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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또 걸음을 멈추고 섰다. 하늘을 향해 한껏 고개를 젖히고 서서 구름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과하지 않은 바람에 깊어지기 시작한 초록 나뭇잎이 춤을 추고 기분 좋을 만큼 옷깃이 날렸다. 정원 울타리 옆으로 좀 늦게 핀 샤스타데이지도 이리저리 춤을 췄고 무리지어 핀 금계국도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한편 소담스럽고 푸짐하게 부풀어 오른 새하얀 구름은 짙푸른 창공 위를 바람결에 따라 다양한 모형으로 영화 스크린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때로는 고층아파트의 앞을 가려 높다란 건물을 숨겼다가 다시 보여주기도 하며 화려한 운무를 연출해 냈다. 평소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나지만 근래에 마주한 구름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구름의 형상이 아니다. 맑고 투명한 하늘에 푸르름이 더해져 새하얀 구름이 화려한 보석처럼 진귀해 보였다.

기회가 될 때마다 카메라에 담아 수시로 사진을 꺼내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다가 문득 시간을 거슬러 올라 어느 시점에 도달하여 옛날을 스케치하곤 한다. 너무도 청명한 하늘에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던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았던 것들을 기억하며 추억의 꾸러미를 풀어 볼 때는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한다. 시장에 마치 탑처럼 쌓여있던 둥근 빵과 하늘빛 푸른색이 고혹적이던 진열된 도자기들, 거기다가 단내가 풍겨오던 과일이 늘비하던 시장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다시 구름의 형상이 다채롭게 바뀌었다. 적당한 바람까지 부니 구름은 신바람이 난 모양이다. 새털구름들이 모두 사라지고 고층아파트 뒤로 아파트보다 더 크고 웅장한 구름 하나가 마치 바닷속에서 헤엄을 치는 고래가 되었다가 다시 비행기 형상으로 높이 떠오르기도 했다.

대단한 구름 형상을 보며 문득 오월에 별이 된 한 승무원의 아름답고 값진 미소가 클로즈업되기도 했다. 88세에 별이 된 '베트 내시'의 환한 미소가 눈부시도록 하얀 구름 위로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미국의 항공기 승무원이었다. 유독 눈에 들어온 " '구름 위에서만 67년' 여승무원, 88세로 별세"라는 기사 제목이 나를 잠시 우두커니 멈춰 서게 했다. 여러 매체에서도 앞다투어 다양한 기사 제목을 선보이며 '베트 내시'를 조명하여 기억해 내고 있었다.

"80년 넘어서도 현역" 우상이었던 승무원… '최장 근속' 기록세우고 떠나 / '하늘에서 67년' 세계 최장 근속 승무원, 88세 일기로 별세 / 67년을 하늘에서 보낸 최장기 승무원, 88세로 하늘의 별이 됐다 / "80세에도 승무원으로 일했다"… '63년 최장근무' 美여성 사망 등등

구름 위에서 열정을 쏟으며 생을 마친 한 사람의 삶에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베트 내시'를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눈부신 그의 미소 뒤에는 아픔도 숨겨져 있었다. 그는 진정한 프로다운 프로였다. 어려움을 끌어안아 기꺼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사랑으로 극복한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불편한 아들을 돌보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는 최장 근속 항공 승무원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도 올랐다. 16살에 승무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되면서 꿈을 이루게 되었으며 그 열정을 잊지 않고 구름 위에서 고객들을 만난 셈이다.

베트 내시가 5월에 별이 되면서 올 5월부터 6월에 이르기까지 유달리 구름의 향연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베트 내시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에서 시작된 구름의 향연일지도 모른다. 그는 구름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왔다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별로 박힐 것이다.

오늘도 낮게 내려온 새하얀 구름을 보면서 그녀의 눈부신 미소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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