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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정원이 고요하다. 현관문은 잠기지 않았는데 인기척이 없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문우 K에게 도착 문자를 보냈다.

아침에 받았던 K의 문자가 반가웠다. 시모 상喪을 치른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던 터였다. 여러 곳의 출강으로 분주한 그녀가 모처럼 짬이 난다니, 정해진 일정을 마치고 늦더라도 가겠다는 답을 했었다. 선배 문인의 자택인 이곳을 우리는 자주 드나들었다. 밥 보시를 즐겨 하시는 집주인 덕분에 때때로 누리는 호사였다.

K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혼자 지내는 선배를 가족처럼 챙긴다. 오늘도 일찍 와서 바깥일을 봐주러 함께 나간 것이다. 선배가 메모를 남겼노라고 했다. 보물찾기하듯이 두리번거리다 계단 한쪽에 있는 메모지를 발견했다. 스프링노트 한 장이 비닐봉지와 함께 놓여 있다. 작은 돌멩이가 봄바람의 장난을 막기 위해 앉아 있다.

'안녕! 요세피나, 옆에 있는 밭에서 상추 뜯어요. 맘껏….' '맘껏'이란 두 음절의 단어가 잔잔한 행복감을 안긴다. 규제를 초월하는 언어의 파장이 내 마음 뜨락에 색색의 물감을 풀어 놓았다. 푸근하고 풍요롭고, 자유로운 느낌으로 충만해진다. 궁금증이 차지했던 마음자리에 안도감이 들어서자, 정겨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정원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빨간 개양귀비꽃과 청보랏빛 수레국화의 수런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보라색 으아리꽃은 아치형 철 오브제를 타고 올라가는 중이다. 테이블에 그늘을 드리우는 몫을 담당한 산사나무엔, 알알이 맺힌 초록 열매가 꽃 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잎이 예쁜 삼색 버드나무는 새로 들인 가족인가 보다.

'일상'은 시간이라는 공간에 쓰는 글이다. 무수한 손길이 닿은 뜨락에서 몸으로 쓴 작품을 읽는다. 선배의 건강은 열정과 에너지에 반해 활동의 제약을 받았다. 두꺼운 돋보기로 한쪽 시력에 의지해 문학 활동을 하셨다. 동인지 발간을 준비하면서 마지막 글이라며, 이젠 글밭 대신 텃밭이나 일궈야겠다는 말이 떠올라 코끝이 시큰해진다. 어느 날 통화 중에, 밭일하다가 파란 하늘이 너무 고와 그 자리에 누워 감상한다고 들었던 통화는 이 글의 삽화로 펼쳐진다.

선배는 부지런하신 분이다. 다니러 올 때마다 집안 분위기가 새롭다.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위치가 때때로 바뀌고, 정원의 벤치도 자주 이동한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냐고 걱정하면, 힘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고 웃어넘긴다.

언제 바뀌었을까. 푸르렀던 정원 바닥에 초록 잔디 대신 회색 자갈이 깔려있다.

채소밭이 정갈하다. 옅은 자주색 상추 포기가 밭이랑을 덮은 비닐 위로 솟아나 있다. 적당히 자란 상춧잎이 갓난아기 살결처럼 보드랍다. 연한 잎이 서툰 내 손길에 쉬이 찢어진다. 더욱 조심스레 손을 내미는데 투명한 비닐 속이 보인다. 이름 모를 풀이 포복 자세로 자라고 있다. 욕망을 다스린 잡초의 현명한 자태가 겸허함으로 읽힌다.

'삶'은 시간이란 터널을 통과하는 여정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을 소비하는 행로이다. 햇살 좋은 오후 고운 뜨락에서, 시간을 가치 있게 소비하는 삶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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