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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오송

오송과거로 돌아갈까, 미래로 달려갈까
논·밭·하천·산으로 둘려 쌓여 생명의 기운 가득
KTX 분기역인 오송역 개통으로 '교통의 요지'

  • 웹출고시간2011.06.02 18:42:3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세상 사람들은 온 종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먹거리 역시 욕망의 그릇이다. 자연친화적이고 생기를 북돋울 수 있는 먹거리가 많은데도 기어이 살생과 이기의 주머니를 채우고야 만다. 계절에 맞는 영양식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자연과 호흡하고 상생할 수 있는 지혜의 곳간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봄날에는 쑥밭과 산나물이 제격이다. 논두렁 밭두렁 할 것 없이, 골목길이나 담장 밑 할 것 없이, 양지바른 곳이든 어둡고 칙칙한 두엄 밭이든 쑥이 지천으로 자란다. 그래서 봄날에는 쑥을 뜯어 국 끓여 먹고 떡을 해 먹었으며 바짝 말려 한약재로도 사용했다. 무를 채쳐서 참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멸치 다신 물을 넣고 육수를 만든 뒤 육수에 들깨가루를 걸러서 넣고 맛소금 하며 끓는 물에 쑥을 데쳐서 건져내 방방이로 찧고 다시 육수에 넣어 끓여내면 맛있는 쑥국을 먹을 수 있다. 쑥죽이나 쑥수제비 쑥전 쑥떡도 별미로 먹었는데 쑥 향이 입안에 가득하고 쑥의 기운이 몸 안을 따뜻한 온기로 감싸는 것 같아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옛 사람들은 앞동산 뒷동산에 널려 있는 꽃천지와 함께 살아왔다고 해고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봄날에는 동네 전체가 온통 붉고 노란 꽃들과 꽃향기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그 꽃으로 먹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먹을 수 없는 꽃은 개꽃, 식용으로 가능한 꽃은 참꽃이라 하며 꽃 이름 하나에도 해학과 의미를 담았다. 꽃으로 화전을 해 먹었는데 쫄깃하고 기름진 맛에 색깔 그대로 살아있는 예쁜 꽃잎과 꽃향기는 입과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술을 담아 먹을 때도 사용하고 튀겨 먹거나 나물을 무쳐 먹을 때도 사용했으며 떡가루에 고물을 얹을 때도 꽃을 이용 했다. 이는 특별한 맛과 향을 내는 것은 물론 떡가루 사이마다 층이 생겨 그 틈새로 김이 스며들어 떡이 잘 익도록 도와주는 선인들의 지혜의 산물이었다. 가을에는 알찬 곡식들로 가득하고 겨울철 장독대에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보낼 아름다운 인심이 숨쉬고 있었다.

보릿고개의 힘겨운 세월도, 밀가루 음식으로 전전긍긍해야 하는 고된 삶도 있었지만 계절별로 자연에 기대어 먹는 음식에는 수많은 미각과 후각, 청각과 시각들이 우리를 늘 깨어 있게 한다. 시원하고 담백하며, 아름답고 수더분하며, 사각사각 거리거나 아삭아삭 입에 씹히는 즐거움, 그리고 입맛도 챙기고 건강도 챙기며 사랑과 우정도 만들 수 있는 옛 사람들만의 노하우가 묻어 있었다. 버려지는 것 하나 없이, 자급자족하고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며 무병장수를 꿈꾸던 사람들의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오송역은 사람의 길이 아니라 문화의 길이기도 하다. 공연과 전시 등이 수시로 전개되고 있다.

오송 일원에는 이처럼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논과 밭과 하천과 호수와 산으로 둘려 쌓인 곳이니 먹을 걱정 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KTX 분기역인 오송역이 생겼으니 이 또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래전부터 풍요의 고장, 교통의 요지였으니 말이다. 청주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두 시간 넘게 달려야 하지만 오송역을 이용하면 4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시테크의 시대에 이 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겠는가. 남은 시간은 오송역 인근에서 아름다운 소풍을 즐기면 어떨까.

6월 초입의 햇살이 따사롭다. 크고 작은 옹기마다 고추장 된장 간장이 들숨 날숨을 한다. 동동주를 담았는지 술 익는 냄새가 코끝을 징하게 한다. 옹기 주둥이에 귀를 대니 뽀글뽀글 미생물의 신나는 짝짓기가 한창이다. 모두들 포근한 가을 햇살을 머금었다. 계절이 깊어갈수록, 여인의 손길이 깊을수록 맛도 익어가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알며 스스로 맛의 깊이를 더해가는 장독대의 미학, 우리는 그곳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발효과학을 만난다. 잘 익은 인생을 배우고 맛깔나게 사는 법을 배운다.

ⓒ 홍대기
옹기의 종류는 무려 250가지에 달한다. 고운 흙으로 만든 청자나 백자와는 달리 작은 알갱이가 섞여 있는 점토로 만들기 때문에 가마에서 소성될 때 점토가 녹으면서 미세한 구멍이 생긴다. 이곳에서 공기나 미생물, 효모 등이 드나들 수 있다고 해서 '숨쉬는 그릇'이라는 표현도 쓴다. 옹기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담고 있다. 시골의 장독대마다 다양한 형태의 옹기가 있으며 각종 발효식품을 저장하고 숙성하는 공간으로 애용해 왔다. 성주단지, 조상단지 등 우리의 소박한 토속신앙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옹기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독(운두가 높고 중배가 부르며 키가 큰 것), 항아리(위아래가 좁고 배가 부른 것), 중두리(독보다 조금 작고 배가 부른 것)등 그 명칭도 다양하다.

유수처럼 빠르게 스쳐가는 열차를 하릴없이 바라보며 다시 못 올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가슴에 담고, 승차권을 손에 쥐고 벤치에 앉아 무념무상에 빠지는 조촐한 기다림은 그것만으로도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호수에 늘어진 내 마음을 맡겨보자

오송역 인근에는 돌다리저수지와 공북저수지가 호젓하게 앉아있어 오는 손님 마다않고 가는 손님 붙잡지 않는다. 미호천을 따라 생태기행을 하는 재미도 솔솔하고 잠사박물관에서 5천년 잠사업의 역사를 한 눈에 엿보면 또 어떨까. 지금 검붉은 오디가 한창이니 어른 아니 할 것 없이 추억여행하면 좋겠다. 그리고 자연과 역사와 문화의 겸손한 지혜, 세월이 일러준 조화의 아름다움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봉산리의 옹기집을 방문하면 좋겠다. 200년이 넘은 가마를 운명처럼 지키고 있는 옹기장 박재완 선생(충북무형문화재 제12호)의 삶과 옹기의 미학을 만날 수 있다. 입자가 고운 점토질의 흙이 많은데다 인근에 소나무산이 있어 옹기공방 들어서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박씨는 7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물레에서부터 방망이, 수래, 도개, 근개, 물가죽 등 기구들은 모두 전통의 그것을 활용한다. 물론 가마 역시 전통장작가마를 쓰고 있다.

해뜨기 전부터 일어나 태림질을 한다. 바닥 부분이 완성되면 가래떡 모양의 떡가래로 벽을 쌓아올리는 세타림을 하고 물레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리면서 안근개와 바깥근개를 이용해 그릇벽을 일정한 두께로 만든다. 이어 그릇 어깨와 아가리를 만들고 목가새로 불필요한 곳을 잘라내며 물가죽으로 아가리 모양을 정돈한다. 모양이 완성된 옹기는 소나무 가지 그늘에서 1주일간 말리고 잿물을 입혀 다시 건조시킨 뒤 가마에 넣고 구운다. 선생은 1주일가량 계속되는 불 때기를 '불의 심판을 받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겉불과 속불이 만나고, 흙과 불과 물과 바람이 만나며, 도공의 순결한 마음이 만나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옹기 한 점이 나오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옹기의 미학과 자연의 숨결과 한 평생을 그렇게 살아 온 조화의 손, 처연한 이 땅의 생명을 만날 것이다.

구릿빛 도공의 손길과 흙의 숨결이 만나

대자연의 신비, 푸른 꿈결을 만들더니

겉 불과 속 불의 뜨거운 사투,

들숨과 날숨의 숨막히는 순간의 미학,

깊고 아득한 시간과의 끈질긴 인연,

아픔인지 희열인지 모를 소리와 하얗게 흘러내리는 눈물,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너는

불의 심판을 받았으니

소슬한 역사로 자연의 숨결로

오지그릇으로

옹골지게 피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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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