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1.04.28 18:06:5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춤추는 버들강아지, 물결치는 호수의 풍경 모두 봄날의 풍경화다.

사람마다 꽃을 보는 시각과 기호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 땅의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찾으라면 들판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가 으뜸이라는 생각을 한다. 애써 누구를 위해 피어나거나 치장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보일 듯 말 듯, 그렇지만 작고 오종종 예쁜 꽃잎을 보면서 맑고 향기로움에 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따금 야생화 군락이라도 만나면 처녀들이 모여앉아 수다를 떨면서 까르르 웃어대는 것처럼 햇살에 난반사 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현기증이 날 정도다. 어둠 속에서도, 무성한 잡초에 파묻혀서도 군말이 없다. 사람들의 이기에 짓밟히고 짐승들의 똥에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살아있는 것이 희망이고 축복으로 생각한다. 구린내 나는 인간이 어찌 들판의 야생화 마음을 읽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란 본래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속성을 갖고 있어 맘에 들지 않으며 등을 돌리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자잘한 감정조차도 지우려한다. 가까운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부부지간에도 꼴보기 싫다며 애써 외면하려 한다. 그런데 꽃들은 항상 내게 맑은 미소를 머금는다. 혹시나 싶어 돌아서서 보고 또 봐도 내게 유쾌한 미소와 기쁨을 준다. 지천의 수많은 꽃들은 단 한 번도 내게 상처를 준 적이 없다. 오직 인간만이 세상의 뭍 생명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와 아픔을 줄 뿐이다.

계산리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오래된 돌담과 옹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말을 이용해 온 가족이 가덕으로 소풍 다녀왔다. 고은삼거리에서 계산리, 인차리와 가덕공원묘지를 지나 행정리까지 자전거 여행을 한 것이다. 이승을 떠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공원묘지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생과 사의 좁은 골목길을 달리면서 상여가 나가던 옛 추억을 떠올렸다. 40년 전, 할머니의 상여는 작지만 화려했다. 상여를 장식한 수많은 목인들과 꼭두닭, 그리고 오방색 천으로 가득한 만장기가 할머니의 가는 길을 동행하는 길동무 역할을 했다. 꼭두닭은 극락왕생의 인도자이자 망자를 지켜주는 동물로 여겨 상여에 앞뒤와 좌우측에 반드시 꼭두닭을 얹었다. 우리 조상들은 닭을 다섯 가지 덕을 지닌 동물로 여겼다. 닭 벼슬은 문文, 발톱은 무武를 나타냈으며,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수탉은 용勇, 먹이를 보고 동료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춰 울어서 새벽을 알리는 것은 신信을 의미했다. 그날 당신의 떠나심을 슬퍼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노제를 지내느라 해질녘까지 장례의식이 진행되었다.

ⓒ 강호생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진달래꽃이 만개한 산길을 따라 숨을 헐떡이며 언덕 너머를 향해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다리 난간에 사람들이 모여 목을 길게 빼고 웅성거리는 모습이 신기해 가던 길을 멈추었다. 맑은 물과 고운 돌 틈 사이로 크고 작은 버들치가 뛰어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빵조각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고 그 때마다 물고기들이 먹잇감을 향해 몰려왔다 흩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작은 계곡이 붉게 물결친다.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계곡이니 망정이지 호숫가 같으면 물속의 포식자 배스에게 몰살됐을 것"이라며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진다.

한반도의 토종을 말살하는 것이 어디 배스뿐이던가. 황소개구리는 휴전선 비무장지대까지 올라가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으며 미국산 붉은거북이와 뉴트리아는 습지나 하천을 오가면서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또한 빗자루국화와 미국가막사리는 한반도 곳곳에서 토착식물의 생육에 피해를 주고 있으며 사향쥐라는 동물도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이 중 배스는 70년대 초에 식용으로 들여오면서 강과 호수를 장악하기 시작했는데 살아있는 것만 잡아먹는 특성을 갖고 있다. 3년만 돼도 30cm나 되고 최대 1m까지 자랄 뿐 아니라 한 번에 2만개의 알을 낳는데 생존율이 90%나 된다. 수컷은 치어가 먹이를 사냥할 수 있을 때까지 몰고 다니며 보호하기 때문에 생존율이 높은 것이다. 게다가 육식성인 배스는 동면을 하지 않아 겨울철 어종인 빙어와 새우마저 먹잇감이 되고 붕어는 물론이고 물오리까지 잡아먹는 등 식욕이 왕성하다. 이 때문에 배스가 국내 호수를 점유하고 있는 비율이 80%를 넘고 있으니 이미 토종 물고기는 씨가 말랐다. 낚시꾼들은 짜릿한 손맛을 못 잊어 배스 사냥에 나서지만 별 맛이 없다며 잡자마자 다시 방류한다. 그러니 낚시만으로 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배스를 박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수자원을 보호하려는 농림수산식품부의 내수면 어업법과 토종 동식물을 보호하려는 환경부의 이해관계가 대립되면서 근원적인 처방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예쁘게 가꾼 '신철네집' 처마밑의 풍경. 바람과 햇살과 은밀한 짝짓기가 진행 중이다.

가덕면소재지에서 공원묘지 쪽으로 골목길 깊숙이 자리 잡은 '신철네집' 한신철씨의 노력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작살을 개발하고 물속에 뛰어 들어가 배스를 잡는데 반나절에 100마리 이상을 포획한다. 물속에서 배스를 유인하는 기술과 손놀림이 날렵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더욱 주목받는 것은 배스를 이용해 찜, 회, 지리, 내장복음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면서 사람들로부터 쏘가리를 능가하는 최고의 민물고기 맛이라며 찬사를 받고 있다. 횟감으로 먹을 때는 맛이 달고 향기는 흐릿하다. 씹히는 질감은 가볍고 뒷맛 또한 투명하다.

가덕면소재지 하천변에 수십 년 된 막걸리공장이 있는데 인근에서 제일 맛있기로 소문났다. 지금이야 구경조차 할 수 없겠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술 빚는 시골집이 많았다. 술맛은 발효 미생물인 효모균을 배양하는 솜씨, 누룩과 고두밥을 잘 버무려 내는 기술과 정성, 맑은 물에 따라 결정된다. 어머니는 고두밥을 찧고 누룩과 함께 버무린 뒤 항아리에 담아 이틀정도 밀봉시켜 미생물을 배양시켰다. 미생물이 잘 자랐는지는 어머니가 직접 독 안으로 코를 집어넣고 향을 맡는 것으로 확인했는데 이 때 미세한 후각과 청각, 시각까지 총동원 된다. 그리고는 물을 넣고 한약재를 섞은 덧밥을 넣은 뒤 사랑방에서 며칠을 묵으면 술맛을 볼 수 있었다. 한약재는 모두 인근의 들녘에서, 야산에서 틈틈이 거둬들인 것만을 사용했다. 매실 산머루 뽕열매 산수유 석류 오미자 황기 황정 참당귀 토사자 한련초 일당귀 잔대 음양곽 인삼 도라지 산약 구기자 구절초 대추 더덕 영지 진달래 씀바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말렸다가 떡에 넣어 먹기도 했으며, 술을 빚어먹기도 하는 등 이 땅의 식물들은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술이 익을 즈음이면 부산하게 움직이는 발효균의 미세한 소리와 은은한 향이 집안에 가득했다. 술이 제대로 숙성했는지는 코끝과 두 귀로 느낄 수 있다. 이따금 목젖을 축이면서 맛을 보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술맛은 마음으로, 가슴으로 느껴야한다"며 술독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어 용수를 집어넣고 하얀 사발에 술을 건저올린 뒤 한 모금 마시고는 온 몸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술에 대한, 첫 경험에 대한 경배의 순간이랄까. 어머니는 그렇게 순결한 마음으로 술을 빚으셨다.

계산리의 5층석탑. 석공의 땀과 기예와 사람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는지 고요하다

계산리 5층석탑에서 바라보는 피반령골 밤하늘의 어둠은 깊고 별들은 가깝다. 석탑은 떠도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고, 촘촘한 별들은 깊고 외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반딧불이의 부수러기처럼 숲속과 계곡과 돌담과 기와지붕 위를 자유롭게 노닐고 있다. 바람이 풀잎을 흔들면 저것들은 맹렬하게 날개짓하며 빛을 만드느라 호들갑이다. 계산리 일원의 산길, 들길, 오솔길 모두 아름답다. 단정하게 옷을 갈아입은 골목길을 벗삼아 걸으며 봄날의 추억을 만들며 한유롭게 거닐면 좋다. 이따금 낯선 시골집 풍경을 까치발로 훔쳐보면 어떨까. 구릿빛 풍경이 밀려올 것이다.

지금, 대자연에 귀를 기울여보자. 생태계 파괴로 신음하고 있는 이 땅이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잃어버린 시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지 곱씹을 일이다. 지는 노을 속에 가을빛이 타들어간다. 새삼 귀로를 재촉하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이토록 찬연한 대자연을 지켜내야 하는 우리의 일상은 멀고도 험하기 때문이다.

/글 변광섭(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충북미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