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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법주사

사색과 치유와 역사의 공간에서 인생을 배운다

  • 웹출고시간2011.04.21 17:20:1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강호생
세상 사람들은 매번 봄을 기다리고 봄기운에 호들갑이다. 북풍한설은 길고 느리며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움츠리게 하지만 봄날에는 묘한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연둣빛 춤추는 들녘과 붉고 고운 꽃망울 터뜨리는 모습에 마음 빼앗기며 호시절 다 보내고 나면 우리에게 텅 빈 공허함만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정작 연둣빛의, 붉고 고운 꽃망울 속에 있는 내면의 기운을 느끼려 하지 않는다. 저것들은 비바람 눈보라 몰아치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땅속으로부터 봄채비를 해왔기 때문에 햇살 부서지는 봄날, 어김없이 각양각색의 풍경으로 내 곁에 와 있지 않은가.

하물며 우리는 왜 저 생명들의 내면을 읽으려 하지 않을까. 마음으로 보고 눈으로 읽고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 그래야 한다. 어둡고 긴 인고의 터널을 빠져 나온 뒤 초록으로 대지를 물들이듯이 우리도 그 생명의 질김과 절박함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봄이 왔음을 기뻐할 것이 아니라 봄이 주는 에너지를 느끼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삶을 스케치해야 한다.

바람과 햇살과 구름과 대자연의 모든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풍경소리는 언제나 맑고 향기롭다.

늦은 4월의 법주사 풍경은 온통 푸르다. 아니, 푸르다 못해 검푸르다. 장엄하다. 거대하다. 하늘과 맞닿은 기암절벽을 보라. 늠름하고 윤기 흐르는, 그리하여 진하고 진한 숲속 풍경화에 방점을 찍는 것 같은 순결함을 느낀다. 세상이 온통 꽃무덤으로 가득하더니 어느새 꽃비 흩날린다. 한 여름에는 초록의 숲으로 가득할 것이고, 10월이 오면 붉은 물감을 한 옷을 갈아입을 것이며 겨울이 오면 순백의 꽃가루가 지천으로 널려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솔잎 향 그윽하다. 아침이슬 머금은 풀잎과 크고 작은 잎새와 잎새들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햇살과 함께 긴 숨을 들이마셔야 비로소 서정을 느낀다. 들꽃 피고 산새 지저귀고, 초록으로 우거지고 불타는 낙엽 떨어지고, 이슬 얼어 서리되고 눈꽃이 만발하고, 비바람과 맑고 고운 햇님 달님 오가니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그곳을 오르고 걷다보면 예쁜 심성, 고운 살결을 가진 순백의 여인을 만날 수 있다. 무드 있고 거센 물살처럼 엉키고 부딪치며 끌어 않고 포옹한다. 누가 숲이고 누가 햇살이며 누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인 것을. 크고 작은 물줄기가 모여 거센 물살을 이르듯이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생명뿐이다. 둘이 합쳐지는 곳엔 언제나 뜨거운 사랑과 울림이 있듯이 자연과 내가 합궁을 하니 고요한 산천 자잘자잘 소란스럽다. 하늘과 땅이 만나고, 소낙비와 계곡물이 만나고, 바람과 나뭇잎이 만나고, 햇살과 그림자가 만나고, 너와 내가 만난다.

더러운 곳에서도 순결하게 피어나는 연꽃. 누구나 연꽃의 순정을 닮고 싶다.(왼쪽) 스님들의 도량은 이처럼 춤으로, 음악으로, 예술로 승화되기도 한다.

자연은 이토록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의 온 몸을 바쳐 헌화하고 정진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여자와 일과 자존심에 눈이 멀고 시도 때도 없이 상처받고 있으니 부끄럽다. 일컬어 절망의 시대, 어둠의 시대에 포위돼 있는 나는 온 몸이 화끈 달아오른다. 오늘 밤에는 낡은 일기장에 연필을 꾹꾹 눌러 반성문이라도 써야겠다.

어둠이 밀려오는 산사는 적요하다. 숲 속은 으레 고요하고 적막하며 소리 소문 없는 무상무념의 곳이던가. 하물며 숲 속의 사찰은 분위기부터 점잖은 자세니 적막강산일수밖에. 욕망의 오벨리스크를 세우고 허망한 꿈만 쫓던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절로 숙연해지고 인생의 덧없음과 난장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후회하며 엎드려 속죄를 한다.

쓸쓸하고 고적한 순간도 잠시, 갑자기 소리가 무성하다. 산새들이 울고 시냇물이 울고 곤충들이 울고 바람마저 울면 숲속은 온통 울부짓는 소리다. 이 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살아있음의 징표로 수굴~ 수굴~ 소리에 소리가 꼬리를 문다. 번개치고 천둥 비바람이라도 시작되는 날이면 숲은 잔치마당이다. 소리의 아우성 속에서 빛나는 이름 모를 스님의 목탁소리. 마음의 일이란 정처 없고 덧없으니 하산할 때는 이곳에다 번잡한 마음을 비우라 한다.

호서 제일가람 법주사는 신라 진흥완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한 절이다. 그 오랜 세월만큼이나 이야기 거리도 많다. 불법을 구하러 천축으로 건너간 의신이 그 곳에서 경전을 얻어 귀국한 뒤 속리산으로 들어가 법주사를 창건하였는데, 법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절이라 하여 법주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에는 국보 5호인 쌍사자석등, 국보 55호인 팔상전, 국보 64호인 석연지와 보물로 지정된 사천왕석등,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 대웅보전, 원통보전 등 국보 3점과 보물 5점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법주사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의 법주사 풍경이다.

법주사를 찾는 방문객에게 사찰에 장식되어 있는 단청을 꼼꼼히 살필 것을 권고한다. 아름다운 여인을 완성하는 것이 화장이듯이 사찰의 백미는 단청이기 때문이다. 단청丹靑이란 목조건물이나 공예품, 조각품 등에 청·적·황·백·흑 등 다섯가지 색으로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넣어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단청은 건물이나 기물 등이 부식을 방지하고 재질의 조악성粗惡性을 은폐하며 종교 등 신앙적인 의례를 행할 때 이를 일반 잡기와 구분하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

단청은 불교나 유교가 성행하였던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일찍이 유행하였으나, 현재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는 곳은 한국뿐이다. 한국의 단청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불교의 수용과 함께 더욱 발전하였다. 단청을 하려면 우선 바탕에 청록색을 발라야 한다. 그 다음 바탕면에 도본圖本을 대고 분주머니를 두드리면 본에 있는 송곳 구멍으로 가루가 나와 문양이 그려진다. 여기에 청·적·황·백·흑의 오색을 칠해 완성한다.

법주사를 한 바퀴 둘러보았으니 허기진 배를 채워야겠다. 이왕이면 보기 좋고 먹기 좋으며 영양 만점인 음식을 골라야겠다. 보은의 대표 음식인 약초산채정식이다. 보은은 산이 깊고 땅의 기운이 정결해 온갖 기기묘묘한 약초가 많다. 이곳의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무공해로 손수 재배한 버섯과 채소류 등 무려 50여 가지가 한 상에 차려지는 정식은 속리산만의 별미다. 물론 음식이라면 단연 전라도가 으뜸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약초산채정식에 오르는 반찬들은 다른 지역의 평범한 산채정식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풍부하고 진귀한 것들이 많아 그 어떤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맛과 영양과 웰빙, 그리고 충청도의 훈훈한 인심까지 더하면 보약이 따로 없다. 한 젓가락씩 집어 꼭꼭 씹어 가며 향기를 음미하다 보면 천년을 넘게 살아온 법주사의 신이함을 느낄 수 있다. 산채나물의 여리고 촉촉한 맛, 담백한 국물이 입안을 적시는 된장국, 구수한 맛의 숭늉으로 마무리 하는 뒷가심…. 오늘 난 눈과 입과 마음 모두가 호사스럽다.

팔만대장경에 큰 산은 큰 덕이라고 했다. 가볍게 흔들리거나 상처받지 않고 곧은 자세로 늘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큰 산처럼 살아야 한다. 큰 산은 생명의 기운과 자연의 신비와 드높은 기상과 광활한 대자연의 큰마음을 갖고 있다. 철철이 새로운 멋과 맛과 향기로움을 준다. 그러니 자만하지 않고 좌절하지 말며 늘 푸른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큰 산처럼 말이다.

/글 변광섭(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충북미협회장),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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