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현대 인쇄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체험관이 문을 열었다. 청주시는 20일 운천동 고인쇄박물관 광장에서 한범덕 청주시장, 임기중 청주시의회 의장, 김종목 고인쇄박물관장, 지역 주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근현대 인쇄 전시관' 개관식을 가졌다. 청주시가 국비 등 45억원을 들여 완공한 '근현대 인쇄 전시관'은 고인쇄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면적 1518㎡ 규모로 상설 전시실과 영상실, 기획 전시실, 체험실, 북카페 등으로 꾸며졌다. 이곳에는 1910년을 전후해 사용됐던 각종 인쇄 장비와 물품, 인쇄물 등이 전시됐다. 시는 이날 근현대 인쇄 전시관 개관으로 지난 1992년 개관한 고인쇄박물관과 지난해 9월 문을 연 금속활자 주조 전수관을 연결하는 인쇄 3각 벨트를 완성했다. 근현대 인쇄 전시관은 개관을 기념해 오는 5월19일까지 '1894 갑오개혁의 꿈 : 근현대 인쇄출판 특별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 후기 출판 기관인 '박문국', '광인사'의 간행물을 비롯해 김소월의 '진달래꽃', 김동인의 '감자' 등 해방기까지의 간행자료 120여점이 선보인다. / 안순자기자 asj1322@hanmail.n
1973년 촬영된 청원군을 가로지르는 미호천에서 한 사내가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미호천은 음성군 음성읍 부용산에서 발원해 진천과 청원 등을 거쳐 무심천 등 지류를 합쳐 부강 서쪽에서 금강에 합류한다. 미호천 주변으로 도내 최대의 농업지역이 형성돼 있으 하천을 따라서 낙농업과 양잠업이 발달했다. 미호천은 금강 본류로 유입되는 지류들 가운데 유역면적이 가장 크고 연강수량도 1천200mm를 넘는 등 대청댐 하류의 유량확보나 수질관리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하천이다.
도내 일부 지방자치 단체장들의 치적 홍보가 도를 넘는 '자기 우상화' 수준이어서 빈축을 사고 있다. 19일 괴산군 등에 따르면 화암서원이 괴산읍 검승리로 이건(移建)한 이후 김문배 전 군수의 공덕비를 세워졌다. 당시 괴산지역 유림은 지난 2003~2006년 기간 동안 5억여원의 사업비를 들여 칠성면 송두리에 있던 화암서원을 괴강 건너편의 검승리 야산으로 이건했다. 이와 관련, 화암서원 이건은 혈세인 군비에 의한 것임에도 마치 김 전군수 개인의 지원 때문에 가능했던 것처럼 공덕비에 기록돼 있다. 화강암 오석 재질의 공덕비는 '김문배 괴산군수는 화암서원 이전신축과 향교서원 등 유교진흥에 업적을 많이 남긴 분이다'라고 시작한다.(편의상 한글로 표기) 그러나 비문 여러 곳에서 서원 이건사업과 전혀 무관한 개인을 우상화하는 표현이 다수 등장, 외지 방문객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비문 중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문배 군수는 도량과 능력이 훌륭하며 괴산 명덕학교와 괴산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또 공덕비 중에는 '(도청) 사회복지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괴산군민의 여망에 의하여 제 38대 제 39대 괴산군수로 당선되어…'라는 내용도 보
경기도 고양시에 '가와지 볍씨 박물관'이 들러서면서 3개 지자체의 볍씨 전쟁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고양시는 구 농경문화전시관을 새롭게 확대·단장한 '고양 가와지 볍씨 박물관'을 오는 19일 오후 2시 현장에서 개관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개관은 이융조(전 충북대 교수)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1990년대 가와지 지구에서 발굴한 볍씨를 토대로 건립되는 것이어서, 지역학계의 관심도 끌고 있다. 이와 관련 이 이사장은 미리 보낸 인삿말에서 "1991년 일산 신도시 개발에 따른 학술조사에서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학생들과 함께 선사시대 볍씨를 찾았다"며 "박태식 박사 등 식물학자의 분석 결과, 5천년전 재배 볍씨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가와지 볍씨는 한강문화권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문화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나아가 우리나라 벼종사가 청동기시대에 시작됐다는 종래 이론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고 밝혔다. 발굴 당시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관련 내용을 '5000년전 볍씨출토 한국' 제목의 7단 박스 크기로 보도, 자국의 벼농사 전파 경로와 연관시켜 커다란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앞서 이 이사장은 지난해 고양시에서 열린 관련 학술회
속보= 청원군의 청석굴 관광 명소화 사업이 논란(본보 3월 17일자 1면)을 빚고 있는 가운데 옥화대 수계는 시조의 한 장르인 '육가'(六歌)의 발생지이고 또 '낙우당구곡'(樂愚堂九曲)도 설정되는 등 인문학의 보고인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국어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문학사는 신라의 향가, 고려의 장가,조선의 시조 순으로 발전해 왔다. 이중 고려시대에 싹이 튼 시조는 조선시대 들어 작품이 2천여개에 달하는 질과 양적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시조 중에는 '육가'(六歌)라는 장르가 존재했다. 이는 평시조 6개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형태로,16~17세기에 발달했다. 바로 이 육가가 탄생한 곳이 미원 경주이씨가 4대에 걸쳐 거주했던 청원군 미원면 일대의 옥화구곡 수계이다.(그림 참조) 성균관대 임형택(한문교육과) 명예교수의 논문 '17세기 전후 육가형식의 발전과 시조문학'과 괴산 중원대 이상주 씨의 '이득윤과 서계육가ㆍ옥화육가의 창작시대' 논문에 따르면 16~17세기 옥화대 일대에는 이별(李鼈), 이정(李淨), 이득윤(李得胤), 이홍유(李弘有) 등 경주이씨 4대가 연이어 살았다. 그리고 이들 4대는 시대순으로 '장육당육가'(이별), '풍계육가'(이정),'서
우리나라 근현대 인쇄문화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근현대 인쇄 전시관'이 문을 연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오는 20일 오후 2시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 광장에서 근현대 인쇄 전시관 개관식을 개최한다. 전시관은 토지매입과 건축비로 모두 45억원(국비 14억원, 시비 31억원)을 들여 지하 1층·지상 2층, 건축 연면적 1천518㎡의 규모로 지난해 5월 착공해 지난 1월 준공됐다. 1910년 전후의 우리나라 인쇄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은 상설전시실, 영상실, 기획전시실, 체험실, 북카페 등을 갖추고 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전시관 개관을 기념해 오는 20일~5월19일 근대서지학회와 공동으로 근현대 시기의 주요 간행물들을 모아 '1894 갑오개혁의 꿈: 근현대 인쇄출판 특별전'을 연다. 특별전은 근현대시기의 주요 인쇄물들을 조명하는 자리로 초기 인쇄출판을 선도했던 '박문국', '광인사'의 간행물들을 비롯해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김동인의 '감자'등 해방기까지 120여점의 주요 간행자료가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서양의 납활자 인쇄술을 받아들인 근대 인쇄출판 기술이 사회 전반에 걸친 폭발적인 인쇄수요를 어떻게 감당하면서 발전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고
전통문화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수계공간에 높이 60m의 초대형 인공폭포가 건립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16일 청원군에 따르면 군은 43억원의 예산으로 이른바 '청석굴 관광명소화 사업'을 미원면 운암리 달천상류 지류에서 진행하고 있다. 사업 내용은 △암벽 정상의 정자 조성 △높이 60m 인공폭포 건립 △인공 돌다리 설치 △건너편 소형광장 조성 등이다. 그러나 공사가 추진되고 있는 청석굴(옥화 1경)은 지난 70년대 구석기 연모가 발견된 바 있고, 또 조선시대 선비문화의 일종인 구곡이 설정됐던 공간 주변이어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이융조 전 충북대 교수는 지난 1970년대 중반 청석굴 내부에서 찍개, 긁개, 주먹대패, 찌르개 등을 발굴, 관련 내용을 '새로이 발견된 구석기 및 구석기 전통의 몇 예' 제목으로 백산학보 제 20집을 통해 발표한 바 있다.(관련 내용 28~29쪽) 이는 한반도 구석기인이 동굴유적인 청석굴 안에서 생활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나, 이후 정밀 발굴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구곡연구 전문가인 괴산 중원대 이상주 박사에 따르면 청석굴은 조선중기 인물인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에 의해 설정된 옥화구곡
단재 신채호 선생 유적지독립운동가·언론인이며 근대민족주의사학을 개척한 단재 신채호 선생 유적지 모습. 지난 1980년에 촬영된 모습으로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 위치했다.사당은 귀래리 마을 뒷편 산자락 끝에 있으며 바로 뒤에 묘소가 있다. 사당은 본래 1960년 종중에서 처음 건립하였고 1978년 지금 위치로 옮겨왔는데, 1980년에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다시 영당으로 보수·정화하였으며 '단재영각(丹齋影閣)'이라는 현판을 달았다.본전은 정면 3칸·옆면 1칸 겹처마맞배지붕목조기와집으로 앞마루를 놓았으며, 내부는 통칸 마루방으로 중앙에 영정을 모셨다. 영정은 한광일(韓光一)이 그렸으며, 한복 차림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가로 70cm·세로 110cm의 설채견본(設彩絹本)이다.본전 앞에 '정기문(正氣門)'이라고 현판한 소슬삼문을 세우고, 돌과 시멘트를 섞어 정방형의 기와를 얹은 담장을 둘렀으며, 사당 뒤쪽의 담장에는 묘소로 올라가는 작은 일각대문을 세웠다.
율곡 이이(李珥·1536-1584)가 '십만양병(十萬養兵)설'을 주장한 것은 그 대상이 왜적이 아니라 여진족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만 양병설= 임진왜란 대비용'으로 굳어진 것은 제자 김장생이 율곡의 행장을 사실과 다르게 서술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민덕기(사진) 청주대 교수가 호서사학회(회장 충남대 장인성 교수)에서 발간하는 '역사와 담론' 제 65집에 '임진왜란용이 되어버린 율곡의 십만양병설'을 기고했다. 호사사학회는 충청권을 아우르는 역사학술 단체로 현재 2백여 회원과 기관이 가입돼 있다. 민교수에 따르면 율곡은 임진왜란 10년 전에 죽고, 또 전란을 예상하지 못하는 등 생전에 대일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또 임진왜란 10년 전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아직 일본열도를 장악하지 못했던 때로, 논리상 임진왜란을 예견하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반면 당시 병조판서였던 율곡은 여진족, 특히 니탕개(尼湯介) 난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력 증강 등 각종 개혁안을 잇따라 내놨다. 1583년 여진족 니탕개는 난을 일으켜 경원부를 함락시키고 그 기세를 몰아 두만강 유역의 6진을 계속 공격하는 등 조선정국을 위기로…
청원군 가덕면에서 보은군 회인면 오동리에서 넘어가는 고개로 보은군과 청원군의 경계를 이룬다. 피반령은 해발 360m에 불과하지만 예로부터 험준한 고개로 알려졌고, 도로가 형성된 뒤에도 깎아지른 산과 절벽을 양옆으로 굴곡이 매우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반령이라는 지명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원익이 경주 목사로 부임하면서 생긴 일화에서 유래됐다. 당시 가마꾼들이 힘든 고갯길에 가마를 들 수 없어 걸어서 넘자고 청하자 이원익은 가마꾼에게 기어오라고 명령했다. 이에 가마꾼들이 손발에서 피가 터진 채로 고개를 넘어 '피발령'이라 불리다가 피반령이라는 한자 명칭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문화재청과 산림청, 소방방재청은 대형 산불 특별대책기간이 시작되는 10일, 산불·산사태 등의 각종 재난으로부터 우리 문화재와 산림자원, 산림 내 민가 등 시설물을 안전하게 유지·보존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세 기관은 △정기적인 합동 점검 및 훈련을 통한 재난대비 능력 향상 △문화재 및 산림재난 관련 데이터 및 정보 공유 △합동 연구, 조사, 교육을 통한 기관별 전문성 및 경험 공유 △협의체 구성을 통한 문화유산 및 산림자원, 민가 등 시설물 보호를 위한 재난안전관리체계 구축 등에 노력키로 했다.현재 산림 내 위치한 국보와 보물급 목조문화재는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임장규기자
철박물관은 오는 15일부터 매주 토요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IN 충북 · 차오름 프로그램 'Iron Craft'를 운영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 충청북도 주최, 충북문화재단 주관으로 운영되는 학교 밖 토요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토요일 건전한 여가 문화를 만들어주고, 문화예술적 소양을 길러 주는 것을 목표로 생활 속 철의 특성을 이해하고 금속공예 전문 강사의 지도아래, 철을 이용한 작품을 제작, 전시하는 것으로 과정으로 구성됐다. 대상은 충북지역 초·중·고등학교 학생이며, 2014년 총 3기, 45명의 수료생을 배출할 예정이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1기 교육생 15명을 3월 14일까지 선착순으로 모집한다.철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낯설게만 느껴지던 현대미술을 이해, 참가자들의 예술적 감각 발현과 진로 모색의 길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참가 신청은 철박물관 홈페이지(www.ironmuseum.or.kr)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내용을 작성한 후 철박물관 이메일(ironmuseum518@gmail.com)과 팩스(043-883-2322)로 접수하면 된다. 음
통일신라 때 처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청주성(淸州城)은 1천년 세월의 거친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청주를 지켜왔다.비록 102년 전 일제가 시가지 개정이란 미명 아래 읍성을 허물어버리긴 했지만 최근 청주시가 일부 구간을 복원하며 그 위용을 되살렸다.한동안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청주성은 1980년대 초 전남 구례 운조루에서 '청주읍성도(淸州邑城圖)'가 발견되고서 세간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주읍성도를 분석한 결과, 청주읍성은 둘레 1.7㎞·높이 4~5m의 장방형 구조를 띠면서 청남문(남문)과 현무문(북문), 벽인문(동문), 청추문(서문)을 기준으로 현재의 성안동 일대를 둘렀다. 남문·북문 등은 일제식 방위 명칭으로 지금의 남문로, 북문로, 서문동 지명에 영향을 미쳤다. 4대문 중 가장 큰 문인 청남문(淸南門)은 구한말 때 찍은 사진 한 장이 전해지며 그 모습을 알 수 있다.무사석으로 기단을 쌓아올렸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 형태를 취하고 있다. 팔작집 모양의 2층 누각에는 '淸南門' 현판이 걸려 있다.지금의 청주약국 앞에 있던 주 출입문으로, 이 문을 지나 우리은행 쪽으로 직진하다 왼쪽으로 꺾으면 충청병마절도사
공자를 비롯한 4성18현을 추모하고 덕을 기리는 봄철 석전제가 7일 옥천향교(옥천읍 교동리)와 청산향교(청산면 교평리) 등에서 실시됐다.이들 향교는 매년 봄, 가을에 걸쳐 각각 1회씩 음력2월과 8월의 상정일(丁자가 들어가는 초일)을 택해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봉행은 초헌관이 향을 피우고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를 시작으로 5성위 앞에 첫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 의식인 초헌례에 이어 아현례, 종헌례, 분헌례, 음복례 등 의식을 거치고, 폐백과 축문을 불살라 재를 땅에 묻는 망요례(望燎禮)싸기 유교 제례순서에 따른 옛 모습을 재현했다.옥천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제 제97호)는 초헌관 김영만 옥천군수, 아헌관 박희태 옥천군의장, 종헌관 조용덕 옥천교육장이 제를 지냈다.청산향교(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98호)는 초헌관 한흥구 옥천부군수, 아헌관 정기수 전 청산유도회장 종헌관 이태섭 청산향교 장 등이 각각 역할을 맡아 진행했다.옥천 / 손근방기자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진천 배티성지(梨峙 聖地)'(충북도기념물 150호)에 순교박해박물관이 건립된다.진천군은 지상 2층, 건축 전체면적 1천353㎡ 규모로 최양업(1821~1861) 신부의 친필 등 가톨릭 관련 자료를 소개하는 전시관과 체험장 등으로 조성되는 순교박해박물관이 다음 달 15일 준공·개관한다고 5일 밝혔다.순교박해박물관은 진천군이 천주교 청주교구 배티성지발전위원회와 함께 2012년부터 2016년까지 100억원(국·도비 포함)을 들여 추진하는 배티 세계순례성지 조성사업 중 하나다.순교박해박물관은 2012년 10월10일 천주교 청주교구 장봉순 가브리엘 주교 주례로 기공식을 했다. 앞서 2012년 4월에는 최양업 신부 기념관(981㎡)이 준공됐다.이 기념관은 국내 천주교회 첫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인 최 신부를 기리고 있다.최 신부는 현재 교황청에서 시복(諡福·교황이 신앙이나 순교로 이름 높은 사람을 복자품에 올려 특정 지역 교회에서 그를 공경하도록 선언하는 것) 심사를 하고 있다.진천군은 기념관과 박물관 건립에 이어 길이 7.5㎞의 배티성지 순례(둘레)길도 조성한다.이를 통해 배티성지의 역사·문화 인프라를 활용해 연간 30만명이 찾는 순례성지로…
'그는 일본순사 2명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했다. 그 결과, 30대 중반의 청춘은 50살이 돼서야 출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뒤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없고, 법원 판결문 하나만 전해지고 있다.' 가 올 제 95주년 3.1절을 앞두고 국가기록원에서 항일의병 강수원(姜遂元·1873~?)에 대한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의 판결문을 입수, 지상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조선 말기의 의병활동은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기(1905년) △통감부에 의한 차관정치가 시작된 정미칠조약기(1907년) 등으로 나눠지고 있다. 강수원은 이중 정미칠조약기에 활동한 의병으로, 출신지는 제천군 동면 흑석리였고 당시 그의 나이 34세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당시 일본인 검사 소야독차랑(小野篤次朗)에 의해 폭동 및 살인 혐의로 기소돼 1910년 4월 1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 법정에 섰다. 청주지부 법원은 검사의 기소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 '피고 강수원은 명치 40년(1907) 음력 7월 중 폭도 수괴 이강년의 부하가 되어 포군(砲軍)에 편입되어 화승총 1정을 받아 이후 각 곳을 배회하던 중 동월 14, 15일경 영춘군 읍내부근 방두리에서 이강녕의 명에 의해 동료 1
옥천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규흥(金奎興·1872~1936)은 중국 망명생활 중에도 고향땅을 팔아 독립운동을 펼쳤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규흥(사진)은 지난 2013년 3월 3일의 KBS 스페셜에 '3.1운동의 숨겨진 대부 김규흥'으로 방영되는 등 근래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독립 운동가의 한 명이다. 특히 배경한(신라대) 교수 등 학계에 의해 "공화제를 주창한 중국 신해혁명에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가담했고, 이것이 중국 혁명파의 조선 독립운동 지원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립운동의 대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김규흥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약한 편으로, 그가 지론으로 주장한 '둔전제적 독립운동'이 어떤 실천과정을 통해 전개됐는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왔다. 충북대 사학과 김호진 씨의 석사논문 '범재 김규흥의 민족운동과 독립군 양성계획'(지도교수 박걸순)에 따르면 그의 조부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원납전을 1만냥이나 내는 등 구한말 옥천지역 최대 거부였다. 실제 고종실록 3년(1866) 10월 1일자 기사의 원납인 명단에는 그의 조부 '동교'(東敎)의 이름이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금의 충남 강경에 20칸 규모의 집을 소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손상된 조선왕조실록 밀랍본(蜜蠟本)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그 결과를 '조선왕조실록 밀랍본 복원기술 연구 종합보고서'로 발간했다.보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추진한 '조선왕조실록 밀랍본 복원기술 연구' 사업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손상 밀랍본의 상태진단에서부터 원료와 제작기술 분석, 손상원인 규명, 복원을 위한 기술 개발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이런 종합적 연구는 지류(紙類) 문화재 보존분야에서 처음 시도된 것으로 단편적 조사연구의 한계를 넘어선 독보적 연구 성과로 의미가 크다. 특히 문화재연구소는 밀랍본 복원을 위한 핵심기술인 '밀랍제거 기술'을 확보했는데, 이는 초임계 유체추출법(supercritical fluid extraction, SFE)으로 훼손 밀랍본에서 종이와 먹의 손상 없이 밀랍만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첨단기술이다.보고서는 소장처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 관련기관에 제공되며, 앞으로 밀랍본의 보존복원 방안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임장규기자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김원웅)와 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회장 김병우)는 지난 21일 오전 10시 낭성면 귀래리 단재신채호사당에서 종중, 마을주민 등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단재 신채호선생 순국 78주기 추모기념제전'을 개최했다.이날 행사는 단재 사당에서 고령신씨영선군파 부회장 신만호씨의 집례로 추모제를 지낸 후 단재 묘소 앞으로 자리를 옮겨 기념식을 진행했다. 끝으로 고드미녹색체험마을회관에서 마을어르신들을 위한 마을잔치를 가졌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선생의 항일정신과 실천정신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계승하기 위해 이 같은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청원/최대만기자
'노무현 16대 대통령 취임', '이라크 전쟁 발발', '이승엽 56호 홈런 아시아 신기록 달성', '대북송금 특검… 정몽헌 회장 자살', '대구지하철 방화 192명 사망', '전세계 괴질 사스 기승'.이상은 11년전 언론에 보도됐던 주요 뉴스들이다.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2003년 충북에서는 어떤 일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까.권력의 상징이었던 청남대가 일반인에 개방되고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첫 삽을 뜨고 교원대에서 황새 복원 성공하는 등 희소식이 많았는가 하면 양길승 몰카 파문, 태풍 매미 눈덩이 피해 등 어두운 단면도 존재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충북일보가 창간된 2003년으로 돌아가 당시 본지 주요면을 장식했던 기사를 되돌아보며 11년전 '핫 뉴스'를 추억해본다. ◇ "청남대 생각보다 검소하더라" / 4월23일자 1면지난 1983년부터 대통령 전용별장으로 사용되면서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청남대가 4월22일 20년만에 일반인들에게 전격 공개됐다.이날 개방 첫날 청남대를 관람하게 된 관람객들은 인터넷으로 예약한 800명으로 문의면 소재지에 임시로 마련된 주차장에서 청남대 입장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관람객들은 셔틀버스를 이용해 청남대로 이동해 대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송건호(宋建鎬·1927~2001)는 옥천군 군북면 비야리에서 아버지 송재찬과 어머니 박재호의 3남5녀중 2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은진송씨로 조상은 대대로 충남 대덕군 동면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송건호의 증조부는 그런 가족을 이끌고 산너머 군북면 비야리로 이주했다. 옥천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그의 증조부는 민족의식이 강했다. 그는 나라가 망하자 왜놈들이 보기 싫다며 스스로의 호를 '하곡'이라 짓고는 첩첩산골로 찾아들었다. 언론인 송건호를 평생 지배한 반골정신은 어찌보면 이런 가통(家統) 때문에 유전적으로 획득됐다. 송건호는 옥천 증약보통학교 졸업 후 서울 한성사립학교를 거쳐 서울대 행정과에 입학했다. 그가 처음부터 신문기자를 꿈꿨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대학재학 때부터 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이후 그는 조선일보 등 여러 신문사의 기자와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하였다. 당시 는 유신체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고, 그런 태도는 당시 정권에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1975년 의 기사 내용을 못마땅하게 여긴 당시 정권은 신문 광고주 압박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 를 압박했다. 그 결과, 신문 광고란이 백지 상태로
는 1934년 2월 17일자 기사에서 시골 마을 한 천재소년의 출현을 사진과 함께 요란스럽게 보도했다. '충북 제천군 청풍보통학교에 3학년에 재학중인 천관우 군은 제천군 청풍면 읍리 천영석씨 셋째 아들인데 다섯 살 때부터 읽기와 쓰기가 능하여서 일반은 천재라고 칭찬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있었고 명석했던 소년 천관우는 청주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사학과 학부 졸업 논문으로 반계 유형원(柳馨遠·1622 ~ 1673)의 사상을 썼다. 당시는 조선시대 실학에 대한 개념도 성립돼 있지 않았던 시기로, 그가 당시에 쓴 이 논문은 실학연구의 서막을 여는 역할을 했다. 그는 학계로 진출하려 했다. 그러나 6.15 전쟁이라는 시대의 불우를 만나면서 1951년 에 입사, 언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문재가 또 한번 빛을 발하게 된 것은 1952년 유네스코 기금으로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연수할 때였다. 그는 이때 기행기 '그랜드캐년'을 썼고, 이 글은 명문을 인정받아 제 2차 교육과정이 시작된 1968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그리고 K형, 나는 이것을 보려 여기에 온 것입니다. 별안간 일진의 바람이 거세게 불
애국지사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 순국 78주기 행사가 청원에서 열린다.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김원웅)는 21일 청원군 낭성면 단재 사당에서 추모기념제 행사를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행사는 1부 추모제, 2부 기념식, 3부 기념오찬으로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기념사업회는 이날 강미원 청원군 문화관광해설사에게 낭성면 단재 사당을 널리 알린 공로에 대한 감사패도 수여한다.단재 선생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이기도 했다. 청원 / 최백규기자 webcom@naver.com
현존하는 청주지역의 오래 된 사찰 중 풍수적 가람배치 원리에 비교적 충실한 곳은 우암산 자락의 보현사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불교는 가람의 배치에도 당연히 풍수적 고려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 이를 부처의 얼굴이나 신체와 비교하는 등 땅도 불격화(佛格化)해왔다. 따라서 이마는 법당, 코는 불당, 입은 산문, 왼쪽 눈은 창고, 오른쪽 눈은 승당, 왼쪽 귀는 욕실, 오른쪽 귀는 화장실이 위치해야 한다는게 일반적인 논리였다. 얼굴이 아닌 신체에 비유할 경우 머리는 법당, 심장은 불당, 음부는 산문, 왼손은 창고, 오른손은 승당, 왼발은 욕실, 오른발은 화장실에 해당한다고 일컬어져 왔다. 법당은 불상을 모시고 설법을 하는 등 절의 으뜸 되는 집채, 불당은 단순히 부처만은 모신 집을 말한다. 반면 승당은 스님들이 좌선하며 기거하는 곳으로,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원광대 김혁배씨가 청주지역(청원포함) 보살사, 용화사, 보현사, 연화사, 백족사, 안심사, 동화사, 원리사, 현암사 등 14개 사찰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이같은 전통 가람배치 원리가 충실히 지켜진 곳은 우암산 자락의 보현사(주지 원봉스님·우암동)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현사의
'문화재 돌봄사업'이 시·도지정문화재로 확대 시행된다.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올해부터 국가지정·등록·비지정문화재 뿐만 아니라 시·도지정문화재를 포함, 야외에 노출돼 있는 전국의 5천500여 점의 문화재를 대상으로 '문화재 돌봄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문화재 돌봄사업'은 지방자치단체와 사회적기업 성격인 '문화재 돌봄단체' 등이 주기적 현장점검 활동을 하면서 잡초제거·제설작업·배수로 정비·환경미화 등 일상적 관리와 함께 창호·벽체·기단·마루·기와 등의 경미한 탈락·훼손을 신속히 수리하는 예방적 관리시스템이다.이 사업은 지난 2010년에 처음으로 대구광역시 등 5개 시·도에서 시범사업을 시행했고 2013년에는 전국 시·도를 대상으로, 83억원(지방비 포함)을 지원해 2천여 점의 지정·등록·비지정문화재에 대해 시행했다. 특히 2014년부터는 56억원(지방비 포함)을 추가 지원하고 3천500여 점의 시·도지정문화재까지 포함돼 문화재 돌봄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문화재 돌봄사업'은 예방적 일상관리와 경미한 수리행위를 통해 문화재와 그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조성, 관람객에게 쾌적한 관람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후보수 시에 소요되는 막대한 보수정비 예
[충북일보] "이 밑으로 물이 다 들어오잖아요. 이게 어떻게 물막이판이야" 지난 1일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의 한 주택에서 만난 A(60)씨는 주택 앞에 설치된 물막이판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이곳 반지하에 30년째 거주하는 A씨는 장마철이 되면 '호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지난 2017년 충북 지역에 집중호우로 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집이 온통 쑥대밭이 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A씨는 "당시 침수 피해로 3천만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며 "올해도 비가 많이 내린다는데 빗물이 집에 들어오면 대부분 살림은 두고 피신할 생각까지 가지고 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가 거주하는 곳은 지형이 주변보다 낮아 주요 침수 지역으로 꼽힌다. 또 1인 가구가 거주하는 원룸·다세대주택 등이 밀집해 있어 반지하 주택 비율도 높고 하수구도 많아 침수에 취약하다. 지난해 충북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청주시는 '재해취약주택 지원 사업'을 통해 A씨가 거주하는 주택 출입구에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물막이판은 도로가 물에 잠겨도 건물 내부로 물이 유입되지 않게 하는 장치로, 주로 건물 출입구와 반지하 주택의 창문에 설치한다. 하지만 A씨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이 밑으로 물이 다 들어오잖아요. 이게 어떻게 물막이판이야" 지난 1일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의 한 주택에서 만난 A(60)씨는 주택 앞에 설치된 물막이판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이곳 반지하에 30년째 거주하는 A씨는 장마철이 되면 '호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지난 2017년 충북 지역에 집중호우로 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집이 온통 쑥대밭이 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A씨는 "당시 침수 피해로 3천만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며 "올해도 비가 많이 내린다는데 빗물이 집에 들어오면 대부분 살림은 두고 피신할 생각까지 가지고 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가 거주하는 곳은 지형이 주변보다 낮아 주요 침수 지역으로 꼽힌다. 또 1인 가구가 거주하는 원룸·다세대주택 등이 밀집해 있어 반지하 주택 비율도 높고 하수구도 많아 침수에 취약하다. 지난해 충북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청주시는 '재해취약주택 지원 사업'을 통해 A씨가 거주하는 주택 출입구에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물막이판은 도로가 물에 잠겨도 건물 내부로 물이 유입되지 않게 하는 장치로, 주로 건물 출입구와 반지하 주택의 창문에 설치한다. 하지만 A씨
[충북일보] "단양을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이는 김문근 군수가 지난 6월경 인구 관련 포럼 발표에서 군민들과 약속한 일성이다. 김 군수가 민선8기 38대 단양군수로 임기를 시작한 지 취임 2년을 맞았다. 김 군수는 "지난 2년 동안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을 만들기 위해 주마가편의 자세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단양의 관광 패러다임을 혁신하고 내륙관광 1번지 단양을 향해 한 단게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시루섬 권역 종합관광지 개발과 리조트 조성 등 민간 투자 사업으로 체험형 관광지로서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활성화 투자펀드 공모 사업에 전국 1호 사업으로 단양역 복합 관광단지 개발사업이 선정된 만큼 사업을 꼼꼼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군수는 "민선 8기 단양호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내 '건강한 단양 살고 싶은 단양'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 주요 군정 성과는 "적은 인구를 지녔지만 단양군은 지난 2년 동안 대도시에 견줄만한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