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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8.12 16:12:34
  • 최종수정2024.08.12 16:12:34

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물라 어차르'가 우리집 식탁 위에 올라왔다. 물라 어차르는 피클에 가까운 네팔의 무김치다. 매우 신맛이 나는 김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음식이든 과일이든 유난히 신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차르를 고향 음식 먹듯이 맛있게 먹는다.

네팔에서도 달밧을 즐겨 먹었으며 곁들여 나온 어차르와 사그(시금치 무침)도 별 부담감 없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락시(쌀음료)와 차도 맛있게 먹었다.

얼마 전 네팔에서 온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제자 부부는 주간과 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통화를 할 뿐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여름휴가를 맞이해서 미리 연락하고 직접 찾아온 것이다.

꽤 오래전에 한국에 온 제자는 보기 드물게 예의 바르며 한국어가 유창한 편이다. 늘 안부 전화를 하며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는 잊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온다. 이번에도 날씨가 너무 더운데 건강하게 잘 지내느냐며 안부를 먼저 묻고 만나고 싶다며 부부가 같이 오겠다고 했다. 제자는 부부와 아들이 한국에서 함께 살고 있다. 나도 제자의 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물었다. 제자는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을 하면서 말끝을 살짝 흐렸다. 그래서 뭔가 좀 석연치 않아 나는 캐물었다. 제자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 저 일하다가 손을 조금 다쳤어요." 순간 나의 느낌은 '조금' 이라는 단어가 아주 무겁고 무섭게 다가왔다. 나의 직감은 적중했다. 나는 다그쳐 물었다. 왼손이냐, 오른손이냐· 얼마나 다쳤느냐· 손이냐, 손가락이냐· 세찬 소나기처럼 쏟아붓는 나의 질문에 제자는 작은 소리로 왼손 손가락이 절단되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말을 잇지 못했고 제자는, 다치자마자 바로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며칠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다음 질문을하려다가 꾹 눌러 참고 제자가 오기로 한 날을 기다렸다.

그는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친구와 같이 온 제자는 깁스한 손을 보여주며 애써 괜찮다고 했다. 나도 속상한 마음을 감추며 수술이 잘 된 거냐고 물었다. 딱딱한 깁스 안에 갇힌 손가락을 보며 제발 움직임이 자유롭도록 치료가 잘 되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잠시 대화가 끊겼다.

제자는 네팔의 고향 친구이자 한국에서도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를 소개하며 대뜸 친구네 집으로 가자고 했다. 갑작스럽게 초대를 받게 된 셈이다.

"선생님, 모모 좋아하시잖아요· 지금 친구 집에서 모모를 만들고 있어요." 나는 제자의 말에 깜짝 놀랐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마음 씀씀이에 또 감동을 받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네팔의 만두인 '모모'를 만들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찡했다. 그는 내가 네팔의 전통 만두인 모모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와 그의 친구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식탁 가득 방금 만든 모모가 가득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예쁜 모모가 마치 기계에서 뽑아낸 것처럼 일정한 모양이었다. 한쪽 옆에서는 계속해서 모모를 만들고 있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계속해서 만두를 만들었다. 이미 찜솥에서는 모모가 익고 있었다. 물이 끓고 김이 오르고 있었다. 모모를 만드는 신기하고 빠른 손놀림에 넋을 놓고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베란다 쪽에 줄지어 선 김치 항아리 같은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네팔의 무김치인 '물라 어차르' 였던 것이다. 마치 장독대처럼 김치통이 그득했다. 물라 어차르, 무김치를 담가 네팔 사람들에게 판매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네팔 음식 파티를 열었다. 둥근 접시에 모모와 물라 어차르를 담아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기가 들어간 만두인 모모의 담백한 맛이 참 좋았다. 거기다가 무김치인 물라 어차르의 신맛이 매우 잘 어울렸다. 우리는 네팔의 차 '찌아'도 마셨다.

네팔식 만찬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네팔의 무김치인 '물라 어차르'를 선물로 받았다.마치 고향 사람들과 함께 모여 정과 음식을 나누는 자리 같아서 더 정겨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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