먹는 무침도 별미다.

꽃은 필 때도 예뻐야 하지만 질 때도 예뻐야 한다. 사람도 그러하다.

미원은 들과 내와 산과 계곡의 마을이다. 이 때문에 벼농사와 밭농사를 하는 농부들의 바쁜 일상은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계속된다. 햇살을 벗삼고 구순한 흙내음을 운명처럼 가슴에 품고 산다. 다시, 발걸음을 옥화대로 돌리니 봄햇살로 합창하는 숲이 짙은 풋내를 풍겼다. 개나리꽃과 진달래꽃이 무진장 피었다. 새들은 숲과 꽃 사이를 오가며 맑은 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들녘의 모든 꽃들이 나를 향해 유쾌한 미소를 던지니 나도 한 송이 꽃이다.

이처럼 여행이란 유목민의 아슬아슬한 삶에 음표를 찍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하는 매력이 있다. 여행이란 낯선 세상에 대한 발견이자 즐거움이며 짜릿한 체험이자 설렘이 아닐까. 수류화개. 물이 흐르니 꽃이 핀다는 뜻으로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썩게 마련이다. 그러니 늘 깨어있는 정신, 맑고 향기로운 마음으로 정진하면 당신에게도 아름다운 꽃이 필 것이다.

/ 글 변광섭(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충북미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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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