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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무심천

번잡한 마음은 강물에 실려보내고
벚꽃의 향기로움으로 여백을 채우다

  • 웹출고시간2011.03.24 15:11:1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무심천의 장관은 단연 만개한 벚꽃이다. 기대하시라. 지금 무심천은 꽃망을 터뜨릴 채비가 모두 끝났다.

ⓒ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청주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시원스레 뚫린 가로수길의 인상을 오래 간직한다. 봄날에는 연록의 새 순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고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이 장관을 이룬다. 가을에는 흩날리는 낙엽을 뚫고 달리는 기분 삼삼하며 겨울의 하얀 눈꽃은 누구나 시인의 마음을 갖게 한다. 하여 세상 사람들은 청주를 푸른 도시, 맑은 고을로 기억한다.

가로수길의 신록은 수줍고 더디며 깊고 느리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반짝인다. 길 밖의 바람과 햇살과 구름을 안으로 안으로 모이고 조여 온다. 안의 그것이 밖으로 밖으로 뻗어나가는 소나무 숲과는 다른 내밀함이 있다. 오늘따라 파르르 떠는 잎새가 더욱 빛난다. 달리는 차창에 마른 잎새 떨어진다. 무량하다.

ⓒ 강호생(충북미술협회장)
가로수길을 지나 시내 한 복판으로 달려오면 무심천이 이방인을 반긴다. 무심천의 물줄기 역시 길고 느리며 수줍고 더디다. 이 동네 사람들의 말도 느리고 순하고 그 끝이 느슨하게 열려 있는데 물줄기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자연이 사람을 닮는 것인지, 사람이 자연을 따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크고 빠르게 출렁거리는 이웃의 물줄기와는 분명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심지어는 멀리서 타오르던 빛들도 가까이 오면 유순해지고 거친 비바람도 가던 길을 멈추곤 했으니 사람의 길, 물의 길, 자연의 길 모두 알 수 없는 길이다.

문의와 가덕의 산과 계곡과 들에서 작은 물줄기가 만나 큰 물줄기를 이루었고, 이 물은 청주의 심장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또 흐르고 있었다. 봄에는 대지의 기운이 스르륵 달려오고 여름에는 초록의 생명으로 깃들고 가을에는 벼 익는 향기가 끼쳐왔고 겨울에서 적막강산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넘쳐났다. 무심천은 항상 말없이, 그렇지만 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이를 두고 정중동靜中動이라 하던가.

무심천의 밤풍경은 문명이 낳은 잔설같다. 도시의 이야기로 반짝이고 있다.

ⓒ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이 물줄기를 무심천이라고 불렀다. 어둠에서 갓 깨어난 산봉우리와 도시의 회색건물들이 물에 비쳤고,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계곡을 따라 달려온 골짜기의 비릿함이 아침안개와 함께 새벽길을 걷는 방랑자의 심장을 후려 파곤 했다. 갈대숲과 물풀 속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날개를 퍼덕거리고 이따금 물길이 만나 여울지는 곳에서는 속물과 흘러들어 온 물이 합류하고 합궁하느라 거세게 흔들리며 물살치기도 했다. 때로는 하얀 물거품을 품어내며 물소리도 바람소리도 아닌 신령스러운 춤사위를 선보였는데 격랑의 시간을 보낸 그 속에는 가물치 붕어 같은 물고기들과 쉬리 송사리 다슬기 같은 생명들이 숨어 있었다. 살겠다고 바동거리는 것은 사람이나 물고기나 똑 같다. 저녁이면 석양의 붉은 노을이 강의 흐름을 조이고 녹이고 품고 안는다. 때로는 붉은 노을이 강물과 허공을 오가는 데 그 모습이 아득히 깊어 쏟아지는 햇살 같고 내려앉는 어둠 같으며 흩어지는 소리 같았다. 음악의 나라 같고, 춤추는 잔치의 마당 같고, 즐거운 소풍길 같으며, 질기고 질긴 인생의 노정 같기도 한 것이다. 문득 무심천을 한유롭게 걷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사람의 길과 자동차의 길이 뱀허리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동트는 시간부터 해지는 순간까지 차들의 굉음과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산하다. 마른 목젖 위로 늘어진 저승꽃이 번진 노인은 남은 날이 많지 않음에도 이승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걷고 또 걷는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냇가와 풀숲을 오가며 햇살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까불거린다. 처녀총각은 사랑과 연정의 짝짓기를, 중년의 여인은 기름진 뱃살과 허벅지를 저주하며 달리는데 포개진 골에서 땀이 흥건하게 고였으니 비온 뒤의 습하고 비릿한 능선을 보는 듯하다. 자전거를 타고 하천을 달리는 사람들 모습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따금 바쁜 일상을 접고 지난 시간을 낚으려 안간힘 쓰는 강태공에게 눈길이 간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비루한 마음을 토하고 자연을 벗하며 한 많은 이야기를 지리고 또 지린다.

던적스럽고 비루한 삶 속에서도 인간의 염원은 끝이 없다.

ⓒ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무심천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격정의 청주를 만날 수 있다. 새마을운동 당시 시가지 곳곳에 꽃을 심기위해 꽃묘장을 만든 것에서 유래된 꽃다리,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가장 큰 돌다리였으며 하천이 범람할 때마다 유실되고 복구되기를 반복하더니 하천의 유로가 변경되면서 육거리시장 어디쯤엔가 매몰돼 있다는 남석교, 풍물시장으로 70~80년대를 풍미했던 서문대교, 도시와 도시를 잇고 사람과 사람, 시간과 공간을 잇는 청주대교,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묻혀있는 오정목,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용화사, 구린내 나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와 쓰레기들이 모여 새로운 생명의 숲으로 변신한 문암매립장, 시간과 공간의 물줄기가 만나고 삶과 문화와 자연이 호흡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크고 거세고 빠른 몸짓으로 옷을 갈아입는 까치내, 정월대보름에 무심천을 중심으로 동東의 수줄과 서西의 암줄로 나누어 흥겨움을 나누고 화합을 다지며 한 해의 안녕을 기원했던 큰줄댕기기…. 이름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시련도 허다했으며 추억 역시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무심천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이 물줄기를 따라 달리면 우리들의 삶과 이야기를 품고 산맥을 넘어 큰 강줄기와 만날 것이다. 다시, 무심한 소리가 되어 산과 들을 건너고 넘어서 묵묵히 달리고 달려 서해의 어느 바닷가에 닿을 것이다. 억새가 바람과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더니 하얗게 풍화되고 있다. 언젠가는 나의 삶도 저러하리라. 새들은 멀리 날아가고 바람은 잠들었으며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고요하다. 도심의 네온사인이 물결치고 있어 유혹하는 문명과 사근거리는 세상 사람들의 애절함이 처량할 뿐이다. 다시, 풀숲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맑고 순결한 이슬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동트는 새벽이 오려는가 보다.

걷고 또 걷고…. 삶이란 이처럼 걷고 또 걷는 노정의 연속이 아닐까.

ⓒ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향해 달려 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항상 막막하고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일의 결과에 쫓기고 이웃에 쫓기며 시간에 쫓겨 오면서 끝내 나 자신의 욕심에 쫓기는 삶이었다. 그 쫓고 쫓김의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생명들에게 죄송한 말과 죄송한 일과 죄송한 상처를 입혔을까. 이러는 나 자신의 일에 스스로가 상처를 받고 가슴 시린 적이 수없이 많은데 이웃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잘못을 잉태했을까. 자연은 항상 명료하고 단순하고 분명하며 생명으로 가득한데 나는 늘 막막하고 불안하며 누추한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 오늘따라 무심천 바람이 맑고 청명하며 햇살은 눈부시다. 벚꽃이 피려는지 물오른 가지마다 꽃망울로 가득하다. 이곳은 쉼과 깨달음으로 일상의 여백을 채우는 곳. 번잡한 내 마음은 저 강물에 실려 보내고 벚꽃의 향기로움으로 충만하게 하리라.

글 변광섭(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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