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박명애

수필가

친구와 대머리 공원인 무농정지를 걸어본다. 날이 흐린 탓인지 한 낮인데도 나무 사이로 건너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두 해 전 늦가을 다녀갔으니 꽤 오랜만이다. 책 벗들과 우리 지역 정자 기행을 해보자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었는데 나의 불성실함으로 인해 몇 회 진행하지 못했다. 그 때 처음 찾았던 곳이 무농정(務農亭)이다.

당시는 11월 초입으로 늦가을 경치가 눈부신 계절이었다. 만산홍엽 안으로 한걸음 들어가면 숙성 중인 나뭇잎 내음이 향긋했다. 같은 나무라도 자리에 따라 익는 농도가 달랐다. 빛과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다. 온통 붉게 취해버린 나무가 있는가 하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듯 느리게 초록에서 붉음으로 건너가는 나무도 있었다. 연대하듯 같은 농도로 한 덩어리가 되어 세를 과시하는 나무들도 있고 푸른 주목이나 소나무 사이에 홀로 서서 시선을 잡아당기는 화려하면서도 고독해 보이는 나무도 있었다. 같은 시간 속을 만물은 모두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을 뿐인데 다른 속도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현상은 지극히 아름다웠다.

알싸한 숙성의 향기가 흐르던 공원은 온통 싱그러운 초록으로 덮여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신발을 벗고 무농정에 올라 앉아본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껴들어와 등을 데웠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무농정은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해서인지 고층 아파트들에 둘러져 있어도 한요하고 고즈넉하다. 방정리 일대는 청주 한씨의 시조인 한란(韓蘭)이 살던 곳인데 1668년(조선 숙종14)에 세워진 무농정비에 정자에 얽힌 유래가 새겨져 있다. '무농정은 우리 시조가 아직 출세하기 전에 임원(林園)에 은거하면서 들을 향하여 정자를 세우고, 여기서 농정의 시책을 연구함으로 인하여 정자의 이름을 '무농정'이라 하였다'는 비문을 읽고나면 새삼 다시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본디 누정이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면에서 한 층 높게 지은 집을 일컫는 말이니 아마도 아주 오래전 이곳은 사방 넓은 들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자리였을 것이다. 보통 개인이 세운 누각은 절경에 위치하여 자연경관을 즐기는 곳으로 선비들의 풍류와 친교의 공간으로 쓰이는데 무농정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누정의 이름에는 그 누정의 특징이나 세운 이의 삶이 담겨 있는데 무농정이라 하니 구지 비문을 읽지 않아도 농사를 중요시 여긴 주인의 품성을 알 듯 하다.

열다섯 나의 기억 속 무농정지는 덤불 우거진 동산이었다. 친구가 이곳 방정리에 살았는데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달리곤 했다. 그 때는 도심이 성안 길 주변으로 형성되어 있어 이곳은 청주시를 벗어난 외곽이었다. 그야말로 넓은 들이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지금처럼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자전거를 타기엔 참 좋았다. 무농정지 근처인 친구 집에서 차도를 건너 분평동과 미평동 너른 들판 농로를 따라 달리며 느끼던 그 바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바람 길엔 이제 아파트가 들어서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그 동산에는 새로 정자를 개건하여 말끔한 공원이 되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22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 증평·진천·음성 임호선

◇22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 증평·진천·음성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부족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중임을 맡겨주신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총선 승리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약속드린 미래 비전을 군민들께서 선택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재선에 성공한 임호선(61)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증평·진천·음성)은 겸손한 자세로 소통하며 어려운 민생부터 확실히 챙겨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며 "서민경제를 살피지 못하고 국정운영을 독단적으로 하며 과거로 퇴행하려는 정부에 브레이크를 잡으라는 민심이다. 제1야당으로서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적극 따르며 민생해결과 지역발전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앞으로의 의정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22대 국회에서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활동을 원하고 있다. 임 당선인은 "저는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현재도 농촌에 살고 있다"며 "지역적으로도 증평·진천·음성군이 농촌이기에 누구보다 농업농촌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농민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임 당선인은 "농촌이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