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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이거 완전 다이아몬드로군요?"

캠핑 장 갓길에 보도블록을 깔았다. 이제 막 끝내고 모래를 뿌렸는지 휙휙, 수많은 다이아몬드로 반짝이는 걸 보고 동무에게 물었다. 동무는 "뭐가요? 뭐가 다이아몬드 같아요?"라고 되묻는다. 진짜 다이아몬드처럼 화려했는데 뭘 그 정도에 호들갑이냐는 투다. 큰길에서 오솔길까지 황금빛 카펫을 즈려밟으니 다이아몬드 체험이 따로 없다.

가랑비 그친 언덕에 햇볕이 쏟아진다. 작열하는 태양이 빛을 산란하면 금모래 은모래가 물결처럼 띠처럼 출렁였으리. 여강나루 태양은 숨바꼭질 바쁘고 백사장은 보석의 파편 가득한 다이아몬드 뻘로 바뀌었을 텐데 오래전 4대 강 건설로 깡그리 파묻혔던 거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소중한 것을 놓친 듯 속상했으나 그래서 더욱 환상이다. 금모래 은모래가 물결치는 느낌이었으니까.

길섶에 진달래꽃이 웃음을 머금었다. 그 속에서 금모래 은모래가 콕콕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 듯하다. 누가 여주 강 아니랄까 봐 볼수록 신비로웠던 그 느낌 뭐라고 해야 하나? 금모래 은모래는 닉네임부터가 시적이다. 천릿길 남한강에서 빛의 축제가 참 아름다운데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여주강 백사장이 통째로 반짝일 때가 있었다니.

하필 왜 그 노래가 떠올랐는지 몰라.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 부르던 그 노래. 풍경이 하 예뻐 강변 살자 했겠지. 강변에서 엄마와 누나와 뒷문 밖 갈잎의 노래 듣고 싶다던 선율도 물결에 휩쓸렸다. 단출한 살림에도 금모래 은모래 반짝이는 한 행복했으리. 나는 얘기만 듣고도 뭉클한데 토박이들은 기억의 한 모퉁이가 떨어져 나갔을 테지.

알았으면 잰걸음에 왔을 것이다. 도자기 고을이라 꽃병을 산다고 몇 번 오기는 했지만 금모래 은모래는 까맣게 몰랐다. 특별히 금모래는 노을이 뜰 때만 반짝일 테지. 은모래는 볕 좋을 때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여주강 정도는 아니어도 환상적인데 금모래는 노을이 질 때만 빛났을 거다.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은 왠지 끌린다더니 여주 강변의 집들이 꿈속 같다. 노을은 강물을 끓이고 저녁별은 어둠을 비추었다. 똑같은 남한강 기슭의 우리 마을도 해거름이면 끼룩끼룩 물새가 울었다. 초록초록 나무까지도 붉게 물든다. 산새알처럼 물새알처럼 예쁘장했던 초가지붕이 아련 생각나는데, 다릿재 골짝에서 새앙재 가다 보면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볼수록 비슷한 강줄기에 노을까지 예쁜데 금모래 은모래는 없었다. 상류라서 너럭바위가 많았던 거다. 큰물이 지면 골짜기에서 떠내려온 돌이 여기저기 널렸다. 구멍이 뚫리거나 반달 모양으로 생긴 돌도 있다. 여주강 내려올 동안 자잘하게 부서지면서 금모래 은모래 되었을까. 수없이 깎이면서 명멸하는 다이아몬드처럼 그렇게.

강가에만 나가도 푸른 하늘에 바람까지 시원했으나 장마가 지면 나룻배도 띄우지 못했다. 며칠씩 퍼붓고 나면 느티나무 골까지 찰랑인다. 은하수처럼 드러난 물줄기가 어릴 때도 참 신기했다. 물난리가 난 줄도 모르고. 당연히 나룻배도 띄우지 못했다. 물이 빠질 동안 사람들은 십 리가 넘는 길을 돌아서 읍내를 다녔다. 여주강도 똑같이 범람했을 테니 둑을 쌓고 대비했을 법하다. 야외 캠핑장이 생기고 관광명소가 되었다. 가뭄이 들고 큰물이 져도 걱정은 덜었으나 금모래 은모래만큼은 무사하기를 빌었을 건데.

저기 모래알 중에는 아득히 고향에서 본 조약돌 파편도 있었을 거다. 고향의 강이 산굽이 물굽이 돌아 여강 나루까지 흘러오면서 금모래 은모래가 참 신기했는데 그럴 수가. 인근의 누군가도 엄마야 누나야 주인공처럼 물결 소리 잦아들 때마다 꿈속에 나타났을 테니 나까지 짠했다. 깡그리 묻히고도 남은 모래가 저리 반짝이는데 잃어버린 기억은 어디 가서 찾는담.

밤이면 이슥토록 별들의 축제에 고달픈 하루도 잊었으려나· 갑자기 추억에 젖는데 홰를 치며 날아드는 백로 한 마리. 그 뒤로 날개를 접는 또 다른 새들이 한 폭 절경이다. 해거름이면 강변은 금빛 베일로 덮이고 울어 예는 물새들 깃도 서쪽 하늘 걸렸다. 촉촉 젖는 날갯짓과 노을 속 잦아들던 태양도 우연히 서산마루였으리.

똑같은 풍경에 금모래 은모래만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도 괜히 짠한 이것도 그리움이었을까. 어주 강 물새도 알음알음 고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언제부턴가 자꾸 줄어든다는 말을 들었다. 갈 데가 마땅찮았으리. 추억만 해도 절실하지 않고 별이니 노을도 찬란하지 않다. 고단한 누군가의 꿈과 물새의 둥지를 찾아주기도 전에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까지 떠내려온단다. 어디쯤 가야 끝이 날는지.

파묻히기 전에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그래서 미완의 추억 하나 생겼다. 태양이 꽃을 물들인다면 본 적도 없는 여주 강도 인생 여울 촉촉 적셔 주리라. 나는 뭐 여주 태생도 아니고 전설 같은 금모래 은모래는 사라졌지만, 추억의 강은 매일 밤 꿈의 반경을 휘돌아 흐르겠지. 사르르 사르르 가랑비 소리와 함께.

여주는 그렇게 제2의 고향으로 태어났다. 아득히 세월의 끝자락에서 물이 아름다운 동네를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하다. 추억이 없는 인생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시든다. 내 고향의 강이든 여주 강이든 발원지는 추억이었던 것을.

조약돌 굴러다니던 고향의 강변도 목가적인 풍경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해거름이면 물새가 떼지어 날아들더니 어느 날 아파트가 들어섰다. 노을이 져도 풍경은 간 곳 없이 아파트와 도로만 썰렁하게 비친다. 강물은 슬펐던 거다. 살 동안 멀어진 것도 그런 식이었으리. 바쁘다 보면 놓쳐버리거나 이런저런 연유로 파묻히기도 하지만 진짜 소중한 것은 거기 들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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