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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초여름 날씨가 어느새 30도를 넘었다는 소식이다. 녹음 사이로 쏟아지는 태양 빛은 뜨겁다 못해 따가운 느낌이다. 작열하는 태양이라 했던가, 살갗에 닿는 무더위는 시간여행을 하자는 듯 추억을 부른다.

그때도 오늘처럼 무더운 날씨였다. 먼 밭에 나가 들일을 하시는 부모님께 물을 갖다 드리는 일은 나의 일과와도 같았다. 방과 후 집에 오면 으레 노란 양은주전자를 들고 밭으로 향한다. 샘가에 펌프는 한참 동안 펌프질을 하면 그래도 차가운 물이 나왔다. 어린 마음에 찬물을 받아 당원(?)이라는 인공 감미료를 넣어 단물을 만든다. 내 몸짓에 비해 버거운 주전자를 들고 어머니 아버지가 일하는 밭을 향해 산길을 걸어간다. 야트막한 산모롱이에 이따금 망초꽃이 동무가 되고 먼 산에서 들려오는 산비둘기 소리가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조금 가다가 한 모금 단물을 삼키고 또 걷다가 한 모금 마셔보고 풀 섶을 걸으며 주전자 물을 쏟기도 했다. 부모님께 물을 갖고 가는 일은 번거롭기도 했지만 달콤한 물을 음료수 삼아 마시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밭에 도착했을 때 반쯤 남은 물은 어느새 미지근해 있었다. 구슬땀을 흘리시던 부모님은 단물로 목을 축이시며 나를 칭찬하셨다. 그 옛날 밭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둑에 앉아 망초꽃을 따고 놀던 유년의 기억들이 오늘따라 어여쁜 풍경처럼 가물거린다.

차를 몰고 고향을 닮은 시골길을 달린다. 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망초꽃 물결이 한창이다. 바람이 스치고 간 자리마다 발자국처럼 피어난 꽃이 하얗다 못해 눈이 부시다. 잡초 인가 화초 인가, 어릴 적 볼품없다 여기던 풀꽃이 언제부턴가 어엿한 꽃으로 마음을 끈다. 밭둑에, 들길에, 주인 떠난 어느 허름한 초가집 뒤 곁에 소리 없이 피어나는 하얀 망초 꽃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밭고랑에 돋아난 망초는 어머니의 심기를 성가시게 했다. 풀과 싸우듯이 "이놈의 망할 풀" 하며 망초를 뽑던 어머니,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상흔 위에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척박한 삶의 절규였는지도 모른다.

망초의 근성은 또 얼마나 질긴가. 어머니의 한풀이는 아랑곳없이 밭이랑에 버려진 풀은 이내 시들다가도 밤이슬을 맞고 다시 살아난다. 그리곤 또 섶을 이루었다. 풀과의 애증도 잠시 너른 치마폭에 망초 순을 따시던 모습이 그리워진다.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핀 꽃 속에 몸을 낮추고 숨었다. 풀냄새가 그윽하다. 어머니한테서 나던 냄새다.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하다. 살며시 그 옛날의 어머니를 불러본다. 실바람에 꽃대가 하늘거린다. 가느다란 꽃의 허리는 세상의 모든 풍파를 삭여야 했던 어머니의 몸짓이다. 게다가 흰 꽃은 여느 꽃보다 키가 커서 모두를 살필 줄 아는 너그러움이다. 우리 어머니 마음이다. 게다가 손톱만 한 꽃송이에는 고매한 우주가 담겨있다.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처럼… 파란 하늘을 수반 삼아 살랑대는 꽃물결에 내 마음도 덩달아 살랑거린다. 어느 덧 나에게 무언의 스승이 되어 달곰한 향수를 부른다.

계란꽃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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