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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대청호

은빛 물결, 호사스러운 풍경을 품다

  • 웹출고시간2011.01.20 19:24:2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갈대숲이 석양에 물들고 있다.

차창 밖으로 하얀 억새물결이 장관이다. 눈부시게 맑고 고운 숲속에 무슨 내밀함이 있는지 바람에 흔들리니 마음까지 시리고 아프다. 억새밭 속으로 달려 들어가면 자잘자잘 소리와 햇살과 바람으로 가득하다. 그 몸부림에 새벽 물안개는 몸서리치고 동트는 시간이 되면 햇살과 물안개의 짝짓기는 은밀하다 못해 영롱하다. 이러해야 한다. 사람도, 자연도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저마다의 신비스러움과 미려함이 있어야 한다. 구질구질하고 눅눅한 삶을 접고 억새처럼, 물안개처럼 하얗고 신령스러워야 한다.

대청호를 여행할 때는 시간의 맛, 계절의 멋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물안개와 아침햇살이 합궁하는 신령스러움을 즐기려면 당연히 이른 아침이 좋을 것이다. 햇살이 호수에 낙수하면서 부서지는 찬란한 광채를 만끽하려면 한낮이 으뜸이고 석양과 호수가 은밀하게 연애하는 풍경은 단연 해질녘이 좋겠다. 연인과의 데이트는 꽃피는 봄날에, 호젓하게 낭만의 노래를 부르려면 붉게 물든 가을이 좋다.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으면 작두산을 오를 것이고, 오붓한 시간을 갖고 싶으면 청남대와 대청댐과 문의면소재지의 아기자기한 이야기 거리를 찾으면 좋다. 역사와 생태와 생명의 풍경으로 그윽한 곳이기 때문이다.

대청댐의 야경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대청호는 1980년 청원군 문의면 덕유리와 대덕구 미호동 사이의 금강본류를 가로막는 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다. 옥천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는 보은과 청원을 거처 이곳 대청댐에서 여울진 뒤 대전을 향해 물살 치는데 장장 72.8km의 저수면적을 갖고 있는 국내 세 번째로 큰 호수다. 대청호가 빚어낸 주변의 풍경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숨결을 고이 간직하고 있어 흥미롭다. 대청댐~현암사~문의문화재단지(작두산)~갈대숲~청남대를 잇는 청정호반길은 그야말로 환상이요, 절경이며, 계절마다 멀쩡한 사람 마음 시리게 하는 묘한 설렘이 있다.

봄길에는 개나리꽃이, 계곡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벚꽃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여름의 호반은 온통 초록이다. 호수에서부터 굽이굽이 접었다 폈다는 반복하는 드라이브코스와 계곡 모두 짙푸름으로 가득하니 오가는 사람의 마음도 푸르고 짙다. 이처럼 생기발랄하던 봄 여름의 수채화는 늦은 9월부터는 뚝뚝 떨어지는 단풍잎과 붉게 묽든 수묵화로 옷을 갈아입는데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답다. 갈대는 바스락거리고 새벽 물안개는 낮은 자세로 하늘 향해 군무를 펼친다. 순간 내 마음도 숙연해진다. 물결이 햇살과 어울려 눈부시다 못해 찬연하니 생명이 잉태하는 순간이요, 물살이 춤추는 시간이며, 추억이 무르익는 내밀함이다. 갈대밭 위로 비상하는 기러기 떼를 보면서 자유와 꿈을, 기약없는 내일을 노래한다. 시간은 유수와 같다. 봄 여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이곳은 적막강산이다. 눈발 날리고 산 정산이 하얀 솜사탕으로 가득할 즈음이면 새파랗게 질려있던 호수도 고요하다. 아득하고 가없는 산과 호수가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드라이브를 잠시 멈추고 현암사를 올라가 보자. 구룡산 자락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깃든 현암사는 백제 대 창건된 절이다.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헐떡거리던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암자에 잠시 앉아서 호반을 조망하라.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가 바라보인다는 이유로 한 때 폐사위기를 맞기도 했을 정도로 호반과 청남대와 능선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절경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이, 이보다 더 통쾌한 시선이 있을까. 구름 사이로 핏빛 태양이 쏟아져 주련柱聯의 낡은 글씨와 무심한 풍경소리에 꽂힌다.

문화재마을 문의문화재단지에서 바라본 대청호는 소리없이 흔적없이 흐르고 또 흐르면서 새로운 물줄기를 만든다.

문의문화재단지는 대청댐 완공으로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를 한데 모은 곳이다. 조선 중기 문의현의 객사였던 문산관(충북도무형문화재 제49호)을 비롯해 옛 사대부 가옥과 민가, 주막 등 고건물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으며 그네, 장작가마 등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체험장도 있다. 와당박물관과 대청호미술관이 있어 문화향수를 달랠 수 있고 대청호환경미술제를 통해 선보였던 설치미술품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대청호반이 한 눈에 들어오는 상쾌함은 현암사의 그것과 또 다른 맛이 있다. 문의면 소재지에는 깔끔한 한정식집과 매운탕집이 유명하다. 한지작가 이종국씨가 운영하는 마블갤러리에서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라고 하는 한지의 미학을 즐겨도 좋다. 문의면 소재지에도 5일장이 열린다. 1일과 6일에 문 여는 5일장에는 인근의 농민들이 거짓 없이 농사지은 마늘과 버섯과 고추가 인기다. 대전과 청주에서도 발길이 이어지니 때묻지 않은 자연의 숨결을 간직하고 싶은 인간의 염원이 간절하고 곡진할 뿐이다.

청남대 가는 길의 가을풍경이 오방색으로 물들었다.

청남대로 들어가는 길은 밀림의 숲이요, 눈부신 생명의 숲이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난 호반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짜릿하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하면 좋겠다. 낯선 사람이라도 만나면 금방 마음이 끌릴 것 같은 신령스러움까지 느껴진다. 1983년 전두환 대통령 때 만들어진 청남대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사용했던 별장이자 은밀한 권력의 공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2003년 4월 18일에 충북도로 이관됐으며, 기존의 건물과 정원을 그대로 보존하고 하늘정원 호반산책로 음악분수 습지생태원 대통령광장 등이 새로 조성되었다. 시청률 50%라는 기염을 토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를 비롯해 소지섭 주연의 <카인과 아벨> 등 드라마와 영화촬영지로도 인기다. 그간 다녀간 방문객만도 500만 명에 달한다.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며 대청댐 수몰민의 아픔과 역대 대통령들의 통치철학과 드라마의 스토리와 흘러간 역사에 귀 기울이면 어떨까. 아니면 정성스레 담은 도시락을 펼쳐놓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맑은 햇살을 품으며 책을 읽어도 좋겠다.

푸른 호수를 바라보는 마음이 한유롭다.

이곳은 세월의 길이 강물과 함께 쉼 없이 굽이친다. 강물은 깊고 느리고 넓은데 내 마음은 좁고 약하다. 강물은 합치되 부서지지 않고 싸우거나 다투지 아니한다. 강물은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더 큰 물줄기를 따라 흐르고 또 흐르면서 새로운 물줄기를 만든다. 인간들의 삶만 욕망으로 덧칠되어 있고 어수선하며 막막할 뿐이다. 하여, 산하는 출렁이며 흘러가는데 내 마음만 정처 없다. 오늘따라 그 흐름의 숨결이 내 마음을 적시니 시리고 아플 뿐이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가.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고,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청남대에서 바라보니 작두산과 문화재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은 수직의 미학이고 강은 수평의 낙원이다. 강물은 흐르는데 저 곳의 세월은 흐르지 않는다. 나는 강의 깊이를 알 수 없다. 내 마음속도 알 수 없다. 호수를 바라보며 무념무상에 젖는다. 내 마음도 적막하고 한유롭다.

/ 글 변광섭(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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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