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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국립청주박물관

생명의 숲, 충북의 역사를 품다

  • 웹출고시간2011.08.18 17:07:5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국립청주박물관은 생명의 숲이다. 역사와 문화와 생태가 조화롭고, 사람의 이야기와 자연의 이야기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사계절 각기 다른 스토리를 지닌 이곳에서 덧없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자.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아침햇살에 가슴 설레는 솔잎향과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도 아름답다. 산정 높이 올라가 허기진 목젖을 적시는 약수 한모금은 온 몸을 스며들 듯 달고 맛있으며 내 마음을 이슬처럼 맑디맑게 해 준다. 그곳에서 바라본 푸른 하늘은 언제나 아름답고 신비롭다. 한겨울에도 저들은 봄의 교향악을 위한 내면의 세계를 준비한다. 흙과 바람과 물과 빛이 쉬지 않고 에너지로 충만할 때까지 깊고 느리게 자신의 삶을 스케치 한다.

우리는 생명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자연 속에서 구분할 수 있다. 썩은 나무에는 새가 앉지 않는다. 생명의 소리도 없다. 그렇지만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꽃향기가 함께 어우러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과 들을 좋아하고 오래된 골목길과 오솔길에서 서정을 즐긴다. 그곳에는 발 닿는 곳마다, 시선이 머무는 사물마다,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득하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이면 어김없이 쟁기로 밭을 갈았다. 소는 외양간에 있는 날보다 밭을 가는 시간이 더 많았다. 밭가는 소가 뒷걸음치는 것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오직 아버지의 채찍과 "이랴~ 이랴"하는 소리에 맞춰 일만 했다. 새싹이 돋는 언덕배기에서 염소가 풀을 뜯고 병아리가 재잘거린다. 개나리 진달래는 화사하게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고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어린 강아지도 신바람이다. 봄날에는 날짐승, 들짐승 할 것 없이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너무 아름다워 불꽃처럼 뛰어놀곤 했다.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우리의 어버이들이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오달지게 살아온 것도 생명력으로 가득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설날과 동지, 단오와 추석처럼 명절날에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여인네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맛깔스런 그것들을 하얀 그릇위에 정갈하게 담는다. 남자들은 준비된 음식을 하나하나 차례상에 올려놓고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족보책 표지위에 미리 써 둔 지방을 붙인다. 할아버지 적부터 꾸준하게 사랑받아 온 8폭짜리 병풍은 실용과 미를 겸비했다. 바람을 막고 칸막이 기능을 하는 파티션으로, 공간을 장식하는 오브제로 쓰이지만 명절이나 제삿날에는 의젓하고 기품 있어 보인다. 차례를 마치고 온 가족이 세배와 덕담을 나눈다. 그리고 어머니의 정성과 누룩이 함께 익은 술을 주고받는다. 맑은 물로 빚은 한 잔의 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 준다. 어린 시절, 시골 부뚜막에는 우리 가족 나이순으로 사기그릇과 방짜유기, 놋쇠그릇, 수저세트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광주리, 삼태기, 떡살판, 알록달록한 다포 등이 흙으로 빚은 벽면에 가득 걸려 있었다. 정갈한 음식에도, 그 음식을 담는 그릇에도, 오순도순 모여 그것들을 맛나게 먹는 우리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넘친다.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화사한 빛이 난다더니 그 시절, 우리들의 삶의 공간까지 건강하게 반짝인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어느 도공의 감성과 영혼이 깃든 찻사발 이나 한땀 한땀 정성과 사랑을 담은 조각보는 사람의 온기까지 느낄 수 있어 좋다. 이른 아침에 활짝 핀 잇꽃을 따서 물에 우려내고 비단에 염색하는 그 손길과 오색빛깔의 염색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다. 어느 목공의 거친 대패질과 눈썰미가 오랜 세월 빛과 벗하며 자라 온 나무를 만나면 장롱에서부터 책장 탁자 반닫이 찬탁 소반 같은 일상에 유용한 기물로 탄생되는데 그것들은 더 이상 잘려나간 자의 슬픔으로 남지 않는다. 목수의 기운찬 에너지가 나무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생명이 있고 곱디고운 향기로움으로 가득하다.


쇠를 녹이거나 두드려 형태를 만들 때는 천박하고 거추장스럽게 보이더니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금속공예품으로, 생활의 미학으로 탄생한다. 장인의 정밀한 눈썰미와 섬세한 손맛을 거쳐 문자 연화 박쥐 연꽃 등의 문양을 넣고 비취로 장식하고 조각 상감 육각 투각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머리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하는 비녀부터 몸을 꾸미는 반지, 귀걸이, 장도와 같은 일상을 빛낼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 되는 것이다. 이것들이 어느 집 장롱 속에 숨겨져 있거나 사용되지 않을 때는 일상의 누더기에 불과하다. 생명조차 느낄 수 없으며 쓸모없는 그 무엇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주인을 만나 요긴하게 제몫을 하는 순간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가치를 갖는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사계절 돌 틈 사이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소리, 비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고 부딪히는 갈대소리, 그 떨림에 함께 우는 문풍지소리, 한여름 무더위에 짝을 찾아 울부짖는 풀벌레 소리, 장독대 사이로 낮게 소리 없이 피어있는 채송화의 외로움도 모두가 아름답다. 자연 속에서 흔들리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들 소리를 어느 장인의 손끝으로 되살리며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노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이다. 줄을 뜯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거문고 가야금 해금, 바람을 따라 소리를 불러내는 피리 태평소, 금속이나 가죽을 두르려 심장의 고동을 뛰게 만드는 징 꽹과리 북 장고는 그것을 만드는 장인과 그것을 사용하는 명인이 있어야 제 맛이다. 오래된 좋은 나무에 정성을 담아 깊이 있는 음색을 되살려내는 열정, 그것을 우리의 귀에 착 감기게끔 아름다운 음을 만들고 소리 내는 명인의 재주,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때로는 흥겨운 삶으로, 때로는 애잔한 사랑으로, 때로는 우리 민족의 한 많은 혼으로 다가오는 우리들의 삶 모두 동반자다. 생명이란 참 오묘하고 변화무쌍한 것이다. 모든 생명의 존재에는 색과 향기, 그리고 생명의 숨소리가 있지만 단 한번도, 그 어떤 것도 똑같지 않다. 만날 때 마다 느낌과 감동, 이미지와 여운이 다르다. 대지미술가(Land art) 크리스토 부부는 "예술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것"이라고 했지만 생명이 있는 것은 영원하다.

그러고 보니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공예다. 공예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며 아름다운 쓰임이다. 공예는 살아있는 과학이자 철학이며 우리네 어머니의 솜씨와 정성이다. 공예는 통섭이자 융합이며 빛이며 소통이다. 공예는 맛있는 사랑이고 희망이며, 우정이고 자연의 소리다. 그리고 공예는 삶이란 무대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바로 당신이다.

국립청주박물관은 역사의 숲이다. 아니, 생명의 숲이다. 충북의 역사와 생명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 놓은 곳이다. 한국 건축을 세운 주춧돌 4인 중 한 사람인 김수근씨가 설계하면서 충북의 자연과 충북사람의 선비정신을 건축양식에 담았다. 깊고 느린, 낮고 두터운 건물의 형태가 그러하고 아름다운 정원과 돌계단이 그러하며 자박자박 걸으며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한유로움이 그러하다. 그리하여 이곳은 충북인의 삶과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충북지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으며 시시각각 대자연과 호흡하며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손을 뻗으면 상당산성이 내 품으로 달려올 것 같다. 이곳의 소나무는 푸른빛을 단 하루도 바꿔본 적이 없다. 하여 소나무는 언제 봐도 아름답고 그 기개 도한 우뚝하니 사람의 일도 이러해야 한다. 꽃들은 필 때와 질 때를 구분할 줄 안다. 때를 기다릴 줄도 알고 물러날 줄도 안다. 숲도 그러하다. 옷을 입을 때와 벗을 때를 가릴 줄 안다. 되나가나 벗고,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인간의 이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숲은 언제나 말이 없다. 오직 그 자태만을 보일 뿐이다. 그러니 상처받은 영혼들은 번잡한 도시에서 방황하지 말고 역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라. 그곳에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되묻고 삶의 가치를 찾아라. 새로운 생명의 이야기로 등목을 하라.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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