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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선병국가옥

한옥의 DNA, 우리의 멋과 향을 만나다

  • 웹출고시간2011.05.12 18:42:0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꽃이 피고 나비가 춤을 추니 5월은 생명이 합창하는 계절이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작열하게 내리쬐는 태양처럼, 몸과 마음을 깨우는 짙푸른 신록처럼 그렇게 청춘을 보내고 싶은 5월이다. 해는 길어지고 녹음이 우거질수록 산 그림자는 짙어만 가며 적막강산에 흰 구름이 스르르 치마 벗듯 넘나드는 계절이 온 것이다.

여름 햇살은 시원한 바람과 만나야 하고, 이름이 있건 없건 향기 머금은 꽃들은 꿀벌을 만나야 하며, 지나가던 길손은 막걸리 한잔의 후덕한 인심과 만나야 하고, 밭을 갈던 늙은 소는 싱그러운 쇠꼴을 만나야 에너지가 생기며, 콘크리트 도회의 척박한 삶에는 옛 추억과 느림의 미학이 있어야 사람 사는 맛이 생긴다.

바쁠수록 쉬어가고 스스로의 아집과 자만에 고립돼 있을 때는 일상의 탈출이 필요하다. 온실의 화초는 건강한 햇살을 만나야 싱그러운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마치, 이 땅의 오래된 소나무는 끊임없이 빛과 바람, 비와 눈보라에 단련되면서 늘 낭창낭창한 기운으로 가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한옥의 백미는 낮고 두터운 담장이며 담장에서 운명처럼 살아가는 담쟁이가 아닐까.

지난 주말, 시골집에 잠시 들렀을 때 우리 집은 물론이고 아래윗집을 오가며 지붕과 처마 밑을 흩어보았다.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얘기에 매년 찾아오던 제비 소식이 궁금해서다. 9월 9일 중양절에 초정리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꿈과 소망을 싣고 강남으로 떠났던 제비는 이듬해 3월 3일 삼짇날 돌아왔다. 제비는 지난해 살림을 차리고 생활했던 바로 그 둥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지지배배' 우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면 미끈한 몸매와 날렵한 곡선 비행을 자랑하던 그 제비가 둥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대충 살아가는 누더기 같은 인생이 아니라 자신들의 터전을 꼼꼼히 점검하고 보수하면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제비는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대고 쟁기질과 써레질을 할 때 수직하강한 뒤 볏짚과 진흙을 한 잎씩 물고 힘찬 날개짓으로 솟아오른다. 때로는 송사리 같은 물고기를 낚아채기도 하는데 그 때의 순발력과 공중묘기는 농부들에게, 어린 아이들에게 정겨운 휴식이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건져 올린 볏짚과 진흙은 제비집을 보수하고 다듬는데 쓰여진다. 신비로운 것은 제비의 입안에서 나오는 그 무엇 때문인지 논두렁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아담하고 정갈한 둥지를 만든다.

알을 품고 어린 새끼를 낳게 되면 제비는 더욱 분주해진다. 새끼들을 위해 벌레를 물어다 줘야 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느라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한 여름 땡볕으로 가득하던 어느 날, 처마 밑의 제비집에 낯선 손님이 침입했다. 어린 소년의 팔뚝보다 더 굵고 큰 구렁이가 둥지에서 어미를 기다리며 재재거리던 새끼들을 속절없이 삼켜버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엄청난 사건에 소년은 경악을 했고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을 망하게 할 놈"이라며 지개 작대기로 구렁이 목을 졸라 죽였다. 구렁이 밥이 돼 버린 제비새끼의 운명과 자식의 죽음을 멀리서 울부짖으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어미새의 분통함, 그리고 스쳐가는 작은 일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시리고 아팠던 사건을 지켜본 어린 소년의 마음을 아는지 초정리의 대자연은 몇날 며칠 동안 떨고 있었다.

제비는 곡식의 낟알을 먹지 않고 농사에 해로운 벌레들만 잡아먹었다. 새끼를 많이 낳으면 자손이 번성할 징조라고 즐거워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던 제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제비집도 흔적조차 없었다. 언제부터 찾아오지 않았는지, 그 사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없다. 그저 논농사 밭농사에 농약을 많이 쓰다 보니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건물들도 현대식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구름처럼 떠돌 뿐이다.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곳에서 사는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오염된 세파를 견디지 못해, 후덕한 농심조차 만날 수 없어 제비가 발길을 돌렸는데도 우리는 회색도시에서 희희낙락할 수 있는 것인가. 아름답고 정갈했던 시골풍경, 넉넉한 마음과 행복했던 모습으로 가득했던 그 옛날의 추억을 기억하고 회복하지 않는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아직 우리가 가야 할 초록 들길은 아득할 뿐이다.

햇살이 파도치는 호수에도 봄이 무르익고 있다.

속리산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고 달려온 물줄기가 유난히 맑고 알차다. 그 물줄기를 따라 하천에 버들강아지가 춤을 춘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잎들이 빛을 튕겨내고 그 빛들은 물살과 마주치는 게 여유롭고 마뜩하다. 잎들이 흔들리면 물 위의 빛들도 함께 흔들리고, 작은 개울물이 물결치면 햇살은 자지러지듯 온 몸을 부르르 떤다. 그렇다. 빛들은 온 몸을 다해 바람과 부딪히고 부서져야만 다시 태어난다. 물결치고 흔들리며 햇살이 튕겨져 나오는 순간을 보면서 바람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쏟아지는 바람과 햇살 속에서 맑고 편안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흔들리는 왕버들 잎을 통해 저것들의 눈부심과 찬연한 색깔을 보았다. 선병국가옥 입구에 있는 냇가에서 발견한 자연의 미학이다.

선병국 가옥 입구의 소나무 숲. 일명 솔밭이다.

한옥을 이루는 재료는 흙 나무 종이가 기본이다. 이것들을 장인의 기예로 다듬고 바람과 햇살같은 천지음양의 기운을 넣어 만든다. 대자연을 한 채의 집으로 옮겨 놓았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한옥을 그리워하고 궁여지책으로 한옥아파트를 짓겠다며 아우성이고 전주나 안동 같은 곳에서 고택체험을 즐기려는 것도 자연의 숨결과 장인의 미세한 떨림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서민들의 집은 황토 흙에 볏짚을 썰어 버무린 흙벽돌로 지었다. 집안 습도 조절과 항균 및 탈취작용에 황토보다 효과적인 게 없었다. 흙벽돌을 쌓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덧바른 뒤 한지도배를 했다. 한지는 그 쓰임이 오달지게 많았다. 창호지로 쓰면 방안에서 햇살과 달빛을 그대로 담을 수 있고 자연채광의 효과까지 있었다. 어머니는 매년 여름이면 갖가지 문양이 새겨진 창호문에 한지를 바른 뒤 봉숭아 잎을 따서 붙이곤 했다.

ⓒ 강호생
한옥의 위엄은 기와에서 찾을 수 있다. 건물의 경관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이엉으로 인 초가집을 새로 단장할 때나 한옥에 기와를 입힐 때는 항상 동네 사람 모두가 힘을 모았다. 일종의 두레와 같은 것이다. 기와를 올릴 대에는 기와를 전문으로 하는 제와장製瓦匠의 자문을 받기도 했는데 빗물이나 습기가 새어들지 않도록 하고 목재의 부식을 막을 수 있도록 꼼꼼하게 씌어야 했기 때문이다. 찰진 진흙으로 된 점토를 물과 반죽하여 나무로 만든 틀에 넣고 틀의 외부에 마포나 무명을 깔고 반죽한 진흙을 다져 점토판 위에다 씌어 방망이 같은 판으로 두들겨 말렸다. 그리고 건조된 기와를 가마에서 1,000도 이상의 높은 온도로 구워냈다. 암키와와 수키와가 서로 짝을 맞춰야 하고 양쪽에는 용맹스런 치미·尾를 세워 귀신이나 액운을 물리쳤다. 굴뚝과 장독대, 우물과 외양간을 차례로 만들면서 집이 완성되었다.

한옥이야말로 사람들의 온기와 사랑, 그들의 열정과 지혜, 삶과 문화의 산물이다. 조촐하고 의젓하며 한국의 자연풍광을 닮았다. 물론 한옥이라고 다 똑같지 않고 집안의 내력과 고단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는 희망의 끈, 그리고 그들만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몸속에는 철학적이고 과학적이며 생활미학을 담고 있는 한옥 DNA를 품고 있다.

선병국 가옥의 풍경은 한적하고 고요하다.

보은군 외속리면 하계리의 선병국 가옥은 1919∼1921년 사이에 지어졌다. 전통적 건축기법에서 벗어나서, 건물의 칸이나 높이 등을 크게 하는 경향으로 변화를 보이던 시기의 대표적 건물이다. 99칸의 기와집과 낮은 돌담과 숨쉬는 옹기와 아름드리 소나무숲과 오래된 감나무가 나그네를 반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골기와는 투명하며 고요하다. 용마루 선은 처녀의 가슴처럼 부풀어 오르고 부드러웠다. 그러면서도 처마 끝은 그 시선이 삼엄하고 산과 하늘을 찌르고 있었으니 100년의 세월이 삿되지 않았던 것 같다.

/글 변광섭(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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