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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6.20 14:12:22
  • 최종수정2024.06.20 14:12:22

진천군과 진천군 재향군인회는 100여 명의 주민과 보훈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20일 봉화산 6.25 격전지 탑에서 14회 봉화산 전투 무명용사 합동위령제를 갖고 있다.

ⓒ 진천군
[충북일보] 진천군과 진천군 재향군인회가 호국영령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20일 봉화산 6.25 격전지 탑에서 14회 봉화산 전투 무명용사 합동위령제를 가졌다.

이날 위령제에는 문석구 진천 부군수를 비롯해 보훈단체장, 학생, 일반주민 등 100여 명이 모여 이름 없이 사그라진 무명용사의 영면을 빌고, 그들의 헌신에 감사하는 제를 올렸다.

지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대대적인 기습 남침으로 한반도는 큰 혼란에 휩싸였으며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남한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겼었다.

반격을 위해 전선을 재정비해야 했던 국군은 1연대, 8연대, 18연대를 예하에 두고 있던 수도사단을 1군단에 편입하고 진천에 집결해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킬 계획을 세웠다.

1950년 7월6일부터 7월10일까지 진천의 중산리, 송림리, 백곡천, 성석리, 사미, 장관리까지 북한군을 막으려 총력을 기울였으나, 모든 면에서 열쇠이던 국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국군은 마지막 저항선으로 문안산과 봉화산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에 임했다.

당시 최대 격전지는 봉화산과 문안산 잣고개 일대로 많은 북한군과 국군의 희생이 있었고 여기에는 이름도 없이 참여한 진천중학교 학도병 100여 명도 포함돼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와 함께 북한군의 포격에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고지의 주인이 수십 번 바뀌는 전투를 치렀으나 결국 국군은 청주지역으로 후퇴했다고 한다.

최상욱 진천군 재향군인회장은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과 참전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며 "얼마 남지 않은 6월, 호국영령과 참전 영웅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는 하루를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천 / 김병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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